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말선생님 Sep 09. 2023

엄마는 말선생님이지?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어요.

"엄마가 언어치료사면 아이에게 매일 책도 읽어주고, 말도 많이 해주시겠어요."


부모교육을 마치고 나면 항상 듣는 말 중 하나다. 치료사 엄마로서 내 아이의 언어발달을 보다 면밀하게 살펴볼 수는 있었지만, 매일 자극을 주지 못할 때가 더 많았다. 진심을 담아 아니라고 대답하면 그 말은 '겸손'이라는 옷을 하나 더 걸치게 될 뿐. 언어치료사 엄마라는 직함은 꽤나 무게가 있는 것 같다.



아이가 24개월까지 말할 수 있는 단어가 20개가 채 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는 줄곧 해왔는데, 속사정을 깊이 털어놓은 적은 없었다. 나역시 코로나라는 포장지를 늘 덧씌웠고, 강제 백수가 되면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아이의 말이 더 트였다는 스토리가 이어졌다. 이 여정에는 거짓이나 첨가물이 더해지지 않았기에 부모교육 때 촉진 방법을 안내 드리기에도 적절했다. 


내 아이의 말이 또래보다 늦되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의 그 마음은 평생 잊혀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감정이었다. 언어발달 전공서적, 체크리스트, 그리고 노트북 자판. 언어발달에 대한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고 있었지만, 정작 나는 내 아이의 언어발달을 촉진해주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을 후벼파는 기분까지 들었다. 


나에게 있었던 고정관념 때문이기도 했다. '저 분은 남편과 오래전에 이혼하셨는데, 지금 부부상담을 하신대. 이건 좀 아이러니 하지 않니?' 20대 중반, 사회 생활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알게 된 상담사 선생님에 대한 나의 생각이었다. 발달을 글이나 영상으로 배우기 위해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나 <ebs부모> 방송을 보아도 '나는 잘 할 수 있어' 이 생각이 적어도 20%는 자리잡고 있었다.


흔히, 아이에게 자극을 주지 못하는 이유로 환경적인 요소를 생각하곤 하는데 나역시 그러했다. 나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우울감과 불안감은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불안감이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부부는 사랑의 끈으로 엮여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우리 부부는 갑작스러운 경제적인 어려움, 오래가는 듯한 나의 산후우울증, 무엇보다 신랑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면서 점점 사랑의 끈의 굵기가 얇아지고 있었다.


아이 역시 아빠에게 그닥 선호적이지 않았다. 아이들은 흔히 '엄마 껌딱지'라고 불리는 시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는 순간이면 세상 서럽게 울곤 했다. 유일하게 울지 않는 시간은 토요일 출근하는 시간이었는데 이 또한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시간이었다. 그림책을 읽어주는 사람도 엄마, 아이와 놀아주는 사람도 엄마, 산책하는 사람도 엄마였다.




다시 4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내 마음 속에 불안감과 욕심을 한번 더 다스려볼 수 있을까? 몸은 아이와 함께하고 있지만 나는 너무 불안했다. 이제 좀 1급을 따서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코로나가 터졌고, 아이는 정서적으로도 예민한 사인을 계속 보내고 있었다. 신랑의 건강 적신호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언어발달> 전공서적을 보면, SES, 즉 사회경제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예상대로 사회 경제적 어려움이 있을 수록, 아이들은 언어 발달에 대한 자극을 받을 기회가 적다. 가정에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면, 부모는 아이의 발달에 대한 관심보다 경제적인 운용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고, 아이는 방치되는 경우도 우리는 보곤 한다. 이를 부모의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연구 결과에 의하면, 가정 환경에 어려움이 있을 수록 아이들은 TV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고, 더불어 언어발달에 대한 관심을 받을 기회가 적어지는 것이다.



육아의 삶이 육아서대로, 전공서적대로 흘러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상에서 부부 사이의 문제로  인한 마음을 아이 앞에서 다스리는 것.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하루 10분이라도 온전히 갖는 것이 어떤 날은 누워서 떡먹기지만 어떤 날은 10분이 100분처럼 여겨지는 날도 있는 법이니까.


엄마는 말선생님이지?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묻곤 한다. 엄마의 일터에 종종 함께 가기도 하고,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엄마의 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말이 기특하게 여겨질 때도 있지만 때로는 체크리스트와 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엄마, 나에게는 다른 아이들에게 하는 것만큼 신경써주고 있어? 그만큼 나와의 놀이에 집중해주고 있어? 그림책도 엄마가 강의하는 것처럼 매일 읽어주고 있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것처럼. 아이의 지난 언어발달을 살펴보며 나의 마음에도 따스한 시선을 한번 더 전해본다. 죄책감의 자리에, 나를 위한 소소한 행복을 채울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더불어, 타지에서 외롭게 아이를 육아하는 양육자께, 혹은, 오늘 부부싸움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양육자께도,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해드리고 싶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