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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먹다만사과수집가 Oct 28. 2017

보수적인 인간이 고정관념을 깨는 법

2014년 4월16일. 으음. 폴에서의 셋째날.

우유에 거품을 내 커피에 올리기

진지하고 성실한 라즐로와 오프닝을 하는 날이었다. 모든 여자들에게 친절하고 푹 빠질만큼 예쁘게 생긴 브랏코는 유니폼도 입지 않고 바에 와서는 내게 "자꾸 커피 시켜달라고 해. 만들어서 자꾸 버리더라도 신경쓰지 말고 계속 연습해." 하면서 스팀 내는 법을 알려줬다. 브랏코는 말하자면 '굴러들어온 돌'로, 나와 같은 날 들어왔지만 이전에 몇 년 간 폴 매장과 레스토랑에서 일한 베테랑이라고 했다. 


"철거 일 할때가 젤 재밌었는데. 꽝! 꽝! 다 때려 부수고."하며 밝게 웃는 이 사람은 자신감이 넘치고 남의 눈치를 잘 안 보느 것 같았다. 매니저 미라와는 전에 함께 일한 사이라고 하니, 이 매장은 처음이지만 그리 불편할 것이 없을 터였다. 나는 얘 참 귀엽네, 하는 한편, 나의 트레이닝을 책임지고 있는 등 뒤의 라즐로가 무척이나 신경쓰였다.


아니나 다를까 라즐로는 특유의 신중함으로, "브랏코, 가서 옷부터 갈아입고 와. 우리 이제 문 열었으니까 여기서 사복 입고 있으면 곤란하다고."하고 그를 쫓아냈다. 라즐로는 내가 좋아하고 또 굉장히 싫어하는 나의 면모와 비슷한 점이 많은 사람이다. 글쎄 여기를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이 사람에게 장난을 치거나 팔랑거리며 그의 '심각함'에 허를 찌르고 깔깔 웃는 그런 날이 올까 궁금하다. 왜 내 입에선 위트 넘치는 농담이 아니 나오고 늘 미간 찌푸린 '퍼즈(일시정지)'의 순간이 앞설까! 더 유쾌하고 솔직할 수 있는데!


어쨌거나 두 사람의 긴장관계는 나에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제껏 커피는 내가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라는 신호를 보내던 라즐로는 바로 내게 커피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브랏코처럼 하면 안 돼." 라고는 하지 않았지만, 설명에서는 브랏코가 내게 준 팁과는 차이가 있는 내용들이 특별히 강조되었다.


카푸치노와 라떼에 거품 올리는 걸 배우면서 또 깨달음이 찾아왔다. 데코레이션은 필요에서 나온다는 것. 커피 위에 그림을 그려대는 건 그저 눈요기를 위한 것인 줄을 알았는데 만드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니, 거품이 사그라지지 않게 붓다 보면 주전자를 적당히 계속 흔들어줘야만 하고, 그렇게 우유를 붓다 부면 필연적으로 고사리나 하트 모양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음식에 금기란 없다 나의 세계에도...

커피를 마시는 방법도 가지가지. 음식하는 걸 보면 성격이 뚜렷이 드러나는데, 나는 먹어 보지 않은 조합은 거의 시도하지 않고, 늘 어디선가 먹어본 조합에서 영감을 받아 요리를 한다. 과함해 질 필요가 있어! 물같은 홍차에 물같이 묽은 우유를 타먹는 것이 여기 사람들이 먹는 밀크티이고, 까망베르 치즈와 양상추만 깨뿌린 바게뜨에 끼워 만든 '쎄써미 까망베르' 샌드위치도 썩 잘 팔린다고!


어쨌거나 내 본성이 굉장히 보수적이고 원래 있던 것을 존중하는 성향이란 걸 인정한다면, 새로움은 포기할 것이 아니라 더욱 추구해야 하는 것이었다. 경험과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 그 중에서 어떻게 또 우연히 새로운 조합이 탄생할지 몰라. 새로운 세계를 끊임없이 만나면서 스스로 쌓아온 고정관념을 '팩트'로 깨어나가야 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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