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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Jul 31. 2019

딸아이의 여름을 기다린다

나미래의 여름휴가 이야기,  여름 곡식과 아이들이 익는다





네 번째 딸아이가 세 마리 반려견을 데리고 친정엘 다니러 왔다. 그들의 여름 휴가지로 말이다. 어미 '산동'이는 해년마다 몇 번씩 오가기를 반복했으니 바닷가 시골집이 익숙할 터이고, 금년 3월에 태어난 남매 새끼들은 시골집 마당과 옥상 냄새가 익숙지 않을 것이다. 어미를 닮아 사람을 좋아하는 새끼 녀석들이라 했다. 그 녀석들 중 한 녀석이 대문 안으로 쏜살같이 달려와 사람이 반가운 증표로 팔에 혈흔을 만들어주고야 만다.

  




이젠 언덕의 높은 밭을 잘 오르지 못하는 노쇠한 몸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게 계절마다 이어지는 특이점의 농사일이 쉽지 않다. 사위의 차가 아니었다면 딸아이네에게 담가주고 싶었던 파김치 재료인 쪽파를 한번에 많이 뽑아 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여린 쪽파는 갯바람과 여름 햇살을 맞고 자라는 통에 토실토실 살이 오르는 중이었다. 쪽파 밭의 이웃 주인은 딸아이가 좋아하는 파김치를 담가서 보내고 싶다는 나의 말에 기꺼이 넉넉한 찬거리를 제공해주는 정을 지녔다. 찬바람이 일기 전에 내다 팔아야 하는 파 정리 작업도 이제 슬슬 내가 먼저 도와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창고 앞에서 파를 다듬으며 파김치가 비싼 이유에 대해 딸아이와 사위는 옥신각신 중이다. 김치 통 하나를 채워야 하는 쪽파의 양은 만만치 않았다. 두어 시간의 작업이 된 쪽파를 다듬는 일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지만, 딸아이 내외는 내게만 맡겨두지 않고 일상을 나누며 강한 여름 색을 살갗에 다 받아내고 손과 입을 움직이고 있었다.





점박이가 박힌 참외가 밭에서 뒹글고 있었던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아이들이 오면 먹일 요량으로 줄기 아래 숨은 녀석들을 손을 대지 않고 기다리기만 했었지. 투박한 녀석들도 물을 올려 먹음직스럽기만 하다. 수박과 참외에겐 '잘 크거라' 주문을 했더니 햇살의 엑키스만 잘도 받아낸 모양이다. 어른 머리보다 큰 수박이 이젠 간식이 되어줄 참이다.





병치레가 잦았던 고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애잔한 마음 가득이다. 불콰한 소리를 내며 여름을 살아가는 대표적인 농작물인데 누렇게 변한 녀석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가을을 가장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작물. 붉은 빛을 자랑하기까지 몇 번 얼굴을 마주했던가. 딸아이가 여름을 지내러 올 무렵은 고추가 익는 시기다.  손주와 집밖을 나가는 게 그들의 주된 일이었는데 이제는 일을 하는 내 곁에 머물며 고추 따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새벽이슬 머금고 있었던 녀석들의 꼭지 떨어지는 소리는 그야말로 청량감 가득이다. 사위와 함께 색감대로 선별하고 있자니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한다. 사진만 찍고 놀고 있는 딸아이와 함께 쉬라고 해도 말을 도통 듣지 않는다. 지금까지 처갓집에서는 늦잠을 한 번도 잔 적이 없는데 잠이 많다는 사위 일상을 믿기가 힘들다.   





이번 여름, 두 번 정도 까맣게 익은 녹두를 땄던 것 같다. 줄기잎 아래 꼭꼭 숨어 있는 녹두는 잘 보이지 않아 익은 녀석들을 놓치기 일쑤다. 얼마 되지 않는 밭이기도 해서 딸아이만 불러 따려했으나 딸아이는 사위를 꼭 불러내고야 만다.  가만 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가 보다. '함께 녹두를 따자.'라고 하는 말을 그냥 넘기지 않고 받아주는 사위도 딸아이랑 사느라 고생이 참 많지 싶다. 그런데 머리에 모자도 쓰지 않고 땡볕 아래 살을 다 드러내고 있는 사위를 다시 집으로 돌려보냈다. 바다를 감싸고 농작물을 관리하는 여름 땡볕을 무시하면 안되지. 모자와 수건은 걸치고 와야 하지 않겠는가.





딸아이네는 바닷가가 근처여도 해수욕을 잘 나가지 않는다. 산책이나 드라이브를 즐기는 엄마 스타일에 손주 녀석도 익숙한지 물놀이 가자며 보채지를 않는다. 텃밭의 급한 농사일을 마치고 나서는 동네 마실을 돌고 오겠다며 방파제로 향하는 게 전부인 그들의 휴식 시간. 어릴 적 딸아이와 사위가 놀던 방파제 주변에서는 추억의 감성 놀이가 되살아 나는가도 싶다. 손주 녀석을 데리고 할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방파제의 여름을 즐기는 그들의 놀이는 웃음으로 가득 차는 것만 같다.





외갓집에 도착하면 손주 녀석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있다. 음력 간조가 적힌 달력을 들여다보며 물때를 확인하는 것. 얕은 바다 방파제는 망둥어 잡이가 대부분이라는 걸 알기에 그들에게 큰 고기가 물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매번 확신한다. 고기 낚시가 쉽지 않은 거금도 신금 동네 방파제의 열악한 물때 환경이지만 사위와 손주의 키재기 놀이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다(사위의 출장과 겹치지 않는 한 딸아이네의 7월 말 여름 휴가는 이곳으로 반드시 정해진다. 그러니 손주가 자라는 것을 같은 장소에서 두고 볼 수 있기에 쉽게 그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물때가 맞지 않아 낚시 흉내만 내고 돌아간 딸아이의 여름은 아직 친정 가까이에서 맴돌고 있는 듯.






휴가, 나미래


'방파제'라 쓰고

'낚시터'라 읽는 곳

남자는 잿빛 바다의

어린 시절을 그려내고

그 남자 아들은

오늘을 켜켜이 눌러

가슴팍에 챙겨놓지

할아버지 장인 정신

야위고 누렇게 빛나

낚싯대 길을 따른다

철 고리에 걸린

얕은 바다 터줏대감

고무신으로 받아냈던

그 어린 망둥어 꾀어

한가족 기쁨을 세웠지

비구름의 희생양

자연과 사람 풍경

아내의 사각형

홈으로 들여보내고




'다음' 메인 브런치 코너에 <딸아이의 여름을 기다린다>의 글과 사진이 실렸네요.

조회수가 늘어 찾아보니 이렇게도 감사한 기쁨을 또 안겨주셨습니다.




 


https://brunch.co.kr/@mire0916/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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