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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Aug 01. 2019

한국어1, 그곳엔 자신의 용돈으로 기부하는 아이가 있다

나미래의 한국어 교육 이야기, 아동센터에서 만난 보물 같은 아이들


 

  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우리말을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다. 시와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지만, 주 수입원은 한국어 교육 현장이다. 작년 11월부터 1년 계약을 하고 일주일에 서너 번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게 된 곳은 오산 시내에 위치한 아동센터이다.


   국내에서 ‘한국어 교육’이라는 것은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이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을 의미한다. 그런데 몇 년 새 그 양상에 변화가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즉, 외국인이 아닌 한국인에게도 교육의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여러 환경의 아이들에게 깊이 있는 한국어와 국어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


세계 여러 나라의 집과 우리나라 집의 특징과 차이점을 알아보기 위 유튜브 동영상을 보고 있는 우리반 아이들.

   

  한국어 교육은 점점 우리의 일상 속으로 더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다문화 가정(필자는 다문화 가정이라는 말의 노출을 꺼린다. 한 부모 중 외국인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다른 한국의 가정 아이들에 의해 차별적인 단어의 기준을 만들 수 있기에.)들이 다수 출현하게 되었고, 그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한국어가 능숙하지 못한 양육자를 통해 한국어의 읽기나 쓰기 교육에 노출이 덜 된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은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라 하여 한국어와 국어 실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실력이 좋은 아이들이 많은 경우도 있다. 일상 대화는 능숙하지만 올바른 한국어의 접근을 필요로 하는 경우 또한 많다.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은 결혼이주민 엄마들이 다수인 가정환경. 게다가 대부분 직장 일을 겸하는 것은 한국 내 엄마들과 다른 양상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은 정보가 내재된 11명의 아이들이 두 반에서 수업을 하고 있다. 한국어 실력(한국에서 태어나 언어를 접했으니 국어 실력이라 표현을 바꿔도 아무 이질감이 없다.)이 조금 좋은 반과 다소 떨어진 팀으로 나눠 진행하는데 수업 진도와 내용의 차이는 대동소이하다. 다만, 아이들의 표현법, 읽기와 쓰기 실력에 따라 다양하게 교수법이 달라진다. 언어를 쉽게 풀어야 하는 반, 직접 옆에서 손으로 가리키며 지도해야 하는 반, 진도의 양이 아니라 주어진 내용의 이해를 먼저 추구하는 반, 말로 설명을 하고 이해를 시키는 반 등과 같이 그 활용법이 다양하다.

 


  수업을 시작했던 초반 무렵, 내 수업에 틱을 가진 한 아이가 수업을 듣는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또래 아이들보다 몸집이 조금 작았지만, 어휘력이 상당한 녀석이라 인상 깊게 봐왔던 터였다. ‘틱’이 있다고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고 많이 웃어주는 녀석이었다. 처음엔 내 말꼬리를 잡아가며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지기 싫어하던 모습을 보고 한숨을 지었던 시간도 있었다. 어휘력이 남다른 아이라 학습한 내용을 미리 알아내고, 모르는 친구들의 수업을 방해했던 녀석일 때도 있었다.


  올 초, 사전 찾기 수업을 한 이후부터는 초등학생 용 국어사전을 매 시간 들고 오는 아이가 되어주고 있다. 자음과 모음, 받침을 조합해서 사전을 찾는 한글의 규칙을 설명할 때는 이해력이 무척이나 빠르고 몸으로 머리로 다 받아내고 있는 아이였다.

 

'친구의 소개'라는 주제로 '-지만'과 '-(이)고','편이다'라는 문법을 적용했다. 또한 성격 어휘를 다양하게 활용하여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국어사전을 찾아가며 수업을 하다 보면 그 중심 단어 주변에 노출되는 다양한 단어에 눈길을 주게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것이 공부가 되고 흥미를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아이들의 상상력을 찾아가는 학습의 길로도 연결이 된다. 여전히 그 녀석은 자신의 두 손으로 들기에도 벅찬 사전을 들고 내 수업에 들어온다.


  어디 그뿐인가. 엄마에게 용돈을 받으면 은행이나 우체국에 기부를 하러 간다고 했다. ‘기부를 한고 싶다’고 용돈을 달라 했는데 엄마가 주지 않았다며 실망을 전한 날이 있었다. 어른인 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었다. “기부를 하러 어디를 간다는 거야?”라고 물었더니, “은행이나 우체국 가면 기부하는 곳 있어요.”란다.


  아하, 은행에서 볼일을 보고 거스름돈이 남았을 때 넣었던 그 사랑의 열매 기부함을 말하는 거였다. 나는 적어도 그랬다. 그냥 기부를 하는 곳이 아니라 10원, 20원, 100원, 50원 등의 동전이 생겼을 때 지갑 안에 넣지 않고 넣고 오던 곳이었는데, 이 아이는 일부러 그 안에 돈을 넣으러 찾아갔다고 했다.


 


  이 녀석에게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날마다 제일 수업 태도가 좋고 적극 참여하는 친구에게 사탕을 주던 나의 선생질 행위는 이날만큼은 이 녀석에게 건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른인 나도 배워버린 따뜻한 세상의 어떤 아이의 이야기를.

 


한국어 교육을 통해 바른 마음의 소양이 자리 잡았으면 했는데 벌써 그 뜻을 이룬 것 같다. 어쨌거나 그들의 속마음을, 논리를, 아름다운 언어로 반응하며 들어주는 일은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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