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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Feb 07. 2020

여행에세이 연재3. 첨성대의 명물(?) 분홍 억새

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경주편

[기쁘고 슬폈던 여행_경주편] <첨성대의 명물(?) 분홍 억새>


  가을이 되면 봄과 여름이 키워낸 풍성한 가지의 단풍을 기다리게 된다. 지난 4월, 홀로 경주를 찾았을 땐 봄은 부지런하고 바쁜 여름에게 벚꽃 꽃잎을 내어주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을이 오자 첨성대 주변은 벚꽃 단풍보다 화려한 핑크뮬리를 피어내게 했다. 

  핑크뮬리이하 분홍 억새는 벼과 쥐꼬리새속의 여러해살이풀로 외래종 억새다. 분홍, 자주, 보라색 꽃이 가을이 되면 풍성하게 피는데 억새와 꼭 닮았다 하여 ‘분홍 억새’라고 부른다. 이 글에서는 분홍 억새라는 한글 이름으로 그 느낌을 표현해내고 싶다. 이른 가을부터 분홍 억새와 인생 사진을 찍는 움직임이 SNS를 타고 있었다. 젊은 층에서 먼저 인기를 얻고 있는 듯했고, 전국 각지에 핀 분홍 억새의 장소가 알려지고 있다는 조카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아들과 함께 오전 10시 경 신경주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제일 먼저 우리가 향한 곳은 첨성대였다. 첨성대 주변은 온통 붉은 분홍 억새의 반란이 시작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첨성대를 보기 위한 방문보다 분홍 억새 군락지로 향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더 들어왔다고나 해야 할까. 

  SNS의 입소문을 타고 어느새 첨성대 주변의 분홍 억새를 찾아가는 것은 가을의 이벤트가 되어 버린 듯했다. 시내버스 60번 기사님이 그런다. “요즘 들어 평일에도 오후가 되면 차가 나갈 수가 없어요.”라고. 걷고 걸으며 길도 헤맸고, 가을 사람들을 만났으며, 신라 천 년의 역사와도 함께 했다. 밟고 서 있는 곳은 대부분 문화재의 길이었다. 황리단길에서 걷기 시작하여 분홍 억새의 정원이 함께였으니 금상첨화지 않았겠는가. 

  분홍 억새의 꽃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솜털 하나하나의 분홍이 모여 몽환적인 분위기의 가지를 자랑하고 있었다. 옷에 착 달라붙을 것 같은 씨방을 지녔고, 꽃이 활짝 피어 얼기설기 그물망이 되어가는 녀석들이 핑크로 물들어 파스텔의 색감을 뿌려놓고 있었다. 



  우리가 첨성대 주변을 가장 먼저 선택했던 것은 비단 분홍 억새 때문만은 아니었다. 바로 2016년 9월에 일어난 경주 지진 발생 이후의 첨성대 모습을 보기 위함이었다. 불국사로 먼저 향하고 싶어 하는 엄마에게 아들이 제안을 해왔다. 뉴스기사에서처럼 첨성대 윗부분 꼭대기에 우물 정井자 모양의 2단 정상부가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직접 그 모습을 눈으로 보기 위해 첨성대로 제일 먼저 달려온 것이다. 벽 사이에 넓은 구멍이 생긴 첨성대의 벽돌 자태를 보고 아들과 나는 아쉬움의 한 목소리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릎을 꿇고 제대로 보겠다고 엎드려 버린 아들 녀석은 모래 바람도 상관없다 했다. 첨성대 주변의 너른 평지 경관은 아들과 함께 할 땐 많은 주의를 주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한 곳이기도 하다. 다만, 바람이 조금 크게 일거나 일부러 흙길을 걸어 다닐 땐 모래와 흙바람을 일으키지 않도록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주의를 기울여야만 할 것 같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아들이 10대의 성장 길에 올랐다. 아들은 이제 책 속의 활자를 통해 경주의 건축과 역사를 더 자주 만난다. 나는 그럴 때마다 추억을 소환시키며 아들과 함께 다니며 만났던 경주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2017.10.  



흔들리다 멈쳤어

불꽃이 든 돗자리 위 나

흙모래 들은 벽돌을 타고 올라 

구멍 난 선들에 자빠지며 

내게서 내려갔다네 

오래된 숨결은 적막이 탐을 내고  

돌 나무는 무연히 풀 소리를 씹어냈지

밤을 들여다보고 

별의 열꽃을 받아냈던 그릇에 

검은 살만 자꾸 팽팽해져만 갔던 거야 

연원이 되어가는 나의 몸을 두고 

너른 잔디밭과 꽃가지들이 

가을의 외로움을 노래해도 

사진들은, 관심들은

분홍 솜사탕 너에게만 찾아가네

내 마음을 들켰다 

여럿이 군락이 되어 빛나는

낯선 이름 핑크뮬리는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 좋단다 

몽환의 거리는  

인생 사진이 되었다가 

인증 사진이 되었다가 

주의 사진이 되기도 하더라  

나의 시선이 부담스럽겠지

분홍 억새는 다른 이들의

관심의 피로를 즐겼을 거야 

그랬겠지! 나를 피해

바람에 불려 다니는 씨방을 붙들고 

이 가을이 반가웠다며 이야기하겠지


<첨성대와 분홍 억새>





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기쁘고 슬펐던 여행_경주편(p.21)



https://brunch.co.kr/@mire0916/444


https://brunch.co.kr/@mire0916/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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