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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Feb 07. 2020

여행에세이 연재4.섭지코지, 버스를 타고 걷기로 했다

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제주편

[제주는 느림이다_제주편] <섭지코지, 버스를 타고 걷기로 했다>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는 버스를 타고, 느리게, 뚜벅뚜벅 걷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길에서 사람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아들과 나는 녹동항에서 제주로 가는 1박 2일의 3등석 배표를 끊었다. 지난 2월 초, 제주도 가족여행에서는 남편의 차도 함께 동행을 해서인지 꽤 오래전부터 예약이 진행됐었다. 그런데 이번 제주도 여행은 90%가까이 즉흥으로 계획이 꾸려지면서 출발 전날이 되어서야 왕복표를 구할 수 있었다.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배안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3박 4일과 2박 3일의 일정은 적어도 한 달 전, 두 달 전에 표를 구하기 위해 바쁘게 서둘렀다 한다. 

  친정이 숙소가 되어주니 전라도 남부 지역에서 다닐 수 있는 곳이 많다. 특히, 제주는 친정이 숙소의 기점이 되어 언제 출발해도 부담이 없는 환상의 드림 여행 코스이기도 하다. 

  5월의 제주도는 푸름푸름했다. 짙은 바다 색깔도 초록으로 뒤덮인 듯한 착시현상을 느끼게 했다. 우리는 장소를 고민할 겨를도 없었다. 지난 2월, 힘찬 겨울바람을 등에 지고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방문했던 해안사구 섭지코지가 다시 첫 번째 여행 장소가 되어주었다. 섭지코지의 기막힌 해안 절경과 유채꽃이 피어오르던 그 광경은 이른 봄물을 내보였던 2월에 이미 우리의 시선을 빼앗아갔다. 바람의 양이 오래도록 기억되는 섭지코지를 5월에 다시 한 번 방문할 수 있기를 기대했었다. 





  작은 해안, 작은 땅으로 불리는 협지狹地는 제주도 방언의 입말에 따라 ‘섭지’가 되었다는 설이 있다. 코지라는 이름은 ‘곶’을 나타내는 제주도 사투리라 하기도. 제주항에서 2시간 남짓 걸리는 곳으로 행선지를 정한 것은 섭지에서 불던 거대한 바람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 바람의 틈새에서 자라고 있는 5월의 풀꽃과 해안의 풍경을 제대로 즐기고 싶었다. 봄 햇살에 푸른 바다 빛과 어우러진 진정한 봄물의 봄날은 이곳에서 시작이리라.

  섭지코지의 주차장에서 5분 정도 올라가면 넓고 평평한 코지곶 언덕에 옛날 봉화 불을 지피던 돌로 만든 봉수대 모양의 협자연대가 보존되어 있다. 아들은 지난번에 자세히 보지 못한 곳으로 다가가 꼼꼼히 글을 읽는다. ‘봉수대구나!’라고 감탄하는 엄마에게 아들은 “엄마 협자연대는 봉수대와는 조금 다르대요. 여기 읽어보세요.”라며 손과 입으로 나를 이끌기 바빴다. 동북방향으로 솟아있는 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오름이라 불린다고 했지. 제주 사투리로 붉은 화산재를 ‘송이’라고 하는데 붉은 화산재로 이루어진 붉은 오름을 사람들이 많이 오르고 있었다. 송이를 만지고, 발로 차고 다니며 놀고 있는 아이에게 어쩔 수 없이 주의를 주게 되었다. 바람에 날리는 먼지 가루를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아들과 나는 일정에 구애받지 않은 뚜벅이 여행에 시간을 애걸복걸하지 않았다. 늦어도 좋았고, 바쁘지 않았으면 했다. 더 놀 수 있었으면 했고, 더욱 많은 풀꽃들을, 바다를 눈에 넣고 싶었다. 그런 소망이 담아졌는지 너른 잔디밭을 따라 끝까지 걸어 나가보니 화산석에 등을 기댄 야생화들이 고운 향을 내뿜으며 봄을 만끽하고 있었다. 시원한 바람까지 그들에겐 큰 선물이었던 것이다.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풀꽃과 야생화를 꺾어 손에 쥔 어떤 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돌아오는 배안에서 안타까워 지어낸 시가 있다. 

  화산석과 만난 바다는 자연과 공생하고 있었다. 바다를 만나고 싶은 아들의 발걸음은 화산석 위로 조심스럽게 옮겨 놓기를 반복했다. 흔하게 볼 수 없었던 거북손을 발견하고 엄마를 불러내는 아들의 목소리에는 흥이 가득했다. 둘은 화산석 바윗돌에 꼭꼭 숨어있는 거북손을 찾아내 된장국에 반드시 넣어보겠다며 돌에 붙은 거북손을 분리시켜 보았다. 페트병 안에 바닷물을 담아왔음에도 살아남지 못한 거북손에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았다. 자연은 자연답게, 그곳은 그곳답게, 남겨 주는 것. 예제없고 내남없이 풀꽃을 만진 다른 사람들을 탓할 것 하나도 없다. 

  바다와 대화에 빠진 우리는 돌아갈 때는 버스를 타는 곳까지 해안선을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징징거릴 것만 같았는데 아들은 엄마의 말에 적극 동의해 주었다. 해안선 도로에 캠핑카를 멈추고 쉼을 그리던 어떤 부부에게 길을 물어보니 친절한 대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아들과 걷고 있는 여행 수다를 옮겨놓기도 했다. 

  지금까지 여행에서 우리는 지역 주민들과 말을 섞을 기회가 흔치 않았다. 특히 렌터카나 자가용을 이용했으니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나 역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이번 여행은 지역 주민이나 여행자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것이 조금은 다른 기억으로 더듬어 질 것 같기도 하다. 2017.5.



소리가 익숙한 풍경을 찾아왔다

눈이 아끼던 바람의 언덕도 올라섰다

달라진 바람은 가을을 달리고 있었다

갯가 근처에 발을 묻은 쑥부쟁이 여럿

이름을 몰라도 걱정하지 말라했다

‘나는 갯쑥부쟁’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검색대에 올리는 빠른 문명이 내 손안에 

섭지코지가 전해주는 가을이라 했다

화산송이 곁에 몸을 숨긴 네게 

첫눈에 반하고 바람과 함께 서성거렸다

사계절 결 따라 바람의 온도는 널뛰지

가을 잔치 벌인 갯쑥부쟁이 

늦바람난 카메라에 꽃을 피우게 했다 


<섭지코지 갯쑥부쟁이, 나미래>




나미래의 여행에세이,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

제주는 느림이다_제주편(p.37)



https://brunch.co.kr/@mire0916/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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