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혼비 「아무튼, 술」
1. 미리 말하거니와 난 술을 잘 마시는 편이다. 여기서 '잘'의 의미는 '자주'가 아니다. '좋아한다'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마시는 걸 잘 해낸다는 뜻이다. '자주'와 '좋아함'의 관점에서 보자면 난 술을 자주 마시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병원에서 "술 자주 드세요?" 하고 물으면 보통 "아닙니다."하고 답을 하는데 모니터를 보던 의사 선생이 날 흘끔 쳐다본 경우도 있다. 아무래도 면상과 몸뚱아리가 사극에서 주인공 선비의 뒷자리에 앉아 "어이 주모, 어여 여기 술과 고기를 내오시게." 하며 껄껄 웃음을 터뜨리는 산적 패거리처럼 생긴 까닭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술을 '잘' 마신다고 할 수 있는데, 일단 주량이 꽤 된다. 천천히 마신다고 하면 소주는 세 병 정도는 거뜬하고, 맥주로는 잘 취하지 않는다. 사실 소주와 맥주는 평소에 좋아하는 주종이 아니다. 난 흔히 말해 '독주파'다. 도수가 30도는 넘어가야 다음날이 편하다. 그러다보니 주로 전통소주, 고량주, 위스키 쪽을 선호한다. 셋 중 그나마 저렴한 전통소주와 고량주는 혼자 한 자리에서 약 500ml 한 병은 비워낸다. 위스키도 반 병은 비우고 멀쩡하게 일어나서 집으로 온다. 더 짜증나는 건 그러고도 취기가 없을 때가 다반사다. 그러다보니 어지간한 주량을 가진 사람 하나 나자빠뜨리는 건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술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술자리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난 사실 술자리도 선호한다고 할 수는 없다. 난 그냥 좋아하는 사람들과의 자리를 선호한다. 술 자리 자체를 즐기진 않는다. 술자리는 대체로 뭔가 노곤한 분위기가 풍겨나곤 하는데, 신경을 긁거나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요소가 가끔 튀어나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술을 좋아할 수 없게 하는 건 역시나 '실수'의 문제다. 지금껏 살면서 필름이 끊긴 게 몇 번 되지 않는데, 대부분 20대 초반의 일이었다. 눈을 떠보니 다른 과방에서 잠들어 있다든지, 눈을 떠보니 천호역 벤치에 앉아있다든지, 눈을 떠보니 석촌호수 벤치 위에 누워있다든지 하는 식인데 주변의 증언으로는 크게 실수한 건 없고 갑자기 푹 자버리더라 했지만, 그런 식으로 갑자기 삶의 스위치가 'off'로 내려가버리는 건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 관심사에서 벗어나 본 적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한동안은 위스키나 와인 관련된 유튜브를 찾아보기도 했었다. 기왕 마실 거 좋은 걸, 잘 즐겨보고 싶었다.
"이 술이 이 음식하고 페어링이 좋아."
"이 술은 이럴 때 마시는 거지."
"잘 느껴봐. 스모키함 뒤에 미세하게 피어오르는 카랴멜 향기 같은 게 있지 않아?"
이런 멘트를 너무너무너무 해보고 싶었던 탓이다. (연습 해본들 무엇하리, 들을 사람이 같은 산적패거리 밖에 없는 것을.) 난 결국은 술 자체보다는 그 술이 만들어내는 무언가를 이용해서 다른 누군가를 만나보고 싶었을 뿐이다. 이리저리 생각해봐도 결국 술 자체를 좋아해본 일은 없다. 마셔야 하니 마셨을 뿐이고, 마시면 분위기가 부드러워질 것 같아서 마셨을 뿐이다.
그리하여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전히 신기하다. 반대로 그들은 내게 술이 왜 안좋은지 물어본다. 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술 한 모금 안 마시고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사람이다. 잘 뜬 회나 평양냉면을 보아도 소주는 생각나지 않고, 치킨을 보아도 맥주는 떠오르지 않는다. 난 그냥 회가, 평양냉면이, 치킨이 좋다. 꼭 페어링을 해야한다는 생각은 없다.
이런데 하필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술을 좋아한다. 내 주량의 팔할이 그 녀석들 덕이다.
특히 사진을 찍는 친구가 내 술 스승이나 다름이 없는데, 이 녀석은 내 주량을 늘리는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난 것마냥 날 다그친다. 사실 지금 정도만 해도 충분히 '나도 어디서 꿇리진 않어' 인데, 그 녀석은 '난 여전히 배고프다'인지, 계속 더 마셔야 한다고 강변한다.
심지어 난 친구들과 술을 마시게 되면 소주보다는 현격히 비싼 술을 마시게 된다. 다들 '처음처럼' 마실 때, 나만 '화요' 마시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된다니. 가끔 이 우정에 감복하게 되기도 하지만, 이 우정 왠지 해롭다는 느낌이 밀려오기도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3. 여튼, 책 이야기는 하나도 안하고 내 이야기만 주절주절 늘어놓고 있는데, 이 책이 그런 책이다. 김혼비 작가의 글은 유쾌하지만 뼈대가 단단하고 근육이 탄탄하다. 그래서 참 읽기가 좋다. 술 이야기이면서도 충분히 작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아무튼' 시리즈를 이 책을 출발로 계속 읽고 있는데, 대부분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무언가 하나의 '마중물'을 핑계로 길어올리는 책들이다.
그러고보면 이 '헤비의 서재' 연재를 시작하면서 머릿말에 이렇게 적었다. 책을 핑계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 문장을 적으며 난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를 생각했다. 책이 던져지면 파장이 일어난다. 책은 다른 사람의 것이지만 파장은 그나마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테다. 그리 따지면 이 공간에 쓰고 있는 글이란 건 '서평'일 수는 없다. 책 이야기는 아니다. 파장의 이야기니까.
처음엔 그런 마음으로 글을 썼는데 나중엔 그게 맞나 싶어진 순간이 꽤나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나마 약 20주 연재를 했으니 딴에는 꽤 꾸준히 했다. 여전히 마음에 던지고 싶은 책들의 목록은 늘어져 있다. 내 옆에는 읽어야 할 책이라고 사 놓고 건드리지 않은 책이 여전히 20여권이 있다. 그 중에 여기 올리기 위해 산 책도 꽤 된다.
그런데 오늘 아침 이 책을 읽으며 문득 '쉬자' 싶어졌다. 이것이야말로 H.O.T의 「캔디」 같은 일이다. 그냥 아침에 일어나보니 '헤어지자.'는 단어가 머릿속을 지배해버린 거다. 물론 캔디의 화자는 길을 가다가 맘을 바꿔먹고 그냥 '널 사랑해' 라고 말하고 끝을 내지만 그렇게 문득 헤어져야겠어 라고 마음을 먹게 되면 언젠가는 헤어지게 되어있는 게 인지상정이다. (난 왜 저 '인지상정'이란 단어만 들으면 포켓몬의 로켓단이 자동적으로 떠오를까?) 쉬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언젠가는 쉬게 될 터인데, 그럴바엔 지금 쉬는 게 어떨까 싶다.
4. 인스타그램과 브런치를 하면서 책을 어느정도는 의무감에 읽게 되었는데, 좋은 책이란 의무감에 읽어도 마음에 와 닿는 게 있기 마련이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좋은 술을 마시면 기억에 남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을 그만둔지 어느새 2주차를 지나가는데 사실 그 사이에 엄청나게 개인적인 무언가를 해낸 것은 없다. 일을 쉬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몸에서 청구서를 날려댄 까닭이다. "여기 수리요." "여기 문제있어요." "여기도 봐주세요." 하면서 성화를 댄다. 약이 병을 부르고 병이 또 약을 불러서 내가 병인가 약통인가 모를 경지에 이르러 있다.
아침에 일어나 멍하니 앉아있다가 그래도 뭐라도 해야지 하고 이 글을 쓰는 건데, 이 연재마저 쉰다고 하면 뭔가 더 늘어져버려서 아예 평면인간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일단은 여기서 쉼표를 찍는 것이 좋겠다 싶다.
참, 얼마 전 통풍 진단을 받아서 난 사실 이제 술을 잘 마시는 인간의 대열에서도 이탈했다. 술은 적든 많든, 그것이 맥주가 아니라 해도 통풍에는 쥐약이라고 한다. 몸 속에 쌓인 요산이 배출되어야 하는데, 모든 알코올은 그 요산을 다시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문제는 내 술 스승인 그 사진쟁이가(점점 단어가 격해진다) 심지어 통풍의 선배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그 친구는 백퍼센트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 나약한 새끼."
누구나 다 자신만의 나약함을 가지고 산다. 그러니 나약한 새끼라는 말은 인간을 다르게 부르는 말이 아닐까도 싶다. 일부러 강해질 필요도 없다. 일부러 주량을 늘릴 필요도 없다. 그냥 그 자리를 즐길 수 있을 정도만이면 족하다. 사실 더 좋은 건 가장 나약한 사람도 즐길 수 있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튼 시리즈의 책이 워낙 많다보니 「아무튼, 술」 뿐 아니라 「아무튼, 데모」는 장바구니에 담아두었고, 「아무튼, 하루키」는 소중한 친구분께 선물 받았고, 「아무튼, 피아노」와 「아무튼, 바이크」는 도서관에서 빌려놓았다.
그런데 「아무튼, 커피」는 아직 찾아볼 수가 없더라. 왜지?
커피는 생각해보면 뭔가 임팩트가 없기는 하다. 일어나서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멍 때리다 또 한 잔, 퇴근길에 피곤해서 또 한 잔. 그렇게 몸 속에 피가 아닌 커피를 순환시키는 게 아닌가 싶은 나로서도 커피를 가지고는 딱히 할 말이 없다. 게다가 하필 주변 인간이란 것들이 다 커피보다는 술이라서 더 할 말도 없다. 물론 내게는 첫 눈 오던 날 커피숍에서의 이별도 있었고, 커피숍에서 맞은 화이트크리스마스도 있고, 커피숍 여행도 좋아하고... 하지만 뭔가 흔하다. 모르겠다. 누군가 쓰겠지. 내 일은 아닌 것 같다.
언젠가 나오면 난 커피를 마시며 「아무튼, 커피」를 읽을테다. (혹여 이미 나와 있다면 알려주지 마시라. 당장 읽을 생각은 아니라서.)
아무튼 이렇게 스물한 권의 책으로 첫 번째 책장을 채웠다. 다음 책장은 조금 더 정돈된 모습으로 찾아뵙겠다. 당장은 아니다. 언젠가는, 이다. 그때까지 책 많이 읽으시고 책 많이 마음에 던지시길.
사실, 책은 안 읽어도 괜찮다. 분명 알랭 드 보통의 책에서 읽은 문장이라 기억하는데 같은 책을 계속 살펴보았음에도 찾지 못한 문장이 있다. (난 원래 뭔가를 잃어버린 다음 찾는 일에 영 젬병이다.) 내 머리에서 수없이 뒤집히고 뒤바뀌어서 그런가보다. 여튼 이건 남의 말을 기억나는대로 적은 것이다.
"이 세계의 어떤 책보다도 당신의 인생이 더 무겁습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이미 가장 무거운 책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다는 건 원래 '비웃기 위해'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똑똑하고 예민한 누군가가 몇 달 며칠, 때로 몇 년 동안 애를 써도 한 손에 들어오는 무게 정도 밖에는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에 부디 위로받으시기를. 삶의 무게가 그대에게 부디 안온함의 무게로 바뀌는 날이 오기를. 그날까지 어떻게든 버텨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