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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May 30. 2024

결국 그래도 더, 더 민주주의로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렛「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1. 어떤 통계나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게 아니라 그저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긴 하지만, 1950~60년대에 서양에서 나온 인문서적들에서는 하나같이 히틀러의 그림자가 느껴진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이렇게 된 거지?" "우리가 어쩌다 여기까지 온 거지?" 내 손에 닿은 대부분의 책에서 같은 질문이 느껴졌다.


개인은 역사 속에 편입되는 존재다. 시대의 고민은 개인의 성향을 넘어 모두를 휩쓸고 지나간다. 거대한 태풍이나 쓰나미 같은 것이어서 그걸 피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난 그런 것과 상관이 없어요.'란 소리는 그저 자신이 어리석어서 휩쓸려가고 있음에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는 것일 뿐, 다시 말하거니와 시대는 개인을 휩쓸고 지나가고 이것을 벗어날 수 있는 존재는 없다.


히틀러에 비교할 바인가에는 많은 이견이 존재하겠으나, 요즘 미국을 중심으로 나오는 정치관련 서적들은 하나같이 그 물음표의 갈고리 끝에 한 문제적 인물의 목덜미를 걸어두고 있다. 바로 미국의 45대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다. 그는 등장부터가 뭔가 기묘했다.


그가 공화당 경선에 뛰어들었을 때 그의 대통령 당선을 예상한 인물이 과연 이 지구상에 몇이나 됐을까? 그런 사람이 있기는 했을까 싶다. 오죽하면 유명한 짤이 돌았지 않나. 트럼프의 당선 소식이 알려지자 주변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는데 정작 트럼프 본인의 표정은 썩 밝지 않다. 이 사진을 두고 사람들은 트럼프의 머리에 생각풍선을 붙여서 이렇게 적었다.


'내가 대통령이 되다니. 이 나라 생각보다 문제가 정말 심각한 걸.'

2.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릿의 전작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트럼프의 기묘한 등장을 두고 쓰여졌고, 이 책은 트럼프의 충격적인 퇴장을 보며 쓰여진 책이다. 물론 이들은 트럼프가 다시 복귀할 수 있다는 사실(트럼프 본인이 복귀를 하든, 트럼프의 대리인이 복귀를 하든)을 염두에 두고 책을 저술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이들의 전작과 이번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다가오는 건 바로 '재미'다. 이들은 글을 참 맛깔나게 쓴다. 물론 이 '맛'은 정치덕후 기질이 있는 내게나 적용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여러 예시를 들어가며 논지를 흥미진진하고 긴박하게 제시하는 재주가 있다.


자꾸 전작 얘기를 하게 되어 죄송한데, 전작인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사실 책을 다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면 민주주의의 붕괴를 말하는 책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다보면 저자들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데 재미가 들린 사람들처럼 보인다. 저자들이 던진 공에 내 머릿속에 서 있던 생각들은 볼링핀처럼 쓸려나간다.

책의 제목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인데 막상 책을 다 읽으면 "우리가 정말 민주주의를 제대로 해 본적이 있기는 해?"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목사님의 일갈이 자연스레 들려온다.


"아니, 이 나라의 도덕이 무너졌다, 사회 질서가 무너졌다 그러는데, 대체 이 나라가 언제 도덕을 세워 본 적이 있고 사회 질서를 세워 본 적이 있습니까? 세웠어야 무너지는 거지, 이 나라는 세워 본 적도 없어요."


우리는 교과서에서 미국을 민주주의의 태동국가이며 현대 민주주의의 모범이며 전세계 민주주의의 수호신으로 배운다. 특히나 우리처럼 민주주의 제도를 투쟁이 아닌 이식에 의해 시작한 경우는 더더욱 미국이 위대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 입장에서 그들은 위대한 것이 아니라 위대해야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들은 우리의 기대를 깡그리 무너뜨린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차별과 편협의 산물이다. 심지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를 생각하지 않았다. 저자들은 우리 머릿속에서 자유를 월계수 잎처럼 입에 물고 푸른 창공을 나는 독수리인 미국을 가차없이 쏘아 떨어뜨린다.

3. 순진한 사람들의 뒤통수를 휘갈기며 웃음을 터뜨리는 저자들의 나쁜 습관은 이 책에서도 하나도 변하지 않는다.


요즘 들어 우리는 여러 국가에서 민주주의에 경고등이 들어오는 것을 본다. 수많은 나라가 우경화를 지나 다시 파시즘의 길로 접어드는 게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최신의 문제들을 빠르게 업데이트하며 수많은 나라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 붕괴 현상을 보여준다.


여러 사례에서 우리는 몇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단 선거에서의 정당한 패배를 수용하지 못하는 집단이 출현한다. 이들이 가진 공포는 극단주의자들을 만나 일종의 암세포가 된다. 이 암세포에 먹이를 공급하는 기회주의적인 정치엘리트들이 늘어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책 속에서 워낙 많은 사례들을 들어놓다보니 읽다보면 이게 어떤 개별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취약성이 문제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는 건 (많은 분들도 경험하시게 되리라 싶은데) 책에서 하나의 예시를 들면 그 위에 고스란히 '우리한테도 이 일이 있었는데' 하면서 오버랩되는 장면이 있다. 어김없다. 모든 예시에서 우린 우리의 사례를 찾을 수 있다.


책에서 다루진 않았는데 얼마 전 이런 기사를 접했다. 지금 미국의 헌법학자들이 한 고민에 빠졌다고 한다. 바로 트럼프가 다시 대선에 나와서 당선이 된 후, 그 자신이 저질렀다고 여겨지는 범법행위들에 대해 '셀프사면권'을 발동시켰을 경우 이것을 헌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지금 대통령이 자신을 노리고 있는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고, 여당은 이 거부권 재의결을 무산시켰다. 놀라운 역사의 대칭이다. 이런 것을 책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다는 거다.

4,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지금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가 아니라 당장 우리의 현실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민주주의의 붕괴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는 책이 된다.


당장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물론 이 나라에는 많은 독재의 흔적들이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드려놓은 그림자 때문에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그늘에서 자란 나무마냥 뿌리부터 뒤틀려 있다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재의 구도에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인물로 나는 이명박을 꼽고 싶다.


정치를 두고 오래전부터 그들만의 리그라 부르고, 낮에는 국회에서 멱살을 잡다가도 밤에는 술집에 모여서 웃고 떠든다고 정치인들을 욕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게 정치다. 상대를 죽여 끝내는 게 아니고 선을 지키고 양보를 통해 타협을 이뤄내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다. 100점을 맞을 수는 없더라도 가끔 80점을 맞고 적어도 70점 이하로는 내려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다.

그런데 이명박은 수사기관은 물론 국정원까지 동원해서 노무현을 죽이려고 했고 그 일은 현실이 되었다. 피를 본 이 나라의 정치가 다시 민주주의적 타협의 정신으로 다시 돌아가기까지의 시간이 얼마나 걸리게 될까?


개인적으로 너무 웃긴 것은 칼을 휘두른 세력이 공포도 더 크게 질려있다는 사실이다. 탄핵 이후 민주당은 20년 집권을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지만 5년만에 다시 정권을 빼앗겼다. 그런데 그 이후 다시 정권을 가져간 보수세력의 행태는 그야말로 공포에 질려 무작정 허공에 칼을 휘둘러대는 얼치기 이등병같아 보인다.


현 대통령은 지난 2년간 야당 대표를 범죄자로 규정한 이후에 지난 총선 참패 이전까지는 얼굴조차 보지 않고 지냈다. 계속 무리한 신상털기식 수사와 압수수색만 반복되었다. 이런 정치는 유래가 없다. 아예 정치라고 부를 수도 없는 정도다. 무엇때문인가? 정권을 잃으면 죽는다는 공포 때문이다.

5. 미국 공화당은 이제 민주주의의 탈을 뒤집어 쓴 기회주의자들의 집단이 되어버렸다고 책은 일갈한다. 그러면서 현재 미국 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를 제도의 문제, 특히 너무 오래된 헌법 문제에 집중한다.


민주주의는 결국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움직인다. 물론 소수의 의견도 존중 받아야 한다. 소수의 의견이 더 옳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의 의견은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지 다수의 의견에 앞설 수는 없다. 다수보다 앞서는 소수의견이라는 것은 민주주의 자체를 위반하는 셈이다. 귀족정, 원로정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민주주의에서 벌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소수의견 존중이라는 탈을 쓴 채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붕괴시켰을 때 나오는 수많은 넌센스와 폭력적인 결과물들을 보여준다. 그 이유는 당연하다. 소수의견 존중이라는 프레임을 진짜 '소수자'가 사용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기존 기득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숫자만 소수일 뿐,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의견을 강하게 퍼뜨릴 수도 있다. 그러면서 '소수'라는 뭔가 희소성 있어보이는 포지션까지 강탈해가는 것이다.

6. 그저 생각나는대로 두서없이 중구난방으로 적어서 죄송스럽긴 한데, 책은 꼭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릴만 하다. 다시 말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게 읽히는 책이다.


보통 책은 시간의 문제 때문에 한참 후에야 '그땐 그랬지'하는 느낌으로 읽기 마련이라면, 이 책은 지금과 책의 시점이 그리 크게 동떨어져있지 않기 때문에 같은 시대의 호흡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도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계속 고민하고 있는 지점, 바로 '포스트 민주주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정말 계가 움직여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우리는 이제 민주주의의 다음 체제를 고민해봐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나는 이 책에 '우리는 여전히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해본 적이 없으며, 계속 불완전한 민주주의만을 맛보다가 이대로 민주주의를 버려버리기에는 민주주의의 이상이 너무 귀하지 않는가' 하는 민주주의자의 호소가 담겨있다고 느껴졌다.


민주주의는 무척 오래 전부터 의심받아왔다. 민주주의는 실제로 똑똑한 이들이 바라보기에는 너무 어리석은 결과만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정치체제이며, 어리석은 자들이 수행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체제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어쩌면 완성이라는 게 애초부터 없을지도 모른다. 끝없이 밑바닥으로 차오르는 물을 퍼내가며 태평양을 건너는 일처럼 지난하고 위험하고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결국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더, 더 민주주의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며 책을 덮었다. 어쩌면 무척이나 막연한 결론이다. 하지만 우리의 지금은 민주주의의 여정 가운데 있음을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왜? 이 책은 수많은 민주주의의 붕괴 사례들을 다루지만, 지금도 우린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으며, 결국 우리 모두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눈 앞의 붕괴 사례는 언젠가 다다를 민주주의의 완성을 위한 과정으로 기록 될 것을 믿기 때문이다.

추신. 이 책은 어크로스 출판사로부터 협찬을 받았다. 평생 처음 출판사에서 읽어보라 협찬을 받은 책이어서 감격을 했지만, 리뷰는 보시다시피 처음부터 끝까지 내멋대로 써버려서 출판사에서 과히 좋아하진 않으시리라 생각한다. 애초에 리뷰를 어떻게 써달라는 가이드라인이 없어서 좋았지만, 출판사가 이 리뷰를 보고 앞으로는 어떤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뭔가 조금 미안해진다.) 여튼 여기 적힌 내용 중 출판사의 의견은 손톱만큼도 없다. 다 내 생각이다. 보시다시피 의심할만한 여지가 없는 중구난방이다.


어크로스 출판사 참 좋은 책 많이 내시더라. 앞으로도 많은 분들의 아낌과 성원을 받으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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