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의 프레이밍 7
키움히어로즈 리뷰를 쓸 때까지만 해도 이 나라에 이런 방식의 풍파가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쉽게 여기는 일상은 언제나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님을 새삼 느꼈다. 야구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일상은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 다행히 비틀거리던 일상이 제 궤도로 조금씩 돌아오고 있으니, 그간 밀린 리뷰를 서둘러 보자. 진실과 정의를 위해 묶었던 운동화 끈을 일상을 위해 되묶을 시간이다.
1. 선발투수진
NC다이노스는 선수단 운영이 깔끔하고 스마트하다는 인상을 준다. 모기업이 게임회사여서 그럴까? 야구에 접근하는 방식에도 일종의 '전략성'이 느껴진다. 구단만의 기준을 적용하여 타팀이 부러워 할만한 외국인 선수를 매년 수급하는 걸 보면 신기할 지경이다. 하지만 올해만큼은 NC다이노스 특유의 스마트함이 왠지 길을 잃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리 좋은 전략을 짜더라도 이를 수행해내는 건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의 몫인데, 올해 NC는 선수들이 부상이나 부진에 빠졌을 때 이를 제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채 2018년 10위에 이어 가장 낮은 순위인 9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올해 NC는 손아섭과 박건우라는 슈퍼스타들이 나란히 부상으로 중도이탈한 것이 팀의 동력을 떨어뜨린 게 사실이었지만, 기록을 살펴보면 야수진보다는 투수진의 부진이 팀 성적 하락의 근본 원인이라고 하겠다. 특히 선발진의 부진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얼마 전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하트의 비율스탯은 무척 아름답다. 하지만 1선발 하트도 시즌 중간중간 잔부상에 시달리며 1선발에게 요구되는 덕목중 이닝이팅에는 약간의 아쉬움을 드러냈고, 결국 팀의 추락을 막아내진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시즌 중반 카스타노를 요키시로 교체한 움직임이었다. 이 승부수가 실패하며 NC는 가을야구와 그대로 작별하는 수순을 밟았다. 카스타노는 투구 내용이 들쭉날쭉해서 안정성이 떨어지긴 했지만, 2~3선발 급 투수로 생각하면 아예 용납이 불가능한 수준의 퍼포먼스는 아니었다. NC가 카스타노를 교체할 수 밖에 없었던 건 아마도 국내선발진의 위력이 너무 떨어지다보니 키움의 후라도-헤이수스 원투펀치정도로 강력한 외인 라인업을 구축해야 가을야구에 도전할 수 있다 생각한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승부를 요키시로 거는 건 실망스러운 판단이었다. 25시즌까지 생각해서 투수 영입을 했다면 다른 판단이 나오지 않았을까? 두산이 시라카와와 요키시 중 시라카와를 선택했을 때 뭔가 힌트를 얻고 다른 선수를 구하는 게 맞지 않았을까? 외국인 선수를 보는 안목에 대한 NC 특유의 자신감이 독이 되어 돌아온 게 아닐까?
신민혁은 수술대에 오를만큼 열심히 뛰었지만 결과는 아쉬웠고, 이재학은 불운했으며 나머지는 아직 팀이 원하는만큼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선발진에 있어서 키움과 NC는 비슷한 면이 많다. 키움은 안우진이 돌아오면 승부를 보려 하고, NC는 구창모가 돌아오면 승부를 보려 한다. 그런데 안우진이 돌아오면 확실한 에이스의 복귀가 맞는데, 구창모는 돌아와도 여전히 몸상태의 물음표를 지워야 하는 숙제가 남아있다. 투수진만 뚝 떼어놓고보면 NC는 키움보다도 미래가 불투명하다
2. 구원투수진
올 시즌 KBO리그에서 불펜이 좋은 팀은 두산과 기아 정도가 다였고, 나머지는 모두 불안한 불펜을 견디면서 시즌을 치렀다. 그런데 또 재미있는 점은 각 팀 별로 시즌 중반을 지날 무렵에는 마무리투수라고 하면 바로 떠오르는 선수들이 다들 하나씩은 생겼다는 점이다. 키움의 주승우, 한화의 주현상, 롯데의 김원중, SSG의 조병현, KT의 박영현, 두산의 김택연, LG의 유영찬, 삼성의 김재윤, KIA의 정해영.
그런데 NC만큼은 2021시즌 이후 마무리 역할을 나름 준수하게 수행해오고 있었던 이용찬이 시즌 중반 이후 완벽하게 붕괴되어버렸다. 나오는 족족 무너지다보니 NC가 상위권에 도전해볼만한 흐름을 도무지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이용찬은 지난 FA 시즌에도 미아가 되었다가 뒤늦게 계약을 하며 NC에 합류를 하였는데, 보통 FA로이드를 말할 정도로 보통 선수들이 FA 직전 시즌 성적이 오르는 모습을 보이는 반면 이용찬만큼은 FA 직전시즌 성적이 뚝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이번에도 반복했다.
그나마 김재열이 어느정도 스텝업 된 모습이었지만 시즌 말미 들어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였다. 빈약한 국내선발진이 만들어낸 스노우볼이 불펜을 덮치는, 전형적인 하위팀 투수진의 패턴이 나왔다고 할 수 있다.
3. 공격 부문
NC 선수운용의 스마트함이 가장 빛난던 순간은 프랜차이즈였던 '나스타' 나성범을 KIA에 뺏긴 순간 지체없이 박건우와 손아섭을 동시영입함으로서 타선의 컬러 자체를 바꿔버리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였다. 이후 NC타선의 컨셉은 분명하다. 1, 2, 3번은 국대급을 넘어 KBO리그 통산 기록을 가지고 있는 역대급 교타자들로 배치되어 있다. 이 선수들이 출루를 하면 외국인 4번타자가 장타를 쳐서 바로 불러들인다. 그 뒤를 권희동 같은 준수한 성적의 5, 6번 타자가 받쳐준다. 7, 8, 9번 타자는 하나같이 수비를 중점으로 두고 삼진을 많이 당하더라도 걸리면 담장을 바로 넘길 수 있는 선수들이다.
올해 NC는 박건우와 손아섭이 동반 부상을 당해버렸다. 타선의 첫단추가 아예 달아나버리자 많은 것이 꼬였다. 4번타자인 데이비슨이 홈런 46개로 홈런왕을 차지했지만 클러치 상황에서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119타점을 쳐줬으니 아쉽다고 하기에도 조금은 민망하다.) 권희동과 서호철이 나름 활약을 해줬지만 하드캐리와는 거리가 있었고, 어느정도 성장을 해줄 것이라 믿었던 국대포수 김형준과 국대유격수 김주원의 답보는 NC팬들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키움에 신인 1, 3라운드 지명권을 내어주고 영입한 김휘집은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그 이상의 역할은 해주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NC의 올해 팀타격지표는 삼진율을 제외하면 리그 평균 대비 나쁘지 않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건 박건우와 손아섭의 빈자리지만, 막상 더 큰 구멍은 투수진에 나 있었던 셈이다.
4. 주루, 수비 부문
전반적으로 무난한 수준의 모습을 보여줬다. 드러난 수비의 수치들보다 평균대비수비승리기여가 낮은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5. 총평
초중반만 해도 KIA와 양강을 다투다가 급격히 추락해서 결국 9위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말았다. (호랑이 꼬리를 만지려다가 큰 코 다친다는 2024시즌 KBO 밈의 첫번째 희생자가 바로 NC였다.) 이 추락을 단순히 불운 때문이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허나 투수진이 조금만 더 단단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그랬더라면 아무리 타선에 공백이 생겼더라도 상위권을 위협할 수 있는 끈끈한 야구를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난 NC가 그 정도의 저력은 가지고 있는 팀이라 생각한다.
플랜 A를 멋지고 꼼꼼하게 짜는 건 사실 어느정도의 실력이 되고 경험치가 쌓이면 대부분 할 수 있다. 플랜 B까지도 신경써서 짜두면 그 분야에 있어서 전문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여기서 플랜 C를 짤 것인가 말 것인가는 어쩌면 선택의 문제다. 가진 자원이 플랜 C를 구성하기에 모자란다면 괜히 시간낭비만 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야구에서는 플랜 C 옵션으로 출발했던 선수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어느 순간 쑥쑥 자라 주전이 되는 경우도 왕왕 본다.
NC의 아쉬움은 야수진을 구성하는 플랜에 비해 투수진을 구성하는 플랜이 엉성하다는 점이다. 여기에 완벽한 야수진의 플랜 A까지 무너지자 NC는 자신의 취약성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문제는 내년에도 이 문제가 만만치 않은 크기의 구멍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문제를 NC는 팀컬러대로 스마트하게 돌파해나가려 들 것이다. 난 그들의 스마트함이 마음에 든다. 계획대로 잘 풀렸으면 좋겠다. 다만 야구 시즌은 너무나 길고, 예측 못한 일들은 늘 일어나기 마련이다. 이 정도면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도무지 생각하지 못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가 요즘 맞딱뜨리고 있는 현실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부디 NC도, 이 나라도 힘을 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너무 좋아하는 NC의 응원영상을 마지막에 담아본다. 뛰어올라라!
https://youtu.be/iGBhOLkBJSo?si=AXE4wGXippuVG2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