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일상에 소소한 행복.. 가장 특별한 선물 같은 삶
압력솥 추 돌아가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전기포트 물 끓는 소리
원두 분쇄하는 소리
동시에 들리는 주말 아침의 소리들에 행복냄새가 묻어있다.
거실에 앉아 있으니 산바람 소리가 휘잉 휘잉.
낮잠 한숨 자도 좋겠다.
책 한 권 옆에 끼고 카페나 가야겠다.
'길모퉁이 카페'에서 <책만 보는 바보>를 읽는다.
실학자 이덕무의 이야기이다.
'나는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 보았습니다.
이 문을 통해 햇살도 드나들고, 바람도 드나들고, 옛사람과 우리의 마음도 서로 드나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안소영 작가의 말)
백탑, 박제가, 유득공, 담헌 홍대용, 연암 박지원..
한 줄 소제목에 끼어있는 백탑파의 이름들로 책은 읽기도 전에 재미있다.
<바다마을 다이어리>
원작을 먼저 읽을까 했지만 마침 cine f 채널에서 방영을 해주니 굳이 뒤로 미룰 필요가 없을 것 같아 보았다.
영화가 참 잔잔하다.
배다른 자매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재물 유산이 아닌 '가족의 의미'로 집을 지켜 나가는 맏딸의 희생과 자매들의 끈끈한 정이 핏줄 깊숙이 느껴지는 영화다.
나도 큰언니, 작은 언니에게 충성하고 큰 오빠, 작은 오빠한테 더 잘 해야겠다는 구태의연한 교훈을 얻는다.
영화가 촬영된 작고 평온한 일본 섬마을에 가봐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가마쿠라'라.. 흠..
'미야베 마유키'의 <희망장>을 읽기 시작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건만 아직 마치지를 못했다.
이 책 저 책 동시에 읽는 버릇, 책만 보면 눈이 뻑뻑해지는 심한 노안 증상, 산만함, 잡생각..
책을 빨리 못 읽어내는 핑계를 들자면 백 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절대 아니다.
우리집 정리 담당 송사마..
잠시 나갔다 오니 이 남자분께서 아들이 초,중등 5년 동안 한우리 독서 모둠에서 읽던 책들과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는 책들을 서재 책꽂이에서 강제 퇴거를 시켰다.
서재 바닥은 널부러진 책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나는 호랑이 눈깔을 하고 남편을 노려 보았다.
"설마 이거 다 버릴 거야?"
"응."
미쳤다..
버리기 진짜 아까운 책들만 다시 모으니 2백 권이 넘는다.
그 중 친구 아이들에게 나눠 줄 책들을 따로 모으니 한 박스 분량이다.
"나머진 예스 24 중고서점에 팔면 된다. 당신이 버리려고 했던 거 돈으로 바꿔 주는 데도 있다는 사실 좀 인지하고, 가서 돈으로 바꿔와~"
'뭐, 얼마나 주겠어..' 하며 어딘가로 전화를 하더니 얼굴에 희색이 돈다.
"여보, ISBN 번호 넣으면 판매할 수 있는지, 얼만지 이런 거 알 수 있다네~"
안경을 이마에 올리고 일일이 번호를 찍는 남편은 1초에 한 번씩 '오 예!'(책 매입값이 천 원일 때), '쯧..'(매입 불가일 때)을 반복해가며 책들을 분류한다.
이 남자, 제법 끈기있게 그 많은 책들의 ISBN번호를 입력하고 매입되는 책들을 솎아낸다.
그러기를 두어 시간..
자기가 분류를 다 했고, 본인이 예스 24에 가져 갈 거니 책 판 돈은 자기가 갖게 해달라며 애절하게 말한다.
그러라고 했다.
다음날 내 예스 24계좌로 172,000원이 입금되었다는 알림이 뜬다.
책 판 돈으로 송사마랑 소개기 사묵을라고 했는데 또 책 사야 하나..
어제는 밤 산책을 나간 지 10분 만에 비가 쫙쫙 내려서 후다닥 돌아왔다.
오랜만에 비 맞으니 어렸을 적 비 맞았을 때의 기분이 생각났다.
비 맞아 안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어서인지 집으로 다시 걷는 10여분 동안의 빠른 걸음 속에 추억도 함께 동행해서 좋았다.
밤 걷기를 시작한 지 2주일이 지났다.
늘 서서 수업을 해야 하는 교사들이 가지는 직업병 1순위가 하지정맥류다.
여름엔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지정맥류가 더 심해져 고통에 잠을 잘 잘 수가 없다.
해서 밤 걷기를 시작했더니 혈액순환도 잘 되고 적당히 피곤해져서 숙면을 취할 수 있어 좋다.
밤에 걷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에 놀랐다.
아파트 후문과 연결된 대청천 산책로가 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걷다가 잠시 멈춰서는 곳은 늘 '대청 성당'의 후문.. 짝사랑하는 마음으로 성당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다시 걷기에 몰두한다. 성당을 보는 그 순간엔 잠시 신께 인사를 한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언젠간, 모쪼록 곧, 성당의 앞문으로 들어가는 날이 오겠지.
무튼, 걸으면 다리가 아프지만 또한 다리가 아프지 않아서 좋다.
오늘 밤 산책엔 우산을 챙겼다.
비 오는 밤이라 산책 나온 사람들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우산 쓰고 걷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혼자 비 오는 밤에 걸으면 살짝 무서웠을 텐데 내 앞에 걷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나도 내 뒤에서 걷는 이가 안도할 수 있는 등빨이다.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