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의 노래 Dec 10. 2017

아부지와 아빠

나의 아부지..그리고 그리움



우리 딸에겐 '아빠'가 있고
나에겐 딸이 태어난 그 해에 하늘나라로 가신 '아부지'가 있다.
가끔씩 딸이 가진 것에 질투 날 때가 있다.
특히 그녀의 '아빠'가 그렇다.

내 아부지는 해군 상사로 전역하시고 그 후엔 외항선을 타셨다. 외항선 타고 나가시면 일 년만에 오셨다.
그렇게 일 년 만에 만나면 어린 나이에도 낯선 아저씨처럼 아부지 대하기가 참 데면데면했다. 오 남매 중 막내인 나도 아부지가 낯설었는데 위의 두 오빠, 두 언니들은 더 그랬다.

그래도 아부지가 하선하시면 학교 가서 이것저것 자랑하기 바빴다.
미제 노랑 연필(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모양)에 부드럽게 돌려지고 끝이 아주 뾰족하게 깎이는 연필깎이, 한 봉지씩 뜯을 수 있는 탱 오렌지주스 가루, 마론인형과 그 외 장난감들.. 내 자랑질 습관은 그때부터였나 보다.
나를 에워싼 아이들이 "우와, 좋겠다~"며 탱쥬스가루를 배급받을 때 내 어깨는 귀 보다 높이 올라가 있었다.
그러나 교실 벽 '혼분식을 합시다.'란  표어 옆에 붙어있던 그놈의 표어 '국산품을 애용합시다' 때문에 내 자랑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반장 가스나 때문에 늘 클라이맥스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직 마론인형이 남았는데 말이다.
이번 드레스는 정말 죽여주는데 씨..
 
"야, 느거 아부지 배 탄다고 자랑하지 마라. 니는 외제가 그래 좋나? 저기 국산품 애용하자는 표어 안 보이나?"
심사 틀린 야시 가스나가 눈까리 희번덕 거리며 따지고 들면 나는 할 말이 없어서 다시 책가방에 자랑거리들을 담아야 했다.

'문디 가스나, 지가 먼데 잔소리고...'
나보다 서열이 높았던 그 반장 가스나 때문에 분을 삭이며 혼잣말로 대꾸했다.
'저 가스나 엄마가 맨날 학교 찾아오니까 내가 맨날 지는기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괜히 짜증을 내면 엄마는 웃기만 할 뿐 학교 한번 갈꾸마..약속조차 안 했다.
"그 반장 가스나 엄마는 맨날 화장 예쁘게 하고 학교 오니까 샘이 좋다 한다 아니가! 내 밥 안물끼디!"

밥 안 먹으면 나만 손해였다.
맛있는 반찬은 늘 깨끗이 비어졌고 냉장고가 없던 때라 남은 반찬이라곤 신김치가 전부여서 밤에 배고파 괴로웠지만 내 머릿속은,
'내일은 마론인형 자랑하고 드레스 몇 벌 가져가서 애들 보는데서 옷 갈아입혀 볼끼다.'로 흐뭇했다.

아부지는 중학교 땐 파카 만년필과 볼펜, 카시오 전자시계로 내 자랑질이  계속되게 했고 고등학교 때는 무려 오토리버스가 되는 빨간색 산요 마이마이로 뽐내게 해 주셨다.
물론 대놓고 자랑하던 어릴 때와는 달랐지만 말이다.
아무튼 영도 촌닭에게 아부지는 내 자존심이었다.
키 크고 잘 생긴 데다 영어도 잘하시고 일본말도 원어민처럼 잘하시는 아부지는 내 눈엔 완전 멋쟁이 그 자체였다.

구속을 싫어하는 괴팍한 성격의 막내딸이 시집 못 갈까 봐 걱정도 꽤 하셨으나 억지로 선을 보라 강요도 안 하셨고, 굳이 한국에서 살 필요는 없다며 늘 딸 편에서 다양한 삶의 가능성을 그려 주셨다.
송사마를 집에 데려 왔을 때 아부지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함박웃음을 보였다.
마음은 여느 아버지와 다를 바가 없는 아버지 셨던 거다.
무심한 세월은 준비도 안된 내게서 아부지를 데려가 버렸다.
3개월여 암으로 투병하시다 작별인사도 못 나눈 채 엄마의 눈만 쳐다보시고는 눈을 감으셨다.

우리 딸에겐 내 아부지와 비슷한 아빠가 있다.
키도 크고, 음.. 키 크고, 암튼 키 큰 아빠다.
그녀에겐 나의 엄마만큼 자상하고, 음식 잘하고, 심성 고운 엄마는 없지만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엄마는 있다.
어릴 적 나보다 더 넓은 집에 살고,
용돈도 더 많이 받고, 무기농 유농약의 맛있는 msg 통닭과 고기를 자주 먹고사는 그녀가 부럽다.
제일 부러운 건 그녀의 아빠다.
오늘처럼 갑자기 내 아부지가 보고플 때 더 부럽다.

아부지..내 보고 있나?
오늘 아부지 생각나서 아부지 자랑 좀 했다. 아부지, 사랑한디!


*2014년 12월 4일에 쓴 글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한 일상은 필요치 않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