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늦여름 동료들과 짧게 도쿄여행을 다녀왔다. 이 멤버들과 여행패턴은 각자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와서 겹치면 같이 하고 안겹치면 따로 놀다 저녁을 함께 하는 정도로 느슨하다. 두어달 전 멤 중 한명의 집에서 파자마파티를 하다 도쿄에 안가본 멤이 있어 그날 바로 각자 마일리지로 티켓잡고 시간차를 두고 도쿄에 도착해서 다닌 여행임
일본은 여러 도시에 여러번 와서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고 최근엔 해외는 미술관 여행만 다니는데다 작년에 아예 일주일을 털어 도쿄에 미술관 투어만 한 이상 볼 미술관도 없었다. 일본의 미술품 컬렉션이 우리보다 좀 나은 것은 있는데 그리 큰 차이는 아니라 지난 도쿄미술관 여행 때 좋았던 미술관의 기획전시를 하나 보고 상설전시를 다시 한번 둘러보는 것 외엔 할 것이 없는 나는 롯본기 근처에 호텔을 잡았으니 그 주변에서 책보고 쇼핑하고 슬슬 거리거나 친구가 하는 것에 조인하거나 말거나, 그렇게 시간을 짰다.
이때 다시 가볼까 싶었던 미술관이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이다. 이날은 동료들도 미술관에 가겠다고 하여 합체가 되었다.
[지난스토리]
작년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을 왔을 때 남겨둔 글 2개
8월말 도쿄의 더위는 살인적이었다. 우리보다 보름쯤 여름이 늦게 물러가는 듯. 너무 더워 양산은 필수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스타일이 떠오르고 우리의 김둥지 작가 스타일도 스쳐지나가는 아스라하고 몽환적인 도시 그림. 원톤의 색감과 단순한 구도가 좋다.
조선 여인의 모습을 그린 일본작가의 작품. 1941년작이니 일제시대에 조선에 건너왔던 기억과 경험이 있는 작가의 작품일 것이다. 박래현같은 작가가 조선인을 그리나 왜색이 보이는데 일본인이 조선인을 그린 이런 작품을 도쿄에서 학교를 다닐 때부터 봐왔기 때문인가, 생각해본다.
기괴한 느낌의 소. 소는 살았으나 죽은 듯도 보인다. 군데군데 흙의 색과 같은 얼룩이 소의 몸을 투과한 것 처럼 보여 소의 표정과 함께 생명없게보이게도 해서 인듯. 물끄러미 캔버스 밖을 바라보는 소의 표정이 인상적
하나는 교토의 집이고 다른 하나는 나라의 집이라고 한다. (교토, 나라 갔을 때 도시의 기억을 되살리자면) 교토는 모르겠는데 나라의 집은 저리 생겼던 기억이다.
인상주의와 점묘에 영향을 받았음을 정직하게 드러낸 듯한 작품. 부드럽고 촘촘한 붓터치가 차이를 만들었다.
아무 것도 아닌 풍경이 무엇이 되는 작품. 흙에서 따뜻한 냄새가 올라오는 듯 했다.
풍경 자체도 좋고 그림체도 좋아서 찍어온 작품
깨진 유리에서 오는 비규칙성이 미적쾌감을 준 작품
일본의 컬렉션이 우리보다 앞선다고 느끼는 것이 이런 대가들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어서다. 대가의 주요작품은 아니어도 작가의 화풍이 인장처럼 남아있는 꽤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이 폴 세잔의 작품도 그런 류.
로버트 라우센버그도 가지고 있었다. 이 형태를 구리로 바꾸면 라우센버그의 시그니처 작품이 될 듯
야스퍼 존슨도 가지고 있네
이런 스타일의 그림을 하던 시절도 있었구나
도쿄 국립근대미술관은 우리 작품도 꽤 많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우선 박서보화가의 <묘법>
박서보의 시그니처인 <묘법>을 나는 여기서 처음 보았다.
이우환 선생의 <선으로 부터>와 <점으로 부터>
반가웠다.
이우환 선생의 <대화> 시리즈인가 보다 했는데 바람이 보였다. 바람이었다.
<대화>와 연결된 <응답>작품. <대화>가 확장되었다.
<점으로 부터> <선으로 부터>는 자주 봐왔는데 <뚫기로 부터>는 처음이다. 여기에서 <점으로부터>가 시작되는 건가, '점'과 '선'을 지나 뚫고 나가기 시작한걸까...
오늘 미술관에서 가장 좋았던 그림중 하나. 조양규라는 우리 작가의 작품이었다. 초면이다. 거친 외향 속에 불안한 듯 슬픈듯, 그 눈빛에 시선이 가 닿았다. 장 뒤뷔페가 떠올랐다.
조선여인의 모습. 김홍도의 미인도에서 봤음직한 조선여인의 얼굴이다.
오른쪽 경복궁 경회루의 모습은 보자마자 낯익고 왼쪽 모란대의 모습은 갸우뚱 낯선대 모두 우리 것이라 정답고 좋다.
엘리자베스 키스가 구현해 놓은 당시 조선인들이 실상. 이리 그려놔 줘서 새삼 너무 감사한 마음이 드는 작품들.
바알간 저고리와 손목에 치마색보다 짙은 파란색 단을 해 놓은 것이 당시 조선인들이 패션감각을 엿볼수 있게 해준다.
이 시대 사진들에선 오히려 지저분한 복잡함이 보이는 조선인들의 삶의 공간이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에선 소박한 정갈함이 있다. 솥단지 위 벽에 그림이 걸려있느 것이 여느 집은 아니구나.. 했는데 절이다.
아궁이에 올라 공양밥을 짓고 있는 일꾼의 모습은 사실적이라기 보다 재구성이라고 봐야 될 듯.
아궁이 위가 을매나 뜨거운데 저기 올라가요, 베스작가님^^
여러 사람이 여러 순간에 아궁이에도 오르고 (솥단지 청소하러?), 불을 때서 밥도 짓고 (지금 모습처럼), 불 쑤기기를 하고 있는 모습 (밥 짓기 전일 것이고)을 기능 생각치 않고 한장에 담다 보니 그래졌다.
당시 절 안의 밥 짓는 모습을 보게 해준 것 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정월 초하루에 이런 옷차림을 하고 광화문 네거리에 등장할 수 있는 사람은 물론 지체높은 어느 집 자제들일 것이다. 아이들의 복식이 귀티가 나고 함께한 부인의 차림세도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1920년대 이렇게 품위있게 몸단장을 하며 살았구나... 생각하니 왠지 좋은 것
최근 AI로 당시를 복원한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영상의 시작점에 이 그림이 사용되었다. 당시의 훌륭한 생활상을 남겨놔 주신 엘리자베스 키스님께 다시한번 감사함
작년에 처음 이 미술관에 왔을 때도 한참이나 이리보고 저리보았던 안토니 곰리의 <Reflection>. 이번엔 바깥쪽에 있는 것이 실제야 그림자야, 생각지 않았다만 알고도 착시처럼 여전히 흥미로웠던 작품이다.
이 지점 즈음에 셋이 모두 모이게 되었는데 동료도 한참을 갸우뚱하며 안으로 밖으로 왔다갔다 하더라...
어쩜 이래 똑같은 작년의 나인거니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