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밤새 퍼붓던 비바람이 그쳤다. 긴 장마가 끝나가고 있다고 했다. 나는 무언가 아슬아슬한 느낌에 목 언저리가 가려웠다. 밤새 담벼락에 붙어 있던 나뭇잎 하나가 비바람에도 살아남은 모습을 본 여자의 심정으로 나는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옆집 마당에 나뭇잎들이 덕지덕지 쌓여 있지만 그루들은 무덤덤하게 서 있었다. 구름 낀 어두운 하늘 사이로 마음을 찌르는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더니 이내 컴컴한 방이 불을 켜듯 환해졌다.
내 방으로 방문한 햇빛에 빗금 쳐진 손을 비춰 보면서 하얀 조가비를 떠올렸다. 선풍기를 세게 틀어 놓고 머리카락을 날리면서 얕은 바다에서 너울거리는 미역을 생각했다. 아홉 평 공간으로 밀려오는 빛의 약동 속에서 나는 눈을 감고 박편 같은 바다의 반짝임을 그려 보았다.
창밖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빛을 튕겨 내고 있었다. 빛의 파편에 맨살이 따끔거리는 기분이었다. 나무를 만져 보고 싶었다. 창문을 열고 팔을 뻗자 쉬이 가지에 닿았다. 그 사이 나무가 자라 있었다, 내 손이 자라지 않았다면. 나무 잎사귀를 만지작거렸다. 거칠한 잎은 내 손처럼 빗금이 가 있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일만 하던 할머니의 손바닥이 그랬던 것 같았다. 얼마를 견디면 손바닥이 저렇게 될까.
내 생활은 여전했다. 레스토랑에서의 일도 여전해서 베이고 쓸리고 손이 퉁퉁 불었다. 부주방장과 매니저의 잔소리와 고함 소리도 여전했다. 불 앞에 서지도 않지만 날이 더워지면서 온몸이 땀으로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했다. 저녁 타임이 끝날 무렵이면 땀에 전 옷에서 쉰내가 났다. 주문이 많은 시간대의 주방 온도는 체온을 훌쩍 넘었다. 냉방장치도 별 소용이 없었다. 부주방장은 ‘혓바닥이 살아 있지 않은 사람은 칼을 잡아선 안 된다’며 전채 파트의 선배들에게 핀잔을 주기 일쑤고, 선배들은 나와 같은 보조들에게 식재료를 소중히 다룰 줄 모르는 인간들은 요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윽박지르곤 했다. 주방이 정신없이 바쁜 시간에는 제발 그 입 좀 다물어 줬으면 좋겠는데 어떤 때는 프라이팬 열두 개가 덜그럭거리는 소리보다 고함치는 부주방장의 목소리가 더 큰 것 같았다. 음식에 침이 튀지 않기 위해서라도 주방에서는 입을 다물어야 하지 않을까.
짜증이 나기는 해도 부주방장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이따금 새우껍질을 까면서 눈을 감고 새우의 냄새와 감촉을 느끼려고 한다. 해초를 씻을 때도 마찬가지다. 미각을 예민하게 하기 위해 피우던 담배도 끊었고 청량음료는 전혀 마시지 않았다. 요리 한 접시에도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보는 오감이 들어 있었다. 감각을 일깨우기 위해 나는 수시로 시간을 확인했다. 어렸을 때 친구가 한 말이라 신뢰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아마도 흔히 하는 말로 감을 잡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원칙적으로 손과 팔에는 아무런 장신구를 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바지 주머니에 조그만 시계를 넣어 다녔다. 주방에서 일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데 그럴 때면 나는 순간적인 감으로 시간을 알아맞히려고 한다. 일 년 전 처음 시간 맞추기를 했을 때는 물론 허방이었다. 몇 시인지조차 제대로 알아맞히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시뿐만 아니라 분까지 얼추 맞는다.
뛰어난 요리를 만들려면 우선 헤아릴 수 없이 풍부한 식재료의 바다에서 딱 맞는 재료를 한순간에 홱 낚아 올려야 한다. 지그재그가 오 초쯤 눈을 감고 있다가 수많은 자음과 모음의 조합에서 말을 건져 올려 랩을 읊어 대듯이. 그러나 나의 감각은 여전히 해안가에서 게나 조개 따위를 핥으며 밀려왔다 밀려갈 뿐이었다. 드넓은 재료의 대양에서 이질적인 것들을 건져 올리거나 주어진 재료를 활용하는 것은 감각이며 상상력이라 할 수 있었다. 감각의 가지치기 혹은 상상의 접붙이기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랍들을 죄다 뒤져 접착제를 찾아냈다. 십오 분쯤 찾느라 법석을 떤 것 같은데 온몸에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몸을 깨끗이 씻고 접착제로 온몸에 식재료를 붙였다. 가슴에는 홍합을 달았고 팔뚝에는 새우를 달았다. 음부에는 윗부분의 털을 면도날로 밀고 난 후 백합조개를 달았다. 귀에는 해초를 달고 다리는 미역으로 휘감았다. 내 몸에선 갯내가 났다.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있으니 소라고둥에서 들리던 파도 소리가 뱃속에서 들려왔다. 따스한 추상어 같은 햇빛 속에서 나는 바다가 되려 한다. 한 그루의 바다가.
나는 내 몸에 들러붙은 홍합과 새우와 백합조개와 해초를 어루만졌다. 딱딱하고 물렁하고 매끄럽고 물컹거렸다. 나에게 세계는 식재료다. 나는 세계를 만지고 있는 것이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몇 컷 찍었다. 멋진 셀프카메라였다. 만약 용기가 나서 카페 그루브에 이 사진을 올린다면 모두들 그루브하다고 야단일 것이다.
눈을 감고 시각을 맞혀 본다. 얼추 맞았다. 지금 출발해도 한 시간이나 지각할 것 같았다. 부주방장은 오전 내내 야단일 터였다. 여전히 막말을 할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 ‘여전함’을 나는 견뎌야 한다. 지그재그와의 관계도 여전할지도 몰랐다. 지그재그가 말끔한 내 생활이라는 껍데기에 군더더기나 이물질이라고 여겨지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그재그 또한 삶을 견디듯 나의 ‘여전함’을 견디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창밖, 한 그루의 나무들 사이로 계절이 제 길을 갈 것이다. 가을비가 온다, 눈이 내린다, 여전히. 그루가 말한다. 가을의 비는 빗금으로 내릴 것이고, 겨울의 눈은 지그재그로 내릴 거라고. 나는 그 빗금과 지그재그를 눈이 아닌 손으로, 빗살무늬 손으로 똑바로 지켜 볼 심산이다.
없고, 없으며, 없는 밤과 아침 사이에
바람 한 그루, 햇빛 한 공기를
빗살무늬토기에 담는다.
암수의 홍합을 마주 비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