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첫 페이지를 베껴 써 보았더니

위대한 진리를 몸과 마음에 새기는 '사경'에 관하여

by 미료


출처: 문화재청


필사, 고요와 자유를 탐구하는 예술


필사를 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유는 무엇일까.


불교에서는 1초에도 수만 가지의 잡념과 망상이 오가는 인간의 마음을 길들여지지 않은 원숭이나 코끼리에 빗대 설명한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마음의 속성을 이리저리 쉼없이 날뛰는 짐승의 행동에 비유한 것이다. 필사는 이런 산란한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마치 검은 도화지에 볼록렌즈를 대면 사방의 빛이 하나로 모여 종이를 뚫는 것처럼, 필사라는 방편으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마음의 동굴 안에 안착하는 것이다. 이때 필사는 단순한 재미와 즐거움을 넘어 도를 닦는 일이 된다.


경전을 베겨쓰는 불교의 '사경'(寫經)은 수도를 위한 필사의 대표적인 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 시대,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직접 손으로 경을 옮겨 적어 보급했다고 한다. 사경 전문 국영기관이 있었고 중국에 수백 명의 사경승을 보낼 정도로 그 열정이 대단했는데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그 명맥이 흐릿해졌다. 얼마 전, 사경의 맥을 이어오며 현대화 하는 작업에도 오랫동안 몸 담아온 사경 연구 회장님이 무형 문화재 장인으로 지정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기사를 읽는 내내 사경 할 때 사용하는 종이와 안료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고 경전의 내용을 표현하는 그림 (변상도)를 보면서 단순하게 생각했던 필사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가슴이 벅차올랐다.


출처:: http://www.kbulgy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252





불교 경전,

금강경을 필사하다


사경 노트로 쓰고 있는 컴포지션북. 종이질도 좋고 저렴하다.



내가 즐겨 필사하는 경전은 <금강경>이다. 올해 10번을 사경하는 게 목표였는데 10월이 다 지난 지금 아직 5번째 베껴 쓰고 있다. 한창 트위터 유행이 불었을 때 방송인 김제동씨의 아이디가 '금강경'이어서 경전의 존재가 국내에도 그 이름이 조금 알려진 것으로 기억한다. '금강(金剛)'은 다이아몬드의 성질로, 그만큼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가 담긴 경전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분량이 길지 않아 이십 분정도만 할애하면 완독할 수 있지만 여태껏 한 번도 이해하고 읽은 적은 없었다. 알쏭달쏭 수수께끼 같은 말을 읽고 있으니 오히려 잡념이 사라져서 해석해보고 싶은 의지도 없었다. 한문이었던 <금강경>이 우리말로 번역이 되면서 덜 난해하게 다가왔지만, 부처님과 수보리가 나누는 고도의 선문답을 미미한 중생인 내가 알아 들을 리 없었다. 오랜 시간을 뜻도 모르고 독송하기만 했는데 얼마 전 필사를 하던 중 첫 페이지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고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거룩한 비구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사위국기수급고독원에 계셨습니다. 그때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하고자 사위대성에 들어가셨습니다. 성 안에서 차례로 걸식하신 후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드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 --------- <금강경, 법회인유분 중>


불교 경전 중에서도 최고라 손꼽히는 금강경의 시작이 이토록 평범한 것에 호기심이 동했다. '부처님이 옷(=가사)을 입고 밥그릇(=발우)을 들고 마을에 나가 먹을 것을 얻은 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먹고 발을 씻고 앉으셨다' 는 사실이 뭐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앞부분에 넣었을까. 나같은 초보 작가야 어떻게 첫 문장을 시작할지 몰라 의식의 흐름대로 평범한 이야기로 서두의 물꼬를 틀지만 이 경전을 집필한 사람은 결코 아마추어가 아니었을 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뭔가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금강경 첫 페이지를 베껴쓰다

단순하고 검소한 부처님의 하루 루틴



석가모니 부처님은 원래 한 나라의 ‘왕자’였다. 태어날 때부터 다 가진 남자였다. 평생 왕족이라는 지위를 누리며 화려하고 평화로운 궁전 안에서 원하는 것을 모두 다 갖고 살 수 있었다. 그런데 겨우 스물아홉의 나이에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성 밖을 나온 뒤 자신이 입고 있던 화려한 옷마저 사냥꾼의 허름한 누더기 옷과 바꿔 입었다.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감이 잘 오지 않으면 이렇게 상상해 보면 된다. 내가 태어났는데 부모님이 억만장자에 성품도 훌륭하시다. 평생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원하는 꿈은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고, 먹고 싶은 산해진미를 언제 어디서든 다 먹을 수 있으며,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다 갈 수 있다. 전용 헬기를 타고 초호화 리조트에 가서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배우를 직접 초대해 라이브 공연을 펼칠 수도 있다. 외모는 젊은 시절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정도의 아름다움이고, 세계 각국의 미와 지성을 갖춘 여자들이 나와 결혼하고 싶어 안달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집을 나간다면 누구라도 사서 고생한다며 비웃을 것이다. 석가모니 왕자가 출가를 한 것은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했어도 늙고 병들어 죽는 고통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소유의 행복만큼 세월과 함께 그것을 잃어가는 고통은 비례했다. 생사의 고통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그에겐 삶의 목적이자 진리였다.

자유와 해탈을 향한 석가모니 부처의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전율을 느꼈다. 내가 한국을 떠난 나이도 스물아홉쯤이어서 감히 그 당시 출가했던 부처님에 감정이입하기도 했다. 힘이 들 때마다 모든 것이 진리를 배우기 위한 고행길이라 여겼다. 물론 이제와 생각하면 편안한 잠자리에 세 끼 식사 거른 적 없는 풍족한 고행길 이었지만.

아무튼 긴 고행 끝에 석가모니 부처님은 마음의 자유를 얻었고 고향으로 돌아와 깨달음을 설파하셨다.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삽시간에 ‘천이백오십 명’이나 생겼지만 결코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지 않았다. 여전히 낡은 옷을 스스로 입고, 걸식을 하고, 처소로 돌아와 밥을 먹고 다시 옷을 갈아입은 후 자리에 앉아 진리를 설하셨다. 그것이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검소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하루 일과였다.



진리를 노트에 쓰고 몸에 새기며

마음의 환한 빛을 찾아가는 사경 시간




문득, 이 경전을 집필한 화자 또한 그 평범한 일상에 감화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페이지 이후 수보리가 눈물을 흘릴 만큼 감동적인 부처님의 사상이 펼쳐지지만 어쩌면 그 어려운 사상을 이해하기 전에 잘 입고, 잘 먹고, 잘 씻는 것부터가 해탈의 첫 걸음인지도 몰랐다. 이것은. 쉬워 보이지만 막상 해보면 어려웠다. 나는 매일 샤워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마칠 때까지 아무런 잡념을 떠올리지 않는 미션에 도전하곤 하는데 3분을 채 넘지 못했다. 하루 일과 중 머릿속이 깨끗하고 조용한 순간은 정말 몇 초도 되지 않았다. 마음은 항상 다른 곳으로 끌려가길 좋아했다. 샤워 하고 뭐 먹을까, 어제 친구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오늘 비가 올까, 보험 해약해야 하는데....... 생각은 끝도 없이 몸집을 키워 나를 지배하곤 했다. 혼자 밥을 먹을 때는 항상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았고 집에 있을 때는 하루 종일 잠옷이나 츄리닝을 걸친 채 생활 했다. 한 가지 일에 제대로 집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자는 순간에도 잠에 집중하지 못하고 꿈을 꾸니 말이다.


순간 순간, 온전히 집중하며 하루를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헤아려보니 금강경의 첫 페이지가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빛나는 지혜는 먼 데서 찾기보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매일의 평범한 일상 속에 있다는 깨달음, 그 진리를 오늘도 펜으로 한 자 한 자 몸에 새겨 넣었다. 오늘도 멀티플레이를 하는 현대인으로 살았지만 경전을 필사하는 순간만큼은 온전히 펜과 노트와 손에 집중하며 내 마음의 환한 빛을 끌어다 모은 기분이었다.


keyword
이전 06화나는 나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