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여기인' 글씨는 그 사람됨과 같다.
‘손이 없는 사람도 글씨를 저렇게 잘 쓰는데’라는
누군가의 말은 잘못된 말이다.
'없는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8년 4월, 말레이시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수도인 쿠알라룸푸르에서 버스로 3시간 반 정도 떨어진 믈라카(Melaka)에서 2박 3일간 머문 적이 있었다. 무려 500년이라는 세월 동안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일본의 식민 지배 아래 있었던 도시인 데다 중국식 불교사원과 이슬람 사원, 성당이 한데 모여 있다는 사실이 나의 발길을 이끌었다.
세계 무역의 중심지로서 화려한 영광과 호사를 누리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곳곳마다 폐허의 잔해만 남아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현지인들은 웨딩 사진을 찍기도 했다. 골격만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성의 요새나 외벽이 다 벗겨진 성당의 모습은 실제로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었는데, 보정을 하면 꽤 그럴듯하게 나오는지 현지인들은 행복한 얼굴로 웨딩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낡고 부서진 것 위에 희망을 쌓아 올리는 듯한 풍경이 어쩐지 사랑에 대한 하나의 은유처럼 보였다. 여행할 때면 세상이 내게 불쑥 말을 걸어온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사실 믈라카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유적지도 사원도 맛집도 아니었다. 주말 야시장에서 본 어떤 남자였다. 그는 붓으로 직접 쓴 글씨를 팔고 있었다. 서예를 잘 모르는 내가 봐도 명필가라는 생각이 단박에 들었는데 놀라운 것은 남자의 팔이 하나라는 사실, 그리고 손이 없는 그 팔 하나로 글씨를 흐트러짐 없이 쓰고 있다는 거였다.
어쩌면 팔목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부위에 노란색 스포츠 밴드를 차고, 밴드 사이에 붓을 끼워 넣은 채 한 자, 한 자 천천히 한자를 쓰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펜으로 글을 쓰는 방식을 여태까지 ‘손글씨’라고 불러왔는데 내 눈앞에 손 없이, 손글씨보다 더 멋지게 쓰고 있는 사람이 나타난 거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글씨는 손으로만 쓰는 것이 아니구나. 팔을 움직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허리와 목, 엉덩이, 전신을 미세하게 사용하게 되는 거구나. 그렇다면 몸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야시장은 멈춰 서 있을 틈 없이 북적였다. 쏟아지는 인파에 밀려 점점 남자에게서 멀어졌고, 남자가 점처럼 작아져 버렸을 때도 나는 몸을 움직이게 하는 정체에 대해 한참 생각했다.
한자를 잘 모르더라도 남자에게서 글씨를 받아왔어야 하는 건데, 여태껏 후회가 된다. 방문에 붙여두고 매일 아침 글씨를 쓰게 하는 힘에 대해 연구하다 보면, 나도 그 남자만큼 멋있는 사람이 될지 몰랐다.
그로부터 다섯 달 후, 손으로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독서 노트를 쓰게 된 명확한 동기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어쩌면 믈라카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자의 모습이 무의식 중에 내 안에 남아 있다가 어떤 계기로 자극되었을 수도 있다. 펜으로 글씨를 써 본 지 굉장히 오래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두 페이지를 겨우 채우고 나니 전신이 쑤셨다.
하루 이틀, 아니 한두 달 정도 하고 말 줄 알았던 내 예상과 달리 다음 달이면 독서 노트를 쓴 지 꼭 2년이 된다. 의식하고 연습한 것도 아닌데 두 해 사이 필체가 많이 변했다. 살면서 나는 글씨를 예쁘게 쓴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중고등학생 시절, 필기 잘하는 친구들의 노트를 보면서 예쁜 글씨를 따라 하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았는데, 요즘에서야 전에 부러워했던 사람들의 필체를 조금씩 따라가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정성 들여 필기했던 것은 마찬가지인데,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하면 무지 노트에 글자를 일(一) 자로 쓸 수 있냐’는 질문을 받기 전까지, 내 글자들이 반듯한 간격과 높이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 매일 꾸준히 쓰다 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고 대답했는데, 그 이후 필사를 하다가 일 자로 글씨를 쓰는 나만의 방법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자 하나의 모음과 자음이 적당한 위치에 있어야 하고, 그다음에 오는 글자는 앞의 글자의 높이와 넓이에 맞게 써야 하며, 한 자 한 자의 모양에 신경 쓰는 동시에 문장 전체의 균형도 고려해야 했다. 글을 읽을 때처럼, 쓸 때도 어디서 호흡하느냐가 필체를 좌지우지했다. 글씨가 날아가지 않으려면 최대한 천천히 써야 했는데, 글자 쓰는 속도를 의식하다 보면 자연스레 마음에 신경을 쏟게 되었다. 첫 번째 글자를 쓸 때 두 번째 글자에 마음이 가 있으면 글자는 항상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을 의식하면서 글씨를 쓰는 건 결코 아니었다. 정말로 오래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거였다.
믈라카의 남자와 같은 흐트러짐 없는 필체를 가지려면 갈 길이 멀지만, 지금으로도 만족한다. ‘손이 없는 사람도 글씨를 저렇게 잘 쓰는데’ 라는 누군가의 말은 잘못된 말이다. '없는 자리'에 무엇이 있는지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감히 가늠해보자면 그 자리에는 오랜 세월 자신의 서체를 갈고닦는 훈련, 흐트러짐 없는 고요하고 진실한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글씨는 그 사람됨과 같다는 '서여기인'이라는 말처럼 훌륭한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테크닉 이전에 마음가짐을 먼저 단련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