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라면, 모두 편안함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35주차를 바라보고 있다. 완성형의 사람이 뱃 속에서 꼬물대고 있다. 예정일은 한 달 남았지만 언제라도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상태.
아직은 때가 아니야, 나올 때 되면 나오자.
그렇게 말한다.
피차 서로 빨리 만나고 싶지만,
어차피 밖에서 살아갈 날이 더 많잖아.
아기가 어떤 자세로 있을지 신체의 지도를 그려 본다. 오른쪽 옆구리에서 발차기가 느껴지고 배꼽 주변에서는 손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머리를 아래로 찧기도 하는지 아주 가끔 방광이 찌릿할 때도 있다. 활발하지만 차분한 태동이다.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 하고 있네]
남편이 말했다.
[우리도 이런 시절이 있었겠지]
내가 답한다.
영주권을 딴 뒤로 와이는 주 3일만 일하고 남은 날에는 출산 준비를 분담한다. 병원도 항상 같이 가고, 남는 시간엔 걸으며 바다도 보고 나무도 본다.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서둘러 집을 사고 차를 업그레이드 하고 적금을 부어야 겠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는다. 남의 집에 살아도 작은 차를 타도 통장이 가벼워져도, 함께 있는 시간을 우선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 을 하는 걸 보니 세상 물정을 아직 잘 모르고 있는 거 같기도.
건강하기만 했으면 하다가도 그 마음마저도 내려놓는다. 인간의 몸은 통제 밖에 있다. 방심과 부주의로 건강을 잃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질병과 사고의 원인은 명확히 밝히기 힘들다.
하지만 마음은 통제할 수 있다.
남들보다 조금 연약하게 태어나더라도 지켜주겠다는 마음. 그런 내 마음이야말로 아이를 모든 면에서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걱정과 불안은 몸을 망친다. '엄마가 마음이 편안해야' 는 기본 상식을 넘어 정교한 과학인 것. 실험실의 연구원이 된 것처럼 내면의 현미경으로 매일 내 마음을 관찰한다.
관찰을 하면 해결 방법이 생긴다.
몇 달 전쯤, 발 바깥쪽이 염증이 생길 것처럼 따끔거렸다. 내 걸음걸이를 살폈다. 오리처럼 뒤뚱뒤뚱 걷다보니 발날에 힘을 많이 줬다. 의식적으로 천천히 걷고 배를 조금 집어넣고 허벅지에 힘을 더 주고 발바닥 전체가 고루 땅바닥에 닿도록 신경을 썼다. 통증은 사라졌다. 임신으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때는 모든 게 고달펐다. 자다가 깨고, 소화 안 돼서 끙끙 거리고, 근육통에 시달리고. 그러다 힘든 가운데서도 덜 힘들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방법은 언제나 있었다. 밖에 말도, 내 안에.
덕분에 임신 말기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서 수월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요즘엔 코를 그렇게 곤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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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기저귀나 젖병같은 필수 출산 용품을 준비했다. 넓지 않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서 육아용품은 최소한으로 샀다. 이런 비교를 해도 될 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북유럽이나 인도 여행 갈 때도 하루 직전에 짐을 쌌다. 뭘 빠뜨리고 가도, 가면 다 있겠지... 싶은 마음에. 꼼꼼하게 안 챙겨도 다치거나 죽지 않았다. 대충 챙겨가도 오히려 버리고 오는 게 더 많았다. 갑자기 필요한 게 생기면 그때 그때 공수하면 됐다. 도라에몽처럼 이고지고, 쌓아놓고 사는 걸 별로 선호하지 않는 성격도 있지만 가끔은 '육아템' 시장이, 보이스 피싱마냥 엄마들의 불안과 초조함을 자극하는 거 같아서 살짝 반항심이 들기도. (이런 건 닮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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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해하지 않고 편안하게, 를 연습하는 것은 나에게도 중요하지만 아이에게도 중요하다. 나 자신이 편안해지는 방법을 모르는데 아이의 불편함을 어떻게 해소해줄 수 있을까 싶다. 우리는 모두 편안함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