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게 -
너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 서 있지.
키가 10m도 넘을 것 같아.
비가 올 때면 네가 뿜어내는 향기가 코끝을 알싸하게 해. 입덧을 하면서 한동안 냄새에 예민했는데, 그때 알았어. 기분 나쁜 냄새뿐 아니라 좋은 냄새도 더 잘 맡을 수 있게 됐다는 걸.
울렁거리는 속을 이끌고 공원까지 걸어가는 사이, 갑자기 온갖 풀냄새와 꽃냄새가 한 번에 풍겨왔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더라고. 살면서 자연이 나를 위로한다고 느낀 적은 그전에도 많았는데, 그거 다 별 거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홀한 감정이었어. 아직 내가 맡을 수 있는 좋은 냄새들이 많다는 걸, 나무와 잔디와 꽃이 내게 직접 알려주는 것 같았으니까.
모든 사람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은 공평하게 찾아온다는 걸,
오래 산 너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
하지만 너는 그 힘든 일을 받아들이는 마음은 제 각기 다를 수 있고,
어려움 속에서도 잔잔한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는 방법도 같이 알고 있는 게 분명해.
주인이 힘들어 보이면 반려견은 그걸 느끼고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애교를 부리는데,
나는 나무들도 그런 걸 할 줄 안다고 믿고 있어.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면서 내는 소리가 꼭 그래.
너무 과대망상이니.
나는 이제 많이 좋아졌어.
입덧 말고도, 사는 게 전반적으로 좀 덜 어려워졌는데,
이 말을 내뱉는 순간 어려운 일들이 주어지니까
다시 주워 담아야겠다.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나를 지켜주고 함께 인내해 준다고 생각하면 편하더라고.
그렇다고 그 존재가 신이라는 생각은 잘 들지 않고
대신 나무, 너라고 생각해왔던 것 같아. 그
그러니까,
험난할지 모를 앞으로의 육아 인생도
잘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