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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yu Oct 01. 2024

상처는 별이 된다

(미국 속담)


당장 반짝이는 성취만 아름다운 건 아니에요.

오로라는 우주의 에러인데 아름답잖아요.

에러도 빛이 날 수 있어요.

-배우 김혜자 -      



나는 아트분야에서 수십 년간 종사해 왔지만, 예술 활동보다 경제 활동에 비중을 두었다.

나의 그런 상업적 성향은 글쓰기에도 적용되었다.

타고나길 쉬이 지치는 저질 체력이고 지능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내가 잘할 수 있고 성과나 보상이 바로 주어지는 일을 선호하게 되었다.

거기에 가늘고 길게 오래 할 수 있는 일이면 더 좋다.

내가 선택한 글쓰기는 웹소설인데, 오만하게도 쉽게 봤다. 세상엔 쉬운 일이란 없다. 사활을 걸고 열심히 해야만 얻을 수 있다.

나는 3년 전 첫 출간을 했다.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은 몇 배나 힘이 들었다.

끈기와 열정, 절박함으로 어떻게든 애쓰면 길이 열렸다. 작가가 되었지만, 소설가라 부르기에는 아직 부끄럽다.     


40대 후반부터 취미 삼아, 틈틈이 꾸준히 글을 쓰다 보니, 장편 소설 세 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

용기 내서 출판사에 투고를 돌렸다. 출판사마다 투고 양식이 달라서 기획서, 시놉시스 쓰는 것도 오래 걸렸다.

투고를 돌리고 나서 기다리고, 결과를 받는 시간은 상승과 추락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내 첫 소설은 줄줄이 반려 메일만 받았다. 글 쓸 의욕마저 꺾어버렸다.

일부 출판사에서 반려한 이유 같은 피드백다.

내가 주로 받았던 평은, 장르의 특색이 부족하고, 셀링 포인트가 약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팔릴만한 책이 아니라는 거다. 


순문학이 작가의 문학성과 개성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이 중요하다면, 웹소설은 흥미 위주와 상업성, 잘 팔리면 좋은 작품이다.     


나는 출판사들이 준 감평대로 수 없이 고치고 고쳐서  투고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떤 출판사 담당자는 순문학처럼 쓰면 안 된다고 충고해 주었다.


순문학은 생각을 문장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서사를 활용하지만, 웹소설은 서사를 문장으로 풀어쓴다.

웹소설은 독자가 읽기 편해야 한다. 서술보다 대사가 많다. 벽돌 글(문단이 긴 글)을 지양해야 한다. 핸드폰으로 보기에 가독성이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실패를 통해 팔릴? 글쓰기를 배웠다. 수시로 바뀌는 트렌드, 독자의 취향, 입맛을 읽어내고, 내가 쓸 수 있는 타협점을 찾아내야 했다. 그 생태계에 발맞추어 나가려는 노력과 하루 최소 3천 자를 써야 하는 글은 노동이었다.


반려를 받은 원고는 여러 공모전에 돌리다가 결국 폴더에 묻어 두었다.


다시 두 번째 소설을 투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내 소설을 좋게 봐준 출판사와 운 좋게 계약을 맺었다. 첫 소설도 그다음 소설도 출간 기회를 얻었다.    

책 출간은 했지만, 주변에 자랑할 수 없었다.

내가 웹소설을 쓴다는 건. 극소수의 사람만 알고 있다. 필명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다.

장르의 특성상 수위가 있거나, 배덕한 소재 등 자극적인 요소를 넣지 않을 수 없다. 재미가 있어야 책이 팔리니까.      

나는 글을 수정하면서, 편집자의 의견을 대부분 수용했다.

내 소설은 나를 잘 아는 사람이 읽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와 소설을 별개로 봐준다는 보장도 없고, 나도 자기 검열하느라, 창작활동이 자유롭지 못할 게 뻔했다. 부끄럽지 않을 용기가 필요한 문제였다.            


웹소설 작가의 길은 험난했다.     

출간 후가 더 힘들었다. 산을 넘으니 끝이 보이지 않는 암벽이 놓여 있다고 할까.


출판사는 영업력이 좋은 곳이라서 이북 대형 플랫폼에서 골고루 노출되는 프로모션을 받아냈다.

내 소설은 주요 베너에 노출이 되는 행운을 잡았다     

첫날부터 별점과 리뷰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북 대형 플랫폼의 명성답게 악플로도 유명한 곳이다. 유명작가들도 피해 갈 수 없는, 말로만 듣던 매운 댓글이 내게도 다.

진짜 열심히 썼는데, 의식의 흐름대로 썼다느니, 습작 같다는... (이건 순한 리뷰) 더 악의적인 리뷰는 여기에 담을 수 없다. 특정될 수 있고, 그 악플러가 글 공간 어디에든 상주할 수 있다. 다시 만나고 싶지 않다.

악플을 투척할 가능성은 늘 가까운 곳에 있기도 하니까... 나도 지나친 피해의식인 걸 안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갈겨대는 댓글은 진짜 맵다. 캡사이신, 마라탕 그 이상이었다.

둔기로 강하게 머리를 가격하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정신이 멍해져 버렸다.

출판사가 컨택해 주고 플랫폼 심사를 통과한 소설인데, 마치 신인작가의 멘탈을 터트리려고 작정한 것이다.

무엇보다 첫 리뷰가 중요하다. 책 리뷰를 보고 거르는 독자들도 있는데, 이건 영업 방해였다. 신고해도 플랫폼의 대처가 미흡했다. 법적으로 대응하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출간을 밝히지 않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게 욕받이가 된 나를 오픈하고 분노조차 공분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웹소 작가들 사이에서도 가족, 친구 등 가까운 이에게 필명을 밝히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첫 출간에 흥분해서 동네방네 소문냈다가 작품이 흥하면 좋지만, 망하면 망신 보다 데뷔작이 마지막 작이 된, 좌절도 공유해야 한다.     

     

악플이 너무 아팠다. 나는 누구에게 크게 욕을 들어 본 적 없이 살았다.

시간이 약이 아니라,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절필하고 싶을 만큼, 분통 터지고 서러웠다. 억울했다.      

제도권 글쓰기의 틀에서 벗어나서 인지, 내 취약점, 구멍, 허점, 맹점을 찌르고 밟아대는 것 같기도 했다.     

글쓰기를 전문적으로 배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겁 없이 소설을 쓰지 못했을 것다.

무모했으니 도전할 수 있었다. 벽 보고 소설 세 편을 쓸 수 있었다. 쓰고 고치고, 인풋 아웃풋을 반복했다. 직접 부딪히고 깨지며 배웠다.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 기다림, 인내심의 연속이다. 그 과정을 통해 좋든 나쁘든 보상은 다 받은 셈이다.


출간이 문제였을까? 아니었다.

사람의 감정을 다루고 관계나 사건을 이끌어 내는 소설을 쓰면서 나에 대한 감정은 못 짚어냈다.

멘탈을 터트리려는 악의적 리뷰보다, 나를 깎아내리고 제 살점을 도려내며 비루하게 살아남고 싶어서 썼던 내 글에 대한 부끄러움이 더 컸다.

설혹, 모욕을 견디는 것보다 귀하고 소중히 여겨야 내 글나도 놓아 버린 것이다.

        

내 책이 두들겨 맞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내 글을 긍정적으로 봐주고 출간해 준 출판사까지 욕먹게 한 것 같았다. 온갖 눈치가 다 보이긴 했다. 첫 책도 두 번째 책도 기대치만큼 많이 팔리지 않았다.

출판사에 미안할 필요가 없는데, 누구보다 슬픈 사람은 작가 자신이다.

자책할 시간에 그다음 책을 내놓아야 하는데, 못하고 있는 게 더 문제였다.  

출판사에서는 마이너 한 작가에게 명절마다 선물을 보내 준다. 그 선물을 당당히 받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나는 여전히 잘 팔리는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어느 날부턴가 회의감이 들었다. 나는 왜 내가 잘하는 일만 하고 살지, 웹소설을 쓰고 있는 걸까.

욕은 배 터지게 얻어먹으면서. 왜?

돌아보니, 그 경험은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불행은 아니었다.

내 안에 수치. 모욕으로 생채기가 났지만, 그로 인해 변화를 입었다.     


내가 첫 출간을 준비하는 동안, 투병 중에 계셨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슬픔에 잠겼다.

나는 그 덕분에 에세이를 썼다.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느덧 아버지와 가족에서 나에 대해 쓰고 있었다. 나를 더 깊이 만났다. 비로소 글은 메마른 땅에 단비처럼 희망이 되었다.

내 상처를 마주하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안고 가야 할 내 삶의 일부로 보였다.

운명처럼 브런치로 이끌었고, 나를 일으켜 세운 시간이 되었다

특별히 브런치에 글을 올리며 아버지를 추억하고 기록하고 공유하며 크나큰 위로를 받았다.

글로써 서로 비슷한 아픔을 위로하고 다독여 준 치유적 힘을 경험했다.


브런치 이웃 글벗들에게 감사한다.

그분들의 위로가 부서지고 보잘것없는 나의 별에게 빛을 입혀 주었다.     

우주의 부서진 별 오로라 같이.

나에게 글쓰기는 결핍, 수치, 상처, 침체기 같은 에러지만,

빛이고 축복이었다.



글 쓰며 멘탈관리에 도움이 될만한 글을 모아 봤다.

-작가에게 진짜 중요한 건 필력이나 어휘력 이런 게 아니라 무조건 자존감 UP + 건강이다.     

-글 좀 못 쓰고 혹평받아도 오래, 많이 쓰다 보면 필력은 는다. (존버)     

-작가의 가장 큰 재능은 실패해도 계속 꾸준히 쓰는 것.     

-작품이 망한다고 작가가 망하는 게 아니다.

-내 작품 내가 아끼지 않으면 누가 아껴주겠나, 귀하게 여겨 주기.

-자존감 무너져서 글 못쓰게 되는 것보다 남이 보기엔 허접하다고 하더라도 그냥 정신승리 하는 게 무조건 낫다.

 -성적이 좋지 않아도 나는 계속 글을 쓸 것인가 스스로 묻고, 답이 그렇다면 빨리 털어버리고 쓰기.

-글 쓰는 일이 즐겁고 신나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     


<어쩌다 솔로 오! 오! 이얼즈> 연재를 마칩니다. 

구독, 라이킷, 댓글 주시고, 방문해 준 작가님, 독자님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새로운 연재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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