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켈러는 결혼은 마치 풀리지 않는 퍼즐이나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고 마는 미로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결혼보다 더 위대하고 중요한 인간관계는 없다고도 했다.
나에게 결혼은,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봐도, 여전히 눈물만 보이는 걸까?
엄마는 당신 손에 해결할 수 없는 집안 문제가 닥치면, 지척에 사는 외가부터 찾았다. 외할아버지가 어지간한 문제는 해결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외할아버지가 우리 집안 대소사뿐 아니라, 외손녀들의 결혼에까지 관여하기 시작했다.
큰언니가 그런 빌미를 만들어 주었다.
결혼 적령기에 있던, 큰언니에게 구혼자가 몇 있었다. 그중 P라는 남자가 큰 언니가 원하는 조건에 가장 부합하는 상대였다.
그러나, P는 큰언니에게 작정하고 접근한 사기꾼이었다.
문제는 큰언니가 사기꾼 P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피해 다니다가 결국 일이 터져버렸다.
어느 날 밤늦게, 끈질기고 집요하게 큰언니를 쫓아다녔던 P가 우리 집 담을 넘고 쳐들어왔다,
80년대에는 대문만 잘 잠그면 현관문까지 닫아 걸진 않았던 것 같다. 이웃까지 의심할 만큼 인심이 흉흉한 시절은 아니었다.
또한 사랑을 포장한 범죄나 다름없는 스토킹에 대한 사회적 인식 자체가 없었다.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는데도, 신고하지 못하는 건, 여자 쪽이 잃을 게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요란하게 경찰차가 출동하면 동네에 소문이 나서 혼삿길이 막힌다고,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큰언니는 그 남자를 피해 옷장 안으로 얼른 몸을 숨겼다.
뒷감당은 온전히 가족에게 맡겨 버렸다.
하필 그날 아버지는 지방에 출타 중이셨고, 오빠는 군대에 있었다. 집에는 엄마와 우리 네 자매뿐이었다.
큰언니의 행방을 묻는 P는 술에 잔뜩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에 성인 남자가 없다는 걸 알고 나자 어른인 엄마를 만만하게 보고, 무뢰배처럼 굴었다.
심약한 엄마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다가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 당시 나는 중학생이었다. 잠들었다가 깨서 비몽사몽간에 방문사이로 들리는 남자의 악의에 찬 고성과 엄마가 도망치는 발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엄마가 우리를 버리고 도망갔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티브이 뉴스나 범죄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서로 힘을 합쳐 위기를 넘겨 볼 생각조차 못 하고 우리는 각자도생의 길로 가고 있었다.
나와 동생은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두려움에 떨었다.
작은 언니만 도망갈 타이밍을 놓치고, 스토커 근처에 찌그러져 있었다. 가끔 작은 언니는 뭐라 소리를 질러댔다. 거듭 헤서 '그건… 만지지 마요!' 했다.
작은 언니는 자신의 애착 물건에 손대는 걸 질색했다. 제 물건에 영역 표시까지 해 두었다. 하물며 베개조차 나누어 쓰지 않았다.
작은 언니는 자신의 소중한 물건을 지키려고 그나마 용기를 내서 스토커와 맞섰다. 제 물건이 더럽혀지거나 망가지는 게 더 무서웠던 거였다.
P는 집안을 헤집고 다녔다.
우리 방에도 다녀갔다. 나와 동생은 얇은 여름 이불 한 장을 방패막이 삼고서 숨소리도 죽이고 웅크리고 있었다.
그 방의 옷장 안에는 큰언니가 숨어 있었다.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부잣집 딸인 줄 알았더니 그것도 아니었네.”
P는 큰언니를 찾는 것에 혈안이 된 것만 아니었다. 큰언니에게 뜯어먹을 게 없나 집 형편도 살피는 중이었다.
큰언니는 굳이 부잣집 딸로 보이려고 애써지 않아도 부티 나게 생겼다. 무얼 입어도 명품처럼 보였다. 조건 좋은 남자를 만나는데 그 잘난 외모가 한 몫했고, 잘 써먹었다. 큰언니 자신도 외적인 조건만 너무 밝히니, 제대로 된 인간이 붙을 리가 없었다. 스토킹의 표적이 된 건 처음이었지만.
큰언니는 이 사건으로 인생의 쓴맛과 굴욕을 맛보았다.
P는 우리 집이 부자가 아니라서 되레 자신이 속았다며 신경질을 냈다. 나와 가족이 저런 식으로 업신 여김을 당하고 난도질되는 건 처음 받아 보는 모멸감이었다.
“뭐 이런 양아치 개 xx 엄마야!”
다혈질인 작은 언니가 P에게 욕했다가 그가 무슨 행동을 취했는지, 기겁하듯 비명을 질렀다. 주방에도 아끼는 물건이 있었는지 그릇이 부서져 나가는 소음과 작은 언니의 절규가 뒤따랐다.
이제 다 죽었구나, 싶었다.
스토커를 제대로 자극해 버린 작은 언니. 저만 살겠다고 동생들을 위기에 빠뜨린 큰언니. 한술 더 떠서 딸들을 버리고 도망간 엄마.
이건 꿈이어야 했다.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예민한 사춘기에 겪었던 큰언니의 스토킹 사건이 내게도 트라우마로 남았다.
십 대에도 이십 대에도 가볍게라도 이성을 만날 수 없었다. 나쁜 목적이 있는 접근이 아닐까, 범죄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그 의도부터 의심하고 만다. 내가 상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스토킹의 그림자라도 만나면 공포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얼마 후, 우리를 버렸던 엄마가 돌아오는 기척이 들렸다. 외할아버지의 '에헴' 하는 기침 소리가 뒤따랐다.
엄마는 외할아버지를 등에 업고 돌아왔다. 우리 집에 무슨 일이 터지면 경찰보다 외할아버지가 먼저 출동하셨다. 엄마의 슈퍼맨인 셈이다.
외할아버지가 보통 노인이 아니긴 했다. 어떤 사건이든 문제든 능숙하게 잘 다루고 해결해 내셨다.
매서운 눈빛 한 번에 스토커의 기선을 제압했다. 목소리 한 번 높이지 않는 말솜씨로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했다.
P는 큰언니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겠다고 각서까지 쓰고 풀려났다.
그 뒤 후폭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큰언니의 스토킹 사건을 기점으로 엄마는 더 힘센 어른의 힘을 빌리는 보다 쉬운 방법을 택했다. 외할아버지가 외손녀들의 혼사에 관여하게 되면, 거의 강제 집행이었다. 엄마는 구시대 사람이라 잘 적응했지만, 큰 언니 세대였던, 이모의 결혼은 눈물로 시작해서 눈물로 끝났다.
엄마는 강제 결혼으로 당신의 질곡 많았던 업보를 대물림하지 않겠다고 해놓고, 딸들이 하나같이 기가 세고 별나서 감당이 되지 않는다며, 비겁하게 외할아버지에게 떠넘겼다.
이제, 우리 자매들에게도 연애결혼은 동화 속 이야기가 되었다.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인, 큰언니는 할아버지의 마수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작은 언니는 그러지 못했다. 작은 언니는 평생 흘릴 눈물을 결혼식장에서 다 쏟아냈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다행히도, 아니 불행히도 외할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드러눕고 말았다.
외조부모는 19세 동갑에 만나, 60년 가까이 해로하셨다. 사별 앞에선 못해 준 것에 대한 회한과 후회, 눈물로 얼룩진 여생이었다.
길고 긴 결혼의 끝에도 눈물밖에 없는 걸까?
이 나이가 되도록 집에서 독립하지 않고 솔로로 살았던 건, 나 혼자 살아보는 것이 두려웠고, 다른 역할로 전환해 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한번 들어가면 길을 잃고 마는 미로 같은 결혼, 그럼에도 결혼보다 위대하고 중요한 인간관계는 없다는 팀 켈리의 글이 눈에 박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