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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yu Sep 10. 2024

아이는 아이 go다

      

어느 날, 내 주변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어린이 사용 설명서나 매뉴얼조차 숙지하지 못한, 내게  들이닥친, 파장이었다.      

나에게 아이들은 아이고였다. 절규, 한숨, 놀람, 감탄을 연발하게 하는.... 






나는 J와 동업하던 공예학원을 정리하고, 개인 작업실 겸 공방을 집 근처에 얻었다.

출강과 작품 제작 판매에 주력하고 싶었고, 쉬엄쉬엄 일하며 딴짓(글쓰기)도 병행할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내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공방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유리문 밖에서 안쪽을 기웃대는 여학생 한 명이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구경해도 되냐고 수줍게 물어왔다. 내가 들어오라는 손짓 하자 냉큼 안으로 들어왔다. 그 애는 신기한 듯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것저것 질문했다. 

“이런 거 배울 수 있어요? 수강료는 얼마 해요? 비싸겠죠...”

“배울 시간이나 있겠어?”

겉으로 봐서는 초등학생 같진 않았다. 중학생만 되어도 입시생 수준 아닌가. 공예를 배우겠다고 하면, 부모님이 흔쾌히 허락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나 또한 손이 많이 가는 어린 학생은 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 학생이 다시 나타난 건, 일주일 뒤였다. 

꼬깃꼬깃 말아쥔 지폐를 내게 내밀며, 오늘부터 공예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나는 부모님과 상의된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뭐든 배우라고 하세요.” 당차게 대답했다.

허락은 무슨, 수강료라고 들고 온 돈은 딱 봐도 용돈인데. 

젖비린내와 짠 내가 물씬 풍기는 지폐 몇 장은 한 달 수강료로 어림도 없었다. 그 애가 배우고 싶어 하는 포크아트는 수강료보다 재료비가 몇 배나 더 들었다.     

정말 배우고 싶어 하는 간절함이 가득한 눈망울을 보자 차마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똘망하고 예쁘장하게 생겨서는, 내 마음을 더 약하게 했다. 


나는 고민 끝에 절충안을 제시했다. 

일주일에 한 시간만 무료 수강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보아하니 일회적인 호기심일 테고, 기본적인 재료를 갖추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그걸 다 소모하기도 전에 그만둘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사용할 재료는 내가 쓰고 있는 물감이나 소품위주로  나누어 주면 되니, 크게 손해 볼 건 없었다.     


학생 이름은 성경이다. 알고 보니 초등학생이었다. 12세라는데, 폭풍성장 중인지, 나보다 키가 컸다.

나는 성경이에게 포크아트의 기초만 대충 가르쳐 주고, 뭐든 그려 보라고 했다. 그리고 방목했다. 

무료 수강이니까 적정선은 그어 두었다기보다, 성인 수강생에게 하듯, 단계별 수준을 정하고 틀에 맞춘 기술력을 전수할 수가 없었다.

내가 취급하는 공예 과목들은 아이들 수준에 맞출만한 게 거의 없었다. 비용 부담이 크거나, 힘깨나 써야 했다.  칼라믹스가 그나마 무난했는데, 성경이는 시시하게 봤다.   


다행인 건, 성경이는 나를 귀찮게 하진 않았다. 덜 여문 손을 꼼지락거리며 무언가 그리긴 했다. 내가 보려고 하면, 부끄러운 척 어설프게 가렸다. 

나는 성경이가 한 달이 되기 전에 제 발로 나갈 거라고 예상했다. 내 바람과 다르게 성경이는 쭉 길게 다녔다. 제대로 된 수강료와 재료비도 내고 끈덕지게 붙어 있었다. 부모님까지 설득한 것이다.

우연한 인연으로, 성경이는 나의 최연소 수강생이 되었다.   


성경이는 가끔 나를 놀라게 했다. 성경이의 야심작 중 하나가 있었는데. 숭례문이다.

성경이는 숭례문을 방화한 사람에게 화나고, 문화재가 소실되어 마음이 아팠다며, 숭례문 복원 (2013년) 전의  모습을 자료 삼아 포크아트에 응용했다.

나도 마음이 아팠다. 신통방통한 너를 쫓아내려고 기회만 노렸던 것이, 미안하구나. 

중년기의 나는 20여 년 넘는 아트 일에 열정보다 관성이 되어버렸다. 남들보다 쉽게 고갈되는 저질 체력도 문제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며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건 점점 힘겨워졌다. 

그런데, 12세 소녀에게 신선한 에너지를 얻고 있었다.      


그 이후로 공방에 색다른 고객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성경이 또래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길거리에서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어디서 무더기로 나타난 건가 싶었다. 

동네 주변엔 학원도 많았지만, 도로 하나를 두고 행정구역이 갈려서 초등학교가 두 곳이 있긴 했다.

성경이를 따라서 공예를 배우고 싶은 어린 학생들의 수강 문의가 쇄도했다. 

알고 보니, 성경이는 학교에서 공부도 일 등을 도맡아 했고, 회장도 했던, 인기가 꽤 있는 아이였다. 

여기가 일반학원이었다면, 성경이 한 명으로 따로 흥보가 필요 없을 정도였다.   

성경이가 친하게 지내는 동생들이라고 해서, 초등학생 몇 명을 받아 주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놀이공간으로 오픈했다. 


내가 아이들을 특별히 좋아해서도 아니었고. 무료 봉사에 뜻이 있었던 건 더욱 아니었다. 

오직 성경이 때문이다. 어린 녀석이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었다. 성경이에게 무료 수강의 기회를 준 건데, 흥보효과가 될 줄 알았겠나. 이 일이 다른 파장을 불러올 줄도 몰랐다.  


엄마는 어린애를 수강생으로 받았다고 걱정이 많았다. 공방 출입도 자주 하며 작두 모양의 커트기, 손가락도 자를 위력 있는 공예용 도구 등을 이이들이 손 닿지 않은 공간에 치우기에 바빴다.

뭐 그렇게까지, 어린애라도 보는 눈이 있는데, 그런 위험한 걸 만지겠나 했는데...

나는 아이들을 몰라도 한참 몰랐다.

얼마나 기발하고 창의적으로 사고를 치는지 기함할 지경이었다. 위험한 요소를 다 제거하고도 눈이 전방위로 달려야 했다.

그 당시 가장 중요하게 작업했던, 캐리커처 웨딩 인형 주문 제작도 순탄하지 못했다. 일주일 꼬박 작업해도 한 쌍의 웨딩 인형을 뽑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장난치다가 애지중지하며 작업했던 인형을 깨뜨렸을 때는, 진짜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나는 어린애들을 공방에 들인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물론 보람도 있었고, 주 양육자나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의 고됨과 노고의 일부라도 체감하게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뜻하지 않은 파장을 불러왔다. 

성경이는 내가 다니는 교회의 어떤 집사님 딸이었다. 

나는 40대 이후로 선데이 또는 가나안 교인이 되어서 전 교인의 절반도 모른다. 교회 부서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중년인데, 미혼이라고 해서 청년부에 기웃댈 수 없는 노릇이니까.


교회에서 내가 아이들을 잘 가르친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돌았다. 이때다 싶어 구역장이 나를 찾아와서 초등부 주일 교사로 다음 학기 명단에 넣겠다고 했다. 나는 교회에서 아무런 봉사를 하지 않아 약간 찔리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평소에도 구역장은 성가대 아니면 식당에서 봉사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음치고, 똥손이라서 감당할 수 없다고 몇 번이나 고사했다. 

이번에는 내가 어떤 변명을 해도 안 통했다.     


성경이로 인해 나는 아이들 세계로 떠밀리듯 깊이 들어와 버렸다.


아이들은 조각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조각되지 않은 돌덩이와 같다는 말이 있다.

시끄럽고 요란스러운 돌덩어리가 되어 나의 고요하고 정적인 일상을 뒤흔들었다. 



성경이가 그린 숭례문 (앞) 포크아트 
성경이 그린  숭례문 (뒷면) 포크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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