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하얀 면 원피스에 대한 판타지
단정하고 나풀나풀하고 하얀
SNS 광고창에 뜬 새하얀 면 원피스를 입은 여자. 흰 면 옷은 정말 좋아하지만 사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들 중 하나다. 언젠가 욕망이 이기면 살 지도 모르지만, 한 계절의 허니문이 지나 서랍에 들어가고 나면 계절이 와도 다림질해야지 하면서 박아만 놓고 폴리에스터 같은 것만 아직 젖은 머리 위에 뒤집어쓰고 다니겠지. 다림질을 하기엔 매일매일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냔 말이다.
그래도 서랍에 있는 원피스를 볼 때마다 행복하긴 할 거야. 그 옷을 입고 좋은 곳에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가는 생각을 하면서 말야. 달콤한 냄새가 나는 따뜻한 바람이 살랑살랑 치마를 날리고, 나는 알레르기나 수면 부족, 아이 픽업, 소화 불량, 일 같은 건 걱정하지 않고, 산뜻한 마음으로 그 다정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야. 원피스에 어울리는 발이 아프지 않은 샌들과 우아하지만 귀여운 작은 백도 구했지. 그 백엔 설레임만 가득 들어있어 하나도 무겁지 않아. 수첩, 펜, 노트북, 책, 돌려줄 물건, 쇼핑 가방, 여분의 옷, 메이크업, 생리대, 선물 같은 건 필요 없는, 깃털처럼 가벼운 만남인 거야.. 멀지도 않고 진부하지도 않은 장소에서,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지, 시간이 지나가는 안타까움마저 즐겁고 따스하게 느끼며...
어느 중요한 날의 전날 밤에는 셔츠를 다리고 남은 열로 드디어 원피스를 다려 걸어 놓겠지. 하지만 그 옷을 입을 날은 오지 않고 계절이 지나 원피스는 다시 서랍으로 들어가. 그렇게 몇 번의 계절이 더 지나 꺼내 보면 부드럽고 하얀 면사는 색이 바래어, 가슴께의 누런 얼룩이 지워지지가 않아. 뒤늦게 얼룩 제거법을 찾아보지만 원래의 로맨틱한 색과 감촉은 돌아오지 않고... 그럼 이제 아까워서 버리지는 못하고 이후 계절이 올 때마다 보면서 한숨만 쉬게 되겠지.
앞으로 일어날 일을 알면서도 어떤 사람들은 좋다는 이유로 무언가를 손에 넣고,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자신을 용서한다. 후회할 시간을 두려워하며 바라만 보는 것보다 그렇게 좋아하고 후회하길 반복하는 것이 인생을 의미있게 사는 방법일지도 모르지. 그러나 낭비란 나 같은 인간에겐 참으로 어려운 것. 그래도 물건에게는 좋아한단 말 정도는 마음껏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