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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Oct 10. 2023

데자뷰처럼


재작년 그의 전화가 오기 전까지  땅속에

숨어든 고슴도치처럼 나는 숨죽이며 살았다.


고독 속에 잠들고 침묵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낮에는 조용하게 햇볕과 함께 내 할 일을 하였다.


그렇다 해서 쉬운 삶은 아니었다.


핏기 없는 얼굴로 하루종일 말 한마디 하지 않은 날도 있었고 잠들면서 아픈 어깨 때문에 끙끙 앓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주위가 조용했다. 즐겼든 그렇지 않든.


그러다 훌쩍 어디론가 가고 싶을 땐 바람처럼 떠났다 돌아오면 살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데자뷰처럼 죽는다고 큰소리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미 오래전 큰소리에 미지를 입은 내 심장은

잊고 있던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또다시 고동을 치며 내 손은 귀를 틀어막았다.


나는 몸부림치며 땅속으로 꺼지고 싶었다.


집을 마련하고 죽겠다는 엄마를 살리느라 이미 나는 온몸의 진이 다 빠져있는데 나보고 또다시 어쩌란 말인가.


군에 가는 대신 특례로 모은 전세금과 시골논에 물들어 받은 보상금까지 모두 잃어 그가

장가를 들 때 이자 없이 대출을 해주어

집까 마련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하였는데


그는 목마른 아이처럼 시도 때도 없이 내게 전화를 하였다.


말을 하지 않는다 하여 모르지 않은 것처럼

조금만 생각을 하여도 알게 될 일을


한쪽 팔은 햇볕 알레르기가 있는 데다

무리하면 부종이 생겨 팔은 납덩이처럼 무겁기 그지없고 툭하면 병원에 입원하기 부지기수였는데


내가 병원에 입원한 날도 전화를 하여

그는 트집을 잡으며 돈타령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뿌린 씨앗이 부족했던 것일까.


명절 때마다 사가지고 간 선물이며 양주며 봉투며

상품권이며 음식이며 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 말인가.


그래도 시간이 흐르면 좀 나아질 줄 알았건만

나의 바람과 달리 일은 거꾸로 흘러만 갔다.


이제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웬만한 것은 다 있는데 조금만 배려하면 함께 여행도 갈 수 있는데

숨을 쉴만하면 일을 만든다 말인가.


나는 그렇게 살라해도 못살겠다 싶은데


그럴 때마다 오냐오냐 불쌍하다며 잘못을 해도

나무라지 않은 엄마가 나는 원망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버틴 영향 때문인지 며칠 전에 온 그의 목소리는 빚이 없는 사람처럼 부드러웠다.


하지만 오래전 누군가의 데자뷰처럼 그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심장은 고동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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