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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혜리 Nov 01. 2023

낮은 자리에 서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내가 몸이 좋지 않고부터 여동생은 일 년에 한두 번 점심시간에 나를 불러 점심을 사 주었다.


몇 년 전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동생은 내게 저녁을 산다며 전화를 하였다.


마트도 다녀와야 하고 볼일이 있어 나는 다음날 만나 자고 하였는데 약속 한 날 저녁에  꽃게된장 정식을 앞에 두고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았다.


얼마 전에 승진을 한 동생과 함께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식사를 하던 중 그녀는 내게  약속을 왜  미루었냐며 이유를 물어보았다.


나는 못 나온 이유를 솔직하게 설명을 하였는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얼굴색이 변하며 태도가 달라지는 동생을 지켜보며 태연히 식사를 마쳤다.


하나님은 복음서에서 "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마태오복음 23장 12절)라고 하셨거늘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서울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친구의 말처럼 원래부터 그런 아이였을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듯이 서울에서 방을 얻는다며 거짓말하고 가져간 중간정산한 내 퇴직금을 잃었으면 언니 미안하다 한마디해야 옳지 않을까.


뭐든 처음이 중요하다고 그 미안하다 한마디면 끝날일을 안 되는 일마다  모두 남의 탓으로 돌리고 덮어씌우면 마음이 편해지기라도 하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말썽 한번 일으키지 않은 동생이 무얼 잘못 먹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할 때마다 나는 자주 하늘을 올려 보았다.


없는 살림에 제일 많은 기회를 가졌지만 모두 내팽개치고 꽃길 대신 어려운 길만 골라 가는 동생이 나는 불안하면서도 안타깝다고 여겼었는데


자리가 사람을 만들기라도 하는 것일까.


노력하여 얻은 자리 칭송 들어 마땅하다 생각하지만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 또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리를 안다면


깊지 못한 식견으로 알량한 부심 부리는 동생을 볼 때마다 내가 다 낯이 뜨거워졌다.


한때는 공부 잘하는 동생이 부럽기도 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하였는데 그것도 이제 옛말이 되었고


언젠가 능력 없는 제부를 욕심 없는 성결한 신부님에 빗댄 그 아둔함까지 굳이 따지지 않더라도


저와 내가 멀어지고 가족이 멀어진 건 다름 아닌 주제도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저 때문이란 걸 이제라도 안다면


한 번쯤 낮은 자로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은 친절하고 검소하며 관리하는 능력까지 뛰어나다는데


소리 높여 스스로 잘났다고 소리치는 사람 많은 이 세상에서


닭이 알을 품듯이  다시 한번 동생을 품으며

바보 김수환 추기경처럼 나는 그렇게 살아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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