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낮부터 주룩주룩 소나기 같은
비가 세차게 창문을 두드리다 그치더니
하룻사이에 저만치 달아난 뜨거운 태양은
연푸른 빛깔의 익은 박처럼 풀이 죽었는데
드높아가는 파란 하늘엔 양 떼 같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었네.
저녁 산책길에 목덜미에 부딪힌 바람은 제법 선선하기까지 하였는데
시끄럽던 매미소리가 물려 난 자리에
청량한 목소리의 풀벌레가 노래를 부르면
발소리를 죽인 가을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자고 일어난 아침, 창문 너머 불어온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었는데
추석을 지나 한껏 고개 숙인 벼가 너른 들판에 황금빛 물결을 이루면
빨갛게 연지 바른 새색시 같은 사과가 눈부신 햇살 아래 얼굴을 내밀고
한 여름의 태양에 붉게 익은 석류는
까르르하며 알알이 하얀 웃음을 터트린다.
낙엽이 뒹구는 거리를 서성이며 트렌치코트를 입은 키가 큰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연인을 기다리는데
하얀 도화지에 채색을 한 듯 보라빛 와인 같은 가을산이 산 그림자를 안으면
나는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거리에서 휘파람을 불며 사진을 찍고
노을처럼 붉은 숲속길을 안개를 헤치 듯
걸어서 가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