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아침,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마치 수채화처럼 흐른다. 평소 같으면 잔잔한 클래식을 틀었겠지만 요즘은 출퇴근 차 안이 나만의 작은 영어 교실이다. "I drive my car to work."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평범한 문장 하나가 일상에 새로운 빛깔을 더한다. 신호등 앞에서 멈출 때마다 작은 복습이 시작된다. 매일 아침 출근길, 생활영어와 동행한다. 처음에는 서툴게 더듬거리며 따라 하던 문장들이, 이제는 입안에서 자연스럽게 굴러간다. 매일의 반복되는 시간이 지루함이 아닌, 설렘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매물 확보의 여정. 건물주들과 통화하며 하나둘 정보를 모은다. "네, 관리비는 어떻게 되나요? 권리금 조정 가능성은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실마리를 찾아내는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좋은 매물은 늘 시간과의 싸움이다. 발 빠른 움직임으로 미용실에 적합한 상가 세 곳을 확보했다. 햇살이 잘 드는 2층 코너 상가, 초역세권 위치 좋은 상가, 유동인구가 많은 상가 각각의 공간이 가진 장단점을 꼼꼼히 기록하며 준비를 마친다.
그때 시작된 해프닝. 미용실 자리를 찾는 손님과의 숨바꼭질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여보세요? 아, 정말 죄송합니다. 계속 전화를 못 받았네요." "괜찮습니다. 저도 방금 전화를 놓쳤어요. 왠지 오늘은 인연이 아닌가 했어요." 손님의 전화는 받지 못하고, 걸었던 전화는 연결되지 않고,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이럴 수가! 매너모드로 설정되어 있다. 당황스러움이 웃음으로 바뀌는 순간, 작은 실수가 만든 오전의 해프닝이 오히려 손님과의 거리를 좁혀준다.
"준비해 둔 매물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먼저 위치부터 말씀드리자면..." 준비한 자료를 펼쳐 놓고 각 매물의 특징을 브리핑한다. "이 상가는 유동인구가 하루 평균 3000명 정도 됩니다. 주변에 대형 마트와 직장인들이 많아 젊은 층의 유입이 많고요." "바로 앞 버스정류장과 초역세권이라 접근성이 좋습니다." 손님의 만족한 눈빛이 느껴진다.
1년 전에는 이런 디테일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그때는 그저 면적과 가격만 나열했었는데, 이제는 상권 분석부터 발전 가능성까지 브리핑할 수 있다.
마침내 이어진 현장 답사. "사실 여러 부동산을 돌아다녀봤어요." "다른 곳은 어떠셨나요?" "특별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더라고요. 오늘 안내받은 곳이 원하는 평수와 위치가 맞는 것 같아요. 인테리어 업자와 약속 잡고 한 번 더 방문하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매장이 있다는 말에 가슴이 따뜻해진다. 누군가의 꿈이 시작될 공간을 연결해 주는 일은, 단순한 중개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들의 설렘과 기대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저물어가는 햇살 속에서 지난날의 기억이 스며든다. 1년 전, 하루 3-4팀도 버거웠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떨리는 목소리로 했던 상담, 서툴렀던 현장 안내까지. 시간은 참 신기한 스승이다. 수많은 발걸음이 쌓여 이제는 10팀의 방문도 여유롭게 맞이할 수 있는 단단함이 생겼다. 매물을 설명할 때면 자연스럽게 술술 흘러나오는 전문 용어들, 손님의 표정 변화를 읽어내는 눈치, 적재적소에 건네는 공감의 말 한마디까지. 작은 실수와 시행착오가 모여 만든 보석 같은 경험들이 하나둘 쌓여 여유로 변신했다.
창가에 물드는 저녁노을이 마치 수채화처럼 번진다. 하루하루 쌓이는 시간이 삶을 더욱 깊이 있게 물들인다. 누군가의 소중한 꿈과 희망이 이어지는 순간들이 가슴 깊이 새겨진다. 때로는 실수로, 때로는 우연으로 맺어지는 인연들. 그 모든 만남이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다양한 인연이라는 물감으로 그려낸 하루가, 풍성한 그림이 되어 저물어간다. 내일은 또 어떤 색채로 채워질지, 기대감으로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