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시작이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이 평화로운 하루를 예고하는 듯했다. 마치 따스한 미소처럼 부드럽게 퍼지는 햇살 속에서 하루가 시작되었건만, 전화벨 소리와 함께 평온함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늘의 키워드는 '다스림'. 그것도 '분노'를 다스리는 시험대에 올랐다. 마치 운명이 던진 작은 시험지처럼 첫 번째 전화벨이 울린다.
"관리사무실 번호 좀 알려주시겠어요?"
"네, *** 번입니다."
"잠시만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부산한 소리. 메모지를 찾는 것 같다. 마치 쥐가 시간을 갉아먹는 것처럼 부스럭 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메모지 준비도 없이 전화를 했구나, 전화받는 쪽이 바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못하지? 그냥 외워도 되는 7자리 숫자인데, 메모지를 찾는 동안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한참만에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가 들려왔다. 앵무새처럼 다시 또박또박 불러주었다. 전화가 끊어지는가 싶더니
"저, 잠시만요 궁금한 게 있는데요, 평일이랑 주말에 다른 차를 쓰거든요. 한 대로 등록해서 주차비를 줄 수는 없나요?"
단지마다, 관리규약이라는 게 있고, 무엇보다 이건 극히 상식인데 하... 소리가 새어 나올뻔했다. 관리규약이라는 단어가 목구멍 입구까지 차올랐다가 삼켜진다. 마치 뜨거운 차를 급하게 마시다 데인 것처럼 화끈거리는 기분. 상식적인 선에서 답변을 했지만, 이미 분노의 작은 불씨는 지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두 번째 전화벨이 울린다.
"조금 전 전화한 사람인데요. 방금 주신 번호가 팩스로 넘어가는데요?"
"다시 한번 불러드리겠습니다."
"끝 번호가 틀리게 불러주셨네요."
"그럴 리가요. 정확하게 불러 드렸는데 잘못 받아 적어신 것 같네요."
"아, 네." 정성껏 불러준 번호에 돌아온 건 차가운 반응이다. 마치 겨울에 찬물로 냉수마찰을 하듯 싸늘함이 지나간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어디로 사라진 걸까. 너무나 당연한 권리로만 여기는 이 시대의 단면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 번째 전화는 분노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한다.
" ***호 임대인인데요. 우리 집은 보여주고 있나요? 집 상태는 어떻던가요? 몇 명이나 봤나요?"
자기 집만 관리하라고 고용한 집사인가, 몇백 세대에서 어떻게 자기 호실에 대해 모든 것을 알기를 바랄까? 자기 집의 방문 횟수를 일일이 기억하길 바라는 마음은 마치 바닷가에서 특정 모래알을 찾으려는 것과 다름없다.
자기중심적 사고가 만든 아이러니한 순간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100세 시대를 살아가며 마주한 이 현실. 저출산시대라고 걱정하지만, 먼저 어른들의 말투, 말버릇 개선이 더 시급한 것 같다. 아이들이 과연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타인을 향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고, 개인주의가 둥지를 틀었다. 오롯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모습에 퍽퍽한 밤고구마 몇 개는 먹은 것처럼 답답하다. 하지만 분노는 결국 나를 갉아먹는 기생충과 같다. 치밀어 오르는 화를 삭이며 글쓰기로 마음을 다스린다 나만의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이다.
글을 쓰다 보면 나, 너, 우리가 보인다.
"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지, 그래라 그래 " 3 그로 흘려보낼 수 있다.
이하영 작가님의 어머니 가르침이 떠오른다. 참 귀한 유산을 남겨 주셨다. 화를 쟁여두면 나만 손해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라는 녀석을 받아들일 수는 없지 않은가, 캄캄한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모든 이의 마음속에는 작은 친절과 따뜻함이 분명 남아있으리라. 단지, 그것을 끄집어내는 방법을 잠시망각 했을 뿐.
상담원의 노고
문득 하루 종일 상담만 전문으로 하는 상담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얼마나 많은 분노를 부르는 전화를 상대하며 어떻게 삭이고 있는지, 상담원과의 통화를 할 때 나라도 최대한 예의를 지켜서 기분 좋게 만들어줘야겠다. 후- 깊은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분노를 다스리는 일은 어쩌면 자신을 다스리는 일. 작은 깨달음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힘이 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