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지어는 향기를 남기고 떠났고, 나는 며칠동안 누워만 지냈다. 가만히 있으면 머리를 조이는 두통이 밀려왔다. 좀이 쑤셔 옆으로 돌아 누울 때면, 뇌가 두개골 안에서 흔들흔들 움직이는 것 같았다.너무 어지러웠다.
그 공간 안에서 그 상태로 무얼 할 수 있을까? 그저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며 연락 오는 이들에게 나의 상황을 알릴 뿐이었다. 사고 난 시각이 유치원생들 하원하는 때 즈음이라현장을 목격한 동네 사람들이 많았다.그중에는 아이 친구의 엄마들도 몇 있었기에,걱정하는 목소리가 톡! 톡! 휴대폰을 두드렸다.
작은 사거리에서 난 사고. 온 동네 떠나가라시끄럽게 울렸던 엠블런스 소리처럼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다. 사고 당일에 이미 인근 아파트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갈 정도였으니까. 다음날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가 사고 이야기로 시끄러웠고, 둘째 아이 담임 선생님께선 걱정스러운 하이톡을 보내왔다. (마침 학부모 상담 기간이기도 했다.)
병원 안에 있어도 세상은 잘 흘러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걱정됐지만 시어머니께서 살뜰하게 챙기셨고,두 아이 모두 내 생각보다 씩씩하게 버텨내고 있었다. 처음 전화 통화를 할 때도 어린 둘째가 엉엉 울줄 알았는데,
"엄마 많이 아프죠? 빨리 낳으세요"
하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 주었다.
너희는 얼마나 놀랬을까. 등굣길, 사고 현장에 표시된 사람 형상의 하얀 스프레이 자국을 지나면서, 그 여리고 슬픈 마음을 어찌 억눌렀을까. 아이들 생각에 훌쩍거리고 있는데간호사가 왔다.
"이제 소변줄 빼 드릴게요."
역시 머리를 심하게 부딪히긴 했나 보다. 소변줄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다니. 과거 입원 생활 중에도 몇 번 경험했던 그것. 고마우면서도 민망한 친구. 그 친구를 간호사가 데려간다는 것은 이제 움직여도 좋다는 신호였다.
"아직 많이 어지러울 테니 천천히 움직이세요."
"네"
하지만 움직이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두통과 어지럼증이 수시로 밀려와정신이 혼미했으니까. 간호사가 주고 간 약을 먹고 내내 눈을 감고 두통과 싸웠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약의 효과였는지 두통이 좀 가라앉았다. 그 사이 없어진 친구 찾아 심통이라도 부리듯 방광이 조급한 신호를 보냈다. 엄마의 도움을 받아 화장실을 처음 다녀오는데, 어라? 눈이 이상했다.
"엄마. 나 눈이 이상해."
"왜? 눈이 어떻길래?"
"아래쪽으로 내리면 두 개로 보여."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내려보면 내 발이 네 개로 보인다고!"
대학병원에서는 담당의사가 회진을 돈다. 시간은 의사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담당의사는 오전에 왔다. 마침 회진 시간이 되어 이상 증상을 이야기했다.
복시. 머리 충격으로 올 수 있단다.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올 수 있는 증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검사 한번 다녀오세요."
"무슨 검사요?"
"CT 찍어보고 다시 말씀드릴게요."
"네."
통증의 시간들 사이사이,내침대는검사를 하러 덜컹덜컹 움직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CT를 찍고 MRI를 찍고...나는 진료를 기다리는 외래 환자들 사이에서 침대 위에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누군가 손에 꽂힌 주사 바늘을 한번 쳐다보고, 다시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