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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Oct 30. 2022

제3의 언어로 사랑하기

국제커플이 싸우지 않는 이유

고등학생 때 어떤 친구는 이렇게 얘기했었다. 


“난 외국인이랑은 못 살 것 같아. 난 개그콘서트를 보면서 같이 깔깔거리고 족발에 소주도 나눠먹고 싶다고” 


음, 그러고 보니 알피는 족발을 먹지 않는다. 먹을 부위가 그렇게 많은데 왜 하필이면 남의 발을 먹냐는 논리에 내가 졌다. 예능 프로그램도 얼굴을 찌푸리며 채널을 돌려버리는데 시끄럽고 유치해서란다. 티비 자체를 안 좋아하는 나로선 환영이다. 


주변에서 종종 묻는다. 


“둘이 싸운 적 없어?”

"외국인이랑 살면 문화 차이로 갈등은 없어?"


우리 둘은 많은 면에서 닮았지만 다른 점도 분명히 많다. 이건 대한민국, 전 세계 어떤 커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애초에 국적이나 생김새부터가 대놓고 다르다는 눈에 보이는 아주 큰 다른 점을 갖고 시작하다 보니 웬만한 성격 차이나 의견 차이를 예민해하지 않고 원만하게 넘기는 것 같다. 쉽게 말하면 서로가 외국인이라는 디폴트를 깔고 있으니 '넌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이해해버리기가 더 쉬운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인이랑 결혼했다는 자체가 서로에게 끌리는 매력과 호기심이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에 근거하고 있기에 그렇지 않나 싶다. 물론 살다 보니 공통점을 찾아가며 더 좋아하게 되는 면도 있다.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면 싸우기도 곤란하다. 모국어가 각각 한국어, 스페인어로 다른 우리는 '영어'라는 중간 지점에서 만난다. 한국생활 3년 차 알피는 이제 생활한국어에는 익숙해진 상태이지만 직장에서 한국어를 전혀 쓰지 않으니 요즘은 또 제자리걸음이다. 나는 영어 단어를 섞어서 스페인어를 문장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단계까진 왔지만 아직은 현재형 밖에 못쓰는 초급이다. 서로의 언어를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단계이기에 우리 둘 사이의 소통은 대부분 영어로 이루어진다. 애초에 만난 곳도 미국 회사였고 둘 다 영어를 편안하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에 소통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그런데 우리 둘 다 영어 원어민은 아니다 보니 조금 듣기 싫은 말이나 진지한 대화를 할 때는 모국어를 쓸 때보다는 좀 더 생각하고 가다듬고 말하게 되는 게 분명 있다. 결론은 단순하다. 하고 싶은 말을 그때그때 팍팍 뱉어버리지 않으니 싸울 확률도 줄어드는 거다. 


우리는 현재 영어를 자유자재로 쓰고 있기는 하지만 둘 다 영어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게 된 것은 성인이 되어서부터라는 공통점이 있다. 완벽한 바이링구얼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가까워지려고 노력한다. 영어로 맺어진 우리의 관계는 이미 너무나 끈끈해서 떼어놓을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 깊은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표현 이상으로 영어를 끊임없이 익히는 수밖에 없다. 그런 노력을 그만둔다면 우리의 대화는 일차원적인 수준에 머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언어를 끊임없이 배우는 것'은 우리가 관계를 지속, 발전시키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모국어가 아닌 언어는 iOS 소프트웨어보다도 더 지속적이고 잦은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아마도 평생 그럴 것이다. 그렇지만 그럴 가치가 있다. 매일 잠들기 전 '잘 자' '사랑해'와 같은 짧고 따뜻한 말을 세 개의 언어로 차례차례 주고받는 건 참 소중한 기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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