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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자연 Feb 07. 2019

내 영어만 문제인 걸까?

그렇다고 지고 들어가진 말아요




주변에 무슨 말을 할 때마다 빙빙 돌려 말하고 이야기에 두서나 맥락이 없는 사람을 한번쯤은 봤을 것이다. 아니면 이 말 저 말 너무 정신없이 하거나 유식하게 보이려고 어려운 단어들만 잔뜩 나열하는 사람. 또는 중얼중얼 조그맣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같이 정신이 없어져서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할 궁리를 하거나, 계속 듣고 있자니 속이 체한 것처럼 답답해지고,  들어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고개를 끄덕거린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영어로 대화를 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내 나라 말로 대화할 때는 내가 못 알아듣는 탓을 하지 않으면서 단지 상대방이 원어민이라는 이유만으로 나의 리스닝 스킬에 대해 좌절한다는 것이다. 모든 한국인이 조리 있게 말을 잘하는 게 아니듯이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원어민들도 마찬가지다. 이 얘기했다가 저 얘기했다가 하는 사람,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아 그 거시기있자녀, 하는 식으로 얼렁뚱땅 말하는 사람 등등. 또는 특정 지역 억양이 강해서 아는 단어라도 낯설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 경우라면 영어권에서 태어난 사람들조차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게 다반사이다.


나도 처음에는 못 알아듣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일단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지고 들어가는 느낌이 컸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내가 잘 못 알아듣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어로 생활하는 것이 익숙해지고, 같은 영어권 사람들이라도 여러 연령층의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대하다 보니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문제가 늘 내 부족한 영어 실력에 있다기보다는 상대의 말버릇이나 대화 스킬에 하자가 있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었다. 가끔 어떤 게스트들의 컴플레인은 이해하기가 정말 힘든데 알고 보면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 말 저 말 다다다다다 하기 때문에 포인트를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경우가 그랬다. (분명히 한국어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또 가끔 주눅 들곤 했던 나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준 사건이 있다.


한 3년 전이었던 것 같다. 플로리다에서 마지막 시즌을 마치고 영국으로 배를 이동시켰던 시즌이라 승객의 반 이상이 미국인이었다. 크루즈에서는 매일 저녁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데, 그 날은 코미디쇼 였기 때문에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좌석이 꽉 차있었다. 겨우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문제가 생겼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거였다. 웨일스(Wales) 출신의 코미디언이라 미국식 영어에 익숙해진 내 귀에는 조금 낯선 억양이긴 했지만, 분명히 웃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알아듣지를 못하니 함께 웃을 수가 없었다. 피곤해서 먼저 자리를 뜨겠다고 핑계를 대고 방으로 돌아와서는 울적한 기분에 맥주 하나를 꺼내 벌컥벌컥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 날 나는 재미있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많은 미국 손님들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던 것이다.

"어제 코미디 공연 봤어? 세상에, 웨일스 억양이 어찌나 강하던지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보다가 그냥 나왔다니까. 게다가 그쪽 개그는 알아듣기가 좀 힘들어"

그 말을 들은 나는 눈이 동그래졌다. 나는 그들에게 다시 물었다.

"나도 못 알아들어서 중간에 나왔단 말이야! 정말 너희들도 그랬다고?"

그 미국인들의 말에 따르면 주변에 앉은 영국 사람들은 다들 박장대소를 하는데 자기들은 무슨 말인지도 잘 모르겠고 웃음 포인트를 찾지 못해서 민망했다는 거다. 그리고 실제로 여러 미국인들이 자리를 떴다는 말을 했다. 그들이 이런 말을 해주지 않았더라면 내 영어실력에 좌절하며 한동안 나 자신을 구박했을 터였다.


그러니까 무조건 내 영어 실력만 반성하고 파이팅을 외칠 건 또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영어 실력은 비슷하다.



영어를 생활화한 지 7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나의 영어는 갈 길이 멀다. 그러나 가끔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기가 힘든 게 무조건 100% 내 탓만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 후로 훨씬 여유로운 대화가 가능해졌다. 설령 내 리스닝 스킬 탓이라고 한들 '그게 뭐 어때서. 난 아직 배우는 중인데' 하는 식의 배짱이 생겼다. 못 알아들었어도 알아들은 척하며 고개를 주억거리는 대신, 천연덕스럽게 제대로 다시 말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농담이나 슬랭을 알아듣는 건 좀 어렵다. 그래도 그건 내 탓이 아니다. 난 이 문화에서 나고 자라지 않았으니 못 알아듣겠다며 당당히 그러나 정중하게 다시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다.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 왜 그렇게 쓰이는지. 그러면 상대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왜 이 말이 이런 상황에 쓰이는지 차근차근 잘 설명해주거나, 아니면 본인도 왜 이렇게 쓰이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몰랐다며 되려 신기해하거나.


그렇게 나에게 영어는 정복의 대상이 아닌 더 많은 사람과 소통을 하기 위한 재미있는 도구가 되었다.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배우는 건 사실 많은 노력이 따르지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접했다면 모를까 영어는 한국어와 비교했을 때 완전히 다른 문화에 기반한, 문장 구조, 발음, 발성 모든 것이 다른 언어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원래 언어에는 왕도가 없는 것 같아요. 오랜만에 들어오니 모국어인 우리말만 해도 당장 요즘 유행하는 줄임말 같은 건 도무지 알아듣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러니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도 괜히 외국인 앞에서 기가 죽는다면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주눅 들 이유가 정말 하나도 없다는 걸요. 우리는 어떤 것이든 그것을 통해 배우고 있고, 매일매일 조금씩 이루어가는 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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