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뉴트로 열풍이 해가 지나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젊은 세대에겐 경험하지 못한 새로움을, 기성세대에겐 과거의 추억을 선사하는 뉴트로는 이젠 단순한 유행을 넘어 이제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듯하다.
특히 뉴트로는 식품,음악,패션,스포츠 등 전 분야로 뻗어나가 우리가 보고 듣는 일상의 많은 것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특히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 '모던걸' 컨셉으로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다. 대체 모던걸이 뭐길래?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과거,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볼 필요가 있다. 알다시피 조선은 남성 중심의 유교사회로써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거의 바닥이었다. 여성에게 배움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고, 지식이 없으니 주장을 펼칠 수 없었으며, 오로지 지아비만을 섬기고 자녀들을 많이 낳아 잘 키우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미덕이었다. 하지만 1910년 조선이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교육과 배움을 통해 조국을 되찾아야 한다는 애국계몽운동이 전개되면서 여성들의 배움과 사회활동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특히 개항이 본격화되고 우리나라에 많은 서구 문물이 유입이 본격화되면서 다양한 지식과 스펙을 갖춘 일명 '신여성'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조선시대 여성들과 달리 고등교육은 물론, 일부는 유학까지 다녀올 정도로 스펙과 지식이 뛰어났다. 1930년대가 되면서 신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자 이들은 곧 현대여성을 뜻하는 '모던걸' 로 불리기 시작했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모던걸의 등장을 그리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성들에게 순종적이기만 했던 여성들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위기의식과 불만을 느끼던 세력들이 여성을 차별하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모던걸을 빗대어 서구문화에 휩쓸린 ‘못된 걸’로 표현하기도 했다. 1980년대만 해도 택시기사들은 안경 쓴 여자를 첫 손님으로 받으면 재수가 없다고 태우지 않았다고 하니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얼마 되지 않은 1930년대는 그러한 차별이 더욱 극심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던걸들은 자신을 향한 멸시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자리를 잡고 인정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 서양화가 나혜석,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모던걸들은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표현력으로 문화계를 이끌었고, 한층 더 발전된 문화는 우리나라의 근대화를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렇듯 100여 년 전, 최초의 모던걸이 등장한 이후 수많은 모던 걸이 탄생했고 2020년을 사는 지금,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여성들은 남성과 동등하게 교육받을 수 있고, 원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직업 선택도 자유롭다. 물론 아직도 사회 곳곳에서 성차별이 남아있긴 하지만 100여 년 전과 비교하면 여성의 인권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아졌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만약 모던걸이 없었다면 현대사회를 사는 여성들은 지금의 지위와 역할을 가질 수 있었을까? 여성들이 더 나은 세상에서 살 수 있게 하고, 또 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도 이바지할 수 있게 해준 100여 년 전의 모던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