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키노의 다루마에서 인생 맥주를 만나다!
JR 삿포로역에 도착! 서울에서는 잠깐 내리는 눈을 보기도 힘들었었는데 여기는 눈의 고장답게 온 거리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거리에도 눈이 많이 쌓여 있어 힘겹게 캐리어를 끌고 숙소를 찾아갔다. 10년 전 삿포로에 왔을 때는 정말 숙소를 찾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려서 숙소 인근 인도의 눈은 내 캐리어로 다 쓸고 다녔던 추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때에 비하면 수월하게 숙소를 찾아 체크인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말 눈이 감기기 직전으로 피곤해서 침대에 내 몸 어디 한군데가 닿기만해도 뻗어 잠들 것 같았다. 잠의 유혹을 뿌리치고 캐리어만 집어넣어놓고 바로 밖으로 나왔다.
12월 28일 금요일 밤이었다.
연말을 즐기려는 커플, 직장인 무리, 가족들과 함께 눈 내리는 삿포로 시내를 걸었다. 넘어질까봐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걸음마를 막 떼기 시작한 아이처럼 조심조심 발을 내디뎠다.
어느 가게에나 자리는 만석이었고, 가게 앞에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추위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사람들은 모두 즐거워 보였다.
그다지 멀리 떠나오지도 않았는데, 눈이 내리고 있다는 걸 제외하곤 거리 풍경이나 사람들의 모습도 거의 같은데 내가 떠나온 곳과 이곳은 전혀 다른 세계인 것 만 같았다.
그곳의 나와 지금 여기에 있는 내가 같으면서도 다르듯이 말이다. 그렇게 묘한 설렘을 느끼며 홋카이도 징기스칸을 파는 다루마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양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 보다 싫어한다는 것에 더 가깝다.
대학교 때 몽골 자원봉사에 갔을 때 먹었던 ‘허르헉’이라는 양고기 요리가 내 인생 첫 양고기였는데 양고기 특유의 냄새 때문에 거의 먹지 못했다. 그 후에도 몇 번 양고기를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냄새가 아무리 안 나는 집이라고 해도 미약하게나마 풍기는 양고기 냄새 때문에 나는 먹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리 양념을 많이 해도 달러 지폐에서 나는 냄새 같은 양고기 특유의 냄새가 남아 있었다.
여러 번 경험을 통해 내가 양고기를 싫어한다는 걸 알면서도 첫날 식사를 징기스칸으로 고른 이유는 뭐 그런 거였다. 그래도 여행을 왔으면 그곳의 대표 메뉴는 먹어봐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과 여행지의 사전 정보가 거의 0에 가까운 상태였기에 가이드북의 추천을 따르는 게 실패할 확률이 낮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이드북에서 정말 냄새가 하나도 안 난다는 글을 보고도 사실 크게 신뢰하진 않았다.
몇 년 전 겨울 여행에서 혼자 식당을 들어가기 뻘쭘해 마치 성냥팔이 소녀처럼 창문 너머로 화기애애해 보이는 식당을 바라보며 빈속으로 터덜터덜 숙소에 들어갔던 게 기억이 난다. 분위기 좋은 식당에서 나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술 한잔하고 싶었는데 모두 일행이 있고 왁자지껄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 그 분위기에 끼어들 용기가 그땐 차마 나지 않았었다.
그 나라에 비하면 일본은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잘 갖춰져 있고 혼밥 문화가 있는 나라라 다행이었다. 그리고 그때에 비하면 나도 좀 뻔뻔해졌을지도 모른다.
다루마에 도착하니 가게 밖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미 걸어오면서 모든 가게가 이런 상태인 걸 봐서 그런지 다른 곳을 찾아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딜 가도 기본 1시간 이상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사람들 뒤에 줄을 섰다.
나는 오랜만에 정말 아무 생각하지 않고 내리는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드디어 가게 안으로 들어갔을 때 시계를 보니 줄을 선지 한 시간 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지났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가게 안이 따뜻해서 얼었던 몸이 서서히 녹아들어 갔다.
가게 안은 중앙에 오픈 형 주방이 있었고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테이블이 둥그렇게 놓여 있어 1~2인 손님들이 일행인 듯 모여 앉아 식사하고 있었다. 그리고 가게 뒤편에 단체석이 따로 있어 회식을 하는 듯한 단체손님들의 흥겨운 소리가 들려왔다.
테이블석은 자리가 금방 나서 바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나는 마치 뒤늦게 온 일행처럼 이미 앉아있는 사람들 옆에 앉아 징기스칸과 삿포로 클래식 생맥주를 주문했다.
맥주가 먼저 나와 맥주를 마셨는데 세상에…
차가운 벨벳의 질감처럼 맥주 거품이 스르륵 하고 거슬리는 거 하나 없이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이었다! 이거 뭐지? 싶게 정말 부드럽고 밸런스가 아주 잘 맞는 맥주였다.
이후 나온 징기스칸이 다 익기도 전에 맥주가 동이 나 바로 맥주 한잔을 더 시켰다. 짧지 않은 내 인생에서 먹은 맥주 중 정말 가장 맛있고 인상적인 맥주였다.
징기스칸은 거의 생 양고기를 전용화로에 양파와 함께 구워 먹는 요리였다. 가이드북에 설명되어 있던 것처럼 아예 냄새가 하나도 안 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거의 안 나는 편이었고, 같이 나오는 양파나 양념장과 함께 먹으면 냄새는 신경 쓰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사실 맥주가 너무 맛있어서 함께 먹는 요리가 뭐든 상관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