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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Nov 03. 2021

[단편] 받지않는 연락처 - 1

'술 마실래?'


저녁 8:20분. 급한 과제도 약속도 없어 영화나 한 편 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문자메시지가 왔다.

요즘 세상에 문자메시지라니.

2달 전만 해도 휴대폰의 문자 메시지 앱은 택배 아저씨의 배송 완료 문자를 확인하는 용도로만 썼다. 이제는 가끔 혹시 놓친 문자가 없는지 아침, 저녁 하루 2번은 체크한다.


'오늘은 어디죠?'


짧고, 건조하게 답장한다.

아직 학교에 가려 해뒀던 화장을 씻어내지 않아 다행이다. 집에 있을 때 수정 화장은 별일 아니지만, 저녁에 메이크업 베이스부터 얼굴에 바르며 파운데이션을 올리는 건 상당히 수고스럽다. 무엇보다 이 저녁에 깨끗이 화장된 얼굴을 보이는 건 상대에게 예뻐 보이고자 치장한 인상을 남기는 것 같아 괜히 자존심이 상한다.


'아파트 정문 호프집. 올 거면 빨리 와'


이 동네는 정말 갈 곳이 없다. 사람들은 이곳을 'OO 신도시'라고 부른다. 마치 이곳이 도시가 아닌 건 알지만 곧 화려한 도시가 될 곳이라고 말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완성된 건물들은 누가봐도 신축이지만 대부분 아직 임대문의라는 현수막이 걸려있고 그중 일찍이 입점한 상가는 일찍이 이곳에 들어와 사는 가구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가게 하나 새로 열렸다 소식이 들려 가보면 옆집, 옆동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20년도에 개업한 치킨 자영업자만 17만이 넘었다는 데 그중 한 명도 아직 이곳 아파트 앞으로 들어오진 못했다. 프랜차이즈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집 앞에는 촌스러운 파란 간판 호프집 하나만 덩그러니 있다. 애매하게 호프집이라 말해도 헷갈릴 일이 없다.


'거기면 금방이죠'


문자메시지야 오자마자 확인했지만, 답장은 2분 정도 뒤에 보낸다. 굳이 기다렸단 듯이 답장하고 싶지 않다는 계산에서는 아니다. 정말 고민하는 중이었다. 나갈까 말까. 나가게 되면 그 뒤 상황들은 대충 짐작된다. 디테일한 과정이야 아직 모르지만 아마 섹스를 하고 집에 돌아올 것이다.

내일 수업 시간표를 되짚어 봤다. 첫 수업은 3교시. 집에서 학교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 대충 9시가 좀 넘어서면 집을 나서야 한다. 그럼 8시에는 일어나야 하고. 술을 과하게 마시지만 않으면 크게 무리 없는 시간이다. 여기까지 계산하고 나니 2분이 지나있었다.


답장을 보내고 빠르게 샤워한다. 물줄기가 얼굴은 닿지 않게 샤워기를 쥐고 몸을 씻는다. 잠깐 따뜻한 물을 맞고 있으니 나가는 게 새삼 귀찮아진다. 하지만 최대한 향이 강한 바디워시를 골라 몸을 구석구석 씻는다. 그래봤자 물기를 닦아내면 거의 사라지겠지만 혹시나 해 바디워시를 고를 땐 향에 집중한다.


"어디 가?"


화장실을 나오니 같이 사는 사촌이 묻는다. 동갑인 이종사촌은 친척이지만 친구 같다. 나는 대학생이 되면서 독립하게 되었다. 내심 걱정이 많던 엄마는 마침 재수를 위해 서울에 학원을 알아본다던 사촌의 얘기를 듣자마자 이모에게 두 여고 졸업생을 같이 살게 하자 제안했다. 이모 입장에서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두 분은 그래도 여자애들 사는 곳이니 집도 깨끗하고 치안이 괜찮은 곳으로 방을 구해주려 하셨다. 그렇게 집의 컨디션이 중요해질수록 우리의 보금자리는 서울에서 점점 외곽으로 벗어나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학교가는 길에 1시간 30분이 걸리지만 대학생이 이정도 집을 지원해주신 것에 감사함과 죄송함을 겸하며 아무말 없이 살게 되었다. 물론 밤에 이 정도로 조용하고 어두운 동네가 치안이 좋다 해야할지 안좋다고 해야할지는 확신이 안섰다.


"어, 잠깐 나갔다 올게. 기다리지 말고 자"

"요새 밤에 갑자기 자주 나가네~ 솔직히 말해. 남친 생겼지?"

"뭐래. 생겼으면 남친 보고 온다 말하지 너한테 뭘 숨기기까지 하겠냐?"

"굳이 있다고 티 안 내는 걸 수도 있지? 그럼 누구 만나는데"

"그냥 친구"

"여자야, 남자야 그것만 말해"

"남자. 아, 나 지금 나가야 돼"

"알았어, 알았어. 대충 알겠다 나가봐"

"먼저 자"

"응"


알긴 뭘 안다는 건지. 대충 안다는 건 어디까지 안다는 건지. 사촌은 눈을 잠깐 게슴츠레 뜨고 날 흘겨보다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관심과 거리를 둘 줄 아는 아이라 좋다. 친한 친구끼리도 같이 살다 보면 싸운다는 데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별로 싸울 일 없을 것 같은 친구다.


답장한 지 15분이 흘러서야 집 현관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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