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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Feb 10. 2022

[단편] 얕은 철학자 - 2

오늘도 살았다

'꼭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죽고 사는 거로 사랑을 증명할 필욘 없다고 생각해'

'에이, 그건 예가 극단적이다. 4대 비극이라고'

'음, 4대 비극에 로미오와 줄리엣은 포함 안 되어 있지?'

'그래? 난 주인공 둘 다 죽어서 그런 줄 알았어'

'비극은 그보다 더한 건가 보지'

'에리카 종은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걸만 하댔어'

'우리는 염색체 운반체일 뿐이지'

'오빠!'


'오빠, 가만있을 때 무슨 생각해?'

'난 뭐 하다 죽으려나'

'죽음을 생각하기에는 좀 이르지 않나?'

'어제오늘 살아있다는 게 내일도 살아있을 거란 증거는 아니니까'

'태어난 데 이유가 없듯, 내가 한 시간 뒤 죽는 대도 이유가 필요 없지'

'그런 생각을 계속한다고?'

'아니, 그럼 우울해 살겠어?'

'그러니까 말이야'

'우울해?'

'그보단 무서운가 봐'

'안아줄까?'

'응'


'내가 죽으면 어떨 거 같애?'

여자는 살짝 놀랐다. 남자의 질문이 반가우면서 그 내용이 달갑진 않았다.

가슴팍 귀퉁이가 아리다.

추상적인 아픔이 아니라 누가 한번도 건드린적 없는 갈비뼈 사이에 손가락을 집어넣은 것 마냥 아파서 순간 옆구리를 흠칫했다.


'많이 슬프겠지. 한동안 아무것도 못 할 거 같아'

'살 이유를 더 만들자'

'응'

'뭐가 좋으려나'

'저녁에 맛있는 거 먹을까?'

'메뉴는 오빠가 골라봐'

'그럼 오늘은 따뜻한 국물 있는 거 먹을까?'

'응'


여자는 네이버 블로그를 켜고 전골 요리를 검색했다

망고플레이트, 블루리본 앱를 열고 필터에서 한식 양식 일식을 선택하고 키워드로 전골을 검색했다.

오늘 죽지 않아 다행이다 싶을 만큼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싶었다.


남자가 갑자기 휴대폰 액정을 가렸다

'사랑해'

여자는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떨구었다.

여자의 살 이유가 하나 줄어든다.

'나도 사랑해'


전골이란 애매한 메뉴에서 복지리로 저녁메뉴가 정해졌다.

날이 정말 추웠다.

걷기도 버스 타기도 애매한 거리에 있던 시청역 인근 복요리집, 지하에 위치한 가게가 최종 목적지였다.

아직 이른 평일 저녁에 찾은 복집은 손님도 없었다.

맛없는 집인가 약간 걱정스러웠지만 괜한 우려였다.

오히려 주인분이 서비스도 많이 주셔서 꽤 큰 지출이었던 저녁이 아깝지 않았다.


‘날 풀리면 바다보러 갈까?’

남자는 가고 싶은 곳이 생겼다.


‘좋지’

‘그래’


그날 남자와 여자는 말없이 약속했다.

옆 사람이 쓸쓸해 하면 그날은 그 사람이 먹고 싶은 음식을 먹자.

둘 다 그런 날이면 새로운 우리만의 룰을 만들자.

그때까지 서로의 삶을 다독여주자.


행복은 확신이다.


오늘 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와의 저녁 악속.

다음 여름에 비릿하고도 눈부신 바다를 볼 거라는 설렘.

따뜻한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평소보다 높은 기온의 겨울 햇살.

카페에서 들린 노래가 맘에 들어 부리나케 뮤직앱을 키고, 노래가 끝나기 전 곡명을 알아 냈을 때의 안도감.


이런 피부로 와닿는 벅찬 감정이 오늘의 행복을 말한다.


하나뿐인 눈물겨운 삶에 행복은 진통제다.

그러므로 우린 조금 더 내 삶에 대한 확신을 키울 필요가 있다.

나를 둘러싼 작은 일상을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섬세함을 품어야 한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고

해가 비추고

구름이 끼는


그날의 기억들이

당신에게 추억이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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