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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트 May 05. 2022

[단편] 우리만의 어린이날

나갈 필요 없어

퉁퉁퉁. 거실에 있던 B가 침실로 향한다.

잠귀가 밝은 A는 잠에서 깨 정신이 들었지만 눈을 감은 채 B의 발소리를 듣고 있었다.


가끔 윗집에서 들리는 발 망치 소리에 A는 B에게도 집에서 너무 터덜터덜 걷지 말라 했다.

그러면 B는'그랬나? 살살 걷는다고 걸었는데' 라며 나지막이 대답했고,

A는 B의 그런 모습이 귀여워 살짝 곤두섰던 신경까지 누그러들었다.

어차피 이곳은 B의 집이었기에 A도 이 이상은 잔소리다 싶어 그만 말했다.


'언제까지 자려고'


B는 약간 심술이 났다.

A와 B는 생체리듬이 너무나 달랐다.


야행성인 A는 새벽 3시고 4시고까지 눈을 뜨고 있는 게 어렵지 않았고 아침에 아무리 햇살이 내리찔러도 오전 10시는 지나야 눈을 뜰 기력이 생겼다.

길고양이의 발걸음마저 조심스러운 무겁고 서늘한 밤공기는 A를 숨 쉬게 하는 낙이었다.


주행성인 B는 밤 10시 30분만 되면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눈꺼풀 주위 근육이 콕콕 찌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눈꺼풀이 가벼워 자연스레 눈을 뜨면 언제나 오전 7시였고 막 가신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를 바라보며 눈을 뜨면 그렇게 마음이 상쾌할 수 없었다.


이 둘이 아침을 보내는 날이면 약 3시간 30분간 A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 순간이 마냥 싫지는 않았다. 게이밍에 최적화된 120만 원짜리 굴곡진 와이드 모니터 앞에 앉아, 지난밤 일어난 사건 사고들을 여러 탭에 띄워놓고 읽으며 시작하는 하루가 A의 루틴이 되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B가 팅팅 부은 눈을 온전히 뜨지도 못한 채 의자를 끌어 A옆으로 다가와 무엇을 보느냐 물었다.

A는 문제지를 들고 온 학생을 맞이하는 선생님처럼 상냥하고 낮은 목소리로 기사들을 요약해줬고 B는 그 말을 들으며 잠을 깨웠다.


평소면 B가 충분히 자도록 기다렸겠지만 오늘은 일찍부터 움직이겠노라 다짐했기에 B를 흔들어 깨웠다.

오늘은 어린이날이었다.

둘 모두 직장인이 되고 처음으로 맞이한 공휴일이었기에 며칠 전부터 이 날은 우리도 하루 종일 놀아보자며 벼르고 있었다.


하지만 휴일이 너무 설렜던 탓일까. 평소보다 더 늦게 잠든 A는 점심시간이 다 되도록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B는 자신을 흔드는 A의 팔을 끌어당겨 안아버렸다.


'조금만 더 자자...'


본인보다 20cm나 키가 작은 A에게 엉거주춤 안겨버린 B는 몸을 홱 들어 올려 A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오늘 일찍 일어나서 서울숲 갔다가 맛있는 거 먹기로 했으면서'

'지금 몇 시야?'

'11시 넘었어, 이제'

'아...'


B는 본인이 말을 할수록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A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을 깨닫고 눈꺼풀을 번쩍 들어 올렸다.

눈앞의 B는 진작에 샤워도 마치고 옷만 갈아입으면 바로 외출을 할 수 있는 상태였고 얼굴엔 서운함이 묻어 있었다.


'일어날게'


하지만 B는 이미 흥이 한풀 꺾여 있었다.

어제 분명 너무 늦게 자지 말라고 했는데, 며칠 전부터 오늘은 어떻게 놀자 계획했는데.

해가 떨어지면서부터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B입장에서는 이미 반나절이 흘러버렸고 이런 패턴을 모를 리 없는 A가 아무렇지 않게 뻗어 자고 있는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았다.


등을 돌리고 침대에 걸터앉는 B의 등을 A가 와락 안았다. B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생각도 있고 아직 졸음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 기댈 어딘가가 필요하기도 했다.


'서울숲은 가지 말자. 이 시간에 가면 사람 너무 많아서 가도 편하게 걷긴 글렀어'


B의 목소리가 완전히 가라앉아버렸다. A안의 비상등이 켜졌다.


'그럼 점심 맛있는 거 먹고 서울숲은 초저녁 애매하게 가보자. 그땐 애들 데려온 사람도 별로 없겠지'


B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어쩐지 마음은 안 풀렸다.

서울숲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다.

그보단 둘의 계획에 진중하지 못한 A의 태도가 B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이토록 다른 생활패턴을 가진 둘이 오래 만날 수 있는 이유는 서로의 Pain Point를 기가 막히게 캐치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너만 있으면 서울숲을 가도 좋고, 앞에 공원을 걸어도 좋고, 그냥 집에 있어도 좋으니까'


A에게서 여전히 등을 돌린 B였지만 얼굴에 살짝 피식하는 미소가 지나갔다.


'너무 늦게 일어나서 미안해. 아 진짜, 오늘 놀 생각에 어제 잠이 안 오더라고.

다음에 우리 노는 날엔 내가 알람 맞춰서라도 일어날게'


이제 B는 고개만 돌려 A를 바라봤다.


'너무 늦게 자지 말라니깐...'


A는 다시 한번 B를 본인의 위로 끌어당겼다.


'아, 난 안 씻었는데'


A는 B를 살짝 밀어낸다.


'괜찮아'


B는 A의 살짝 눌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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