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요일 Jun 30. 2016

기록의 현대식 접근, 라이카 Q

하 - 가벼움이 바꾸는 여행 그리고 시선

하나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LEICA Q Typ 116 | 28mm | F5.6 | 1/1000 | ISO 100

앞서 꼽은 이 카메라의 몇몇 요소들이 이 카메라 자체에 대한 것이라면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이 카메라와 함께한 저의 시선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을 모든 것 위에 있는 라이카 Q의 가장 큰 가치로 꼽습니다. 당연하게도 이 카메라가 제게 아무런 변화도 주지 못했다면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어쩌면 돌아오자마자 다시 그리웠던 M을 손에 쥐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행히 이 무모한 선택을 통해 저는 적지 않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 이전 편 보기

https://brunch.co.kr/@mistyfriday/106



잃은 무게 그리고 얻은 여유 400g

출처 : http://richardcaplan.weebly.com/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단연 400g의 여유입니다. 라이카 M과 35mm SUMMICRON 렌즈는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뢰감을 줬지만 1kg에 육박하는 무게가 종종걸음에 힘을 잃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카메라의 2400만 화소 이미지를 포기하지 못한 제가 유일무이한 보기 라이카 Q를 발견한 것은 어쩌면 예견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꼭 그 무게만큼 진해진 여행

LEICA Q Typ 116 | 28mm | F4.0 | 1/640 | ISO 100

놀랍게도 Q가 덜어준 400g의 무게만큼 사진에서 여행 그 자체로 추가 기울었습니다. 600g이 넘는 이 카메라는 여전히 많은 분들에게 크고 무거운 카메라이지만, 제게는 종종 어깨에 매단 존재를 잊을 듯 가볍게 느껴졌습니다. 그것이 사진을 위한 여행에서 순간을 위한 사진으로 시선을 변화시켰고, 떠나왔을 때만 분비되는 알 수 없는 호르몬의 지속시간도 더 늦춰주었습니다.


평소 무척 힘차게 여행하는 사람이라 생각하던 제게 라이카 Q는 마지막 한 발을 더 박차고 내딛을 힘을 더했습니다. 이전엔 모자라지 않다 생각하던 것이었습니다. 생 수 한 병보다 작은 400g의 여유지만 낯선 도시에서 그것이 종종 스치는 것에서 파고드는 것으로 제 여행을 갈라놓았으니 딱딱한 로퍼에서 스니커즈로 갈아 신은 직후의 가벼움 못지않은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꼭 같다고 볼 수는 없어도 걸음의 가벼움은 여행 그리고 시선의 가벼움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들뜬 감정들이 종종 장면 속에 녹아들기도 합니다. 눈을 가리던 기기가 작아지며 프레임 속 대상과 더욱 친밀해지는 느꼈고 그렇게 낯선 도시서 이전에 없던 것들을 만끽했습니다. 라이카 Q를 통해 알게 된 '가벼움'이란 단어는 오늘도 사진 속에서 새로운 글자들을 찾을 정도로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보다 빠른 걸음, 적극적인 시선

LEICA Q Typ 116 | 28mm | F2.0 | 1/800 | ISO 100

크고 무거운 DSLR 카메라가 여행의 즐거움을 짓누른다며, 일상의 기록에 쉬 빈틈을 만든다며 선택한 라이카 M이었습니다. 한동안 그것은 더없이 가벼웠지만 이내 이전보다 더 짓누르는 무엇을 느꼈습니다. 욕심 때문이기도, 그간 제 시선이 더 앞서 나아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조금 더 가벼운 것을 찾다 라이카 Q에 닿게 되었습니다.


이 카메라의 작은 크기와 가벼운 무게, 그리고 빠른 자동 초점은 거리에서 값지기 튀어나오는 공교로운 장면들에 종종 저보다 빠르게 다가갔습니다. 그렇게 기록한 장면들엔 지난 제 것들엔 킁킁대며 맡아야 했던 이런저런 향이 조금 더 진해진 것을 느낍니다. 더 낫다고는 할 수 없어도 분명 새로운 것입니다.


특유의 정숙함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철컥하는 셔터 소리가 들릴 듯 말 듯 작아지니 담을 수 있는 장면이 눈에 띄게 늘었고 프레임 밖에서 완벽한 타인이 되어 조금의 개입 없이 장면을 그대로 담을 수 있었습니다. 종종 무대에 비친 제 그림자를 발견하고 무척 아쉬워했던 지난 여행들과 비교하니 마음의 짐을 한 덩이 내려놓은 것 같습니다.


가벼움이 빠른 걸음으로 이어지고 조용함은 적극적인 시선이 되었습니다. 제가 담은 것들도 전보다 조금 더 파릇파릇해진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떠올리면 이 선택은 안위와 호기심을 위한 것이었는데 그것으로 얻은 것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래서, 28mm의 선택은 옳았는가

LEICA Q Typ 116 | 28mm | F2.0 | 1/4000 | ISO 100

이것에 대해선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라이카 M과 SUMMICRON 35mm F2 ASPH 렌즈. 그렇게 꽤 오랜 기간 35mm 렌즈 하나로 모든 여행을 담았던 제게 28mm는 그동안 이만큼이나마 익힌 것들을 포기해야 한다는 선고 같아 내심 걱정이 됐거든요. 떠나기 직전까지 계속된 고민 탓에 이 카메라와 가까워지기도 전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그동안 써 놓은 이야기를 덮고 새로 백지를 받아 든 듯 낯설었던 순간을 기억합니다.


실제 이 렌즈는 많은 약점이 있었습니다. 다양한 여행의 감동을 단 하나의 시선만으로 담아야 한다는 원초적인 한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카메라의 가벼움에 비해 렌즈가 그리 작지 못했고 28mm 광각 렌즈 특유의 주변부 왜곡도 미세하게나마 눈에 띄었습니다. 35mm 렌즈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사실 여행을 마칠 때까지 마음에 걸렸습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라이카 Q의 28mm는 생각보다 만족스러운 '새 펜'이 되어줬습니다. 35mm보다 가는 촉은 무엇을 그려도 힘이 없어 보였지만 갈수록 그 섬세한 터치와 특유의 세련미가 주는 감흥에 빠졌습니다. 그동안 사용하던 35mm SUMMICRON 렌즈가 진하고 투박하게 그려내는 콩테 같았다면 새로운 28mm SUMMILUX는 이제 막 깎은 뾰족한 연필처럼 섬세합니다. 그리고 넓어진 캔버스만큼 해야 할 일도, 생각해야 할 것도 많아졌습니다.


때문에 파인더 모서리까지 훑어가며 조금 더 신중하게 장면을 재단하는, 전에 없던 아슬아슬함이 생겼지만 그것이 자칫 자동초점이 앗아갈 뻔한 신중함을 붙잡아 줬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단순히 35mm에서 28mm로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SUMMICRON과 다른 SUMMILUX의 언어를 익히는 즐거움을 알게 된 것, 덕분에 28mm에 대한 선택은 ‘실패’에서 '일단 보류’로 그 평가를 미뤄놓을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썩 괜찮은 1500만 화소 카메라    

35mm 텔레컨버터 활용 이미지

28mm 렌즈에 대한 제 우려를 덜어준 요소 중 하나로 이 카메라의 디지털 텔레컨버터 기능을 꼽습니다. 몇 년간 '35mm 렌즈가 곧 내 눈’이라며 제 시선을 규정지은 저는 이 기능 덕에 광각 렌즈에 대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고 이 작지 않은 모험을 결정하게 됐습니다. 



라이카 Q의 텔레컨버터 기능

라이카 Q는 디지털 텔레컨버터 기능을 통해 35mm와 50mm 촬영을 지원합니다. 엄지손가락을 뻗어 닿는 위치에 작은 버튼으로 28/35/50mm를 전환하게 되며 화면과 뷰파인더에 가이드라인이 표시됩니다. 하지만 실제 줌이 되는 것은 아니고 해당 초점거리에 맞게 28mm 원본 이미지를 ‘잘라내는’ 방식입니다. 때문에 35mm는 약 1500만 화소, 50mm는 약 800만 화소로 이미지 크기가 작아집니다.


28 mm 이미지(위) 35 / 50mm 디지털 텔레컨버터 활용 이미지(아래) 

화소가 줄어들고 심도 표현에서 손해를 보지만 해상력과 발색 등 기본적인 화질에는 손실이 없기 때문에 라이카 Q 하나를 2400만 화소의 28mm 카메라, 1500만 화소의 35mm 카메라, 800만 화소의 50mm 카메라로 활용할 수 있는 것이 디지털 텔레컨버터 기능의 장점입니다. 물론 실제 렌즈를 교환한 것에 비할 수 없지만 끝까지 28mm 렌즈가 마음에 걸렸던 제게는 작게나마 위안이 되었습니다. ’ 정 안되면 1500만 화소 35mm 카메라로 사용하면 되지 뭐’라면서요. 재미있는 것은 정작 이 카메라를 사용한 후로는 28mm의 매력에 빠져 이 기능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디지털 텔레컨버터 촬영 영역 표시

디지털 텔레컨버터를 사용하며 특별히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은 이미지 보정을 위해 라이트룸으로 불러왔을 때에도 설정에 따라  35/50mm 촬영 영역으로 표시된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제법 세 개의 렌즈를 활용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크기 조정을 선택하면 숨겨졌던 주변부를 다시 끌어넣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 완성도 높은 기능을 활용하기 위해선 무압축 RAW 촬영이 필수입니다.    



단 한 장면으로 증명된 자동초점의 가치

LEICA Q Typ 116 | 28mm | F2.0 | 1/640 | ISO 100

한 손만으로도 촬영이 가능한, 자동초점 카메라는 근본적인 것을 바꿨습니다. 셔터를 누르기까지의 시간이 짧아졌고, 그만큼 잦아졌습니다. 초점 링을 돌리던 왼손은 제법 맘에 든 취미를 잃었고 셔터나 간간히 누르던 오른손이 이래저래 바빠졌습니다. 하지만 역시 카메라가 빠르게 초점을 맞춰 준다는 것은 너무나도 편한 일입니다. 최신 디지털카메라에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한동안 잊고 지낸 것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자동'이 수동보다 편하다는 것을 반박하는 데에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라이카 Q처럼 빠르고 정확하다면 수동 초점은 믹서기를 옆에 두고 강판에 토마토를 가는 것처럼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오랜만에 정말 편하게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때보다 가벼운 셔터를 날렸습니다.


고집인지 미련인지 몰라도 아직 저는 라이카 Q의 자동 초점이 M의 수동 초점보다 더 좋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행 중 기계보다 나를 신뢰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 찾아오는데다 잘 만들어진 기계의 아름다움 역시 과거로 보내기엔 아직 너무 아쉽습니다. 하지만 여행을 돌아보니 분명 라이카 Q가 아니었으면 이토록 깊지 못했을 몇몇 장면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몇몇 분들에게 라이카 Q는 결정적 한 장면으로 자동 초점의 가치를 입증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이 자동 초점 덕분 혹 때문에 촬영이란 것이 갑자기 너무 편하고 쉬워지며 자칫 제 여행과 걸음, 나아가 시선까지 가벼워질까 경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저 이 역시 적절한 시험지가 될 것이라 믿으며 다음 여행을 기대하고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치명적인 단점, 이 카메라는 포토그래퍼의 가치를 대변할 수 있을까?     

이 카메라는 M을 사용하며 제가 느낀 구석구석의 가려움을 꼼꼼히 긁어줬습니다. 하지만 이 카메라를 처음 쥐며 든 불안함이 현실이 된 것은 몹시 슬픈 일입니다. 라이카 M에서 느꼈던 무게 이상의 묵직함, 단단함을 초월한 강직함을 애초에 Q에서 기대하지 않았지만 사용할수록 이 카메라는 '소모품' 혹은 '연장'의 인상이 강했습니다. 매끈하고 멋진 이미지를 편하게 얻을 수 있지만 그 유효기간이 새로운 Q에 맞춰져 있는, 잘 만들어진 요즘 사진기라고 할까요? M이 불편함과 부족한 성능에도 쉬 '세월'을 약속하게 된 것을 떠올리면 이것은 보이지 않지만 큰 차이입니다.

지난 여행 중 땅에 떨어진 이 카메라의 셔터 버튼을 주우며 걷잡을 수 없는 그리움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분명 M을 향한 것이었고 편리함이 반드시 불편함 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이 카메라는 확실히 좋은 카메라이지만, 아쉽게도 잘 만든 카메라는 아닙니다.



새로 놓인 전통, 내가 적는 본질

확실한 것은 이 딱지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카메라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이것을 새로운 시대의 전통으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만 이 카메라는 적지 않은 단점에도 언젠가 쟁쟁한 라이카의 역사에서 분명히 작게나마 언급되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1954년의 M3에 출발점을 두고 조금씩 변화를 꾀하고 있는 라이카 M과 달리 라이카 Q는 지금 우리가 있는 시대에서 이제는 낡아버린 전통, 먼지 앉은 가치들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고집을 비우고 ‘본질’이라는 것을 처음부터 다시 쌓아 올린 이 카메라는 이전의 것들과 공통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낯설지만 함께한 여행 속 결과물만큼은 걸음과 시선이라는 제목 아래 영락없이 제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종이와 펜이지만 변함없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사실 제가 이 카메라를 이토록 좋아하게 될 줄은 불과 두 달 전까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때쯤 분명히 제가 했어야 할 선택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떠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여행의 묘미와 통하는 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분모가 마음에 들어 앞으로 당분간은 이 카메라와 함께 여행을 하려 합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이 새로 쓰인 본질에 대해, 보다 확신에 차 이야기할 수 있을 때까지.




fin,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 보면 좋은 이야기


나를 만든 카메라, 라이카 M (LEICA M) https://brunch.co.kr/@mistyfriday/96
나를 길들인 카메라, 라이카 M (LEICA M) https://brunch.co.kr/@mistyfriday/97


매거진의 이전글 본질의 현대식 이름, 라이카 Q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