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물방울이 돌을 뚫다.

by writer pen name

시간이 지난 만큼 편해졌을까?

하는 물음에 답을 하자면 나는 '아니오'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라온 나의 감정을 온전히 이야기하지 못하고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흘러넘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으니.


멀리서 나 자신을 보니 머릿속도 선명해졌다.

불안함도 조금 줄어든 느낌이다.

알 수 없었던 것들이 결과를 볼 때 확실해지지는 않았지만

내가 느꼈던 불안함이 사실은 내 감정을 내가 온전히 소유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내 마음을 내가 몰라주니까, 남도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 슬픈지, 속상한지, 행복한지에 대한 느낌을 흘려보내느라

정작 중요한 나 자신도 거기에 같이 보내고 있었다는 것.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아이들이고, 남편이고 생활이었는데, 사실 그건 내가 없어서는 보장할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2주 만에 간 정신과 진료실.

잠이 얼마나 자주 깊이 들었는지 정신을 못 차렸는데,

각성도가 높아서 주신 약 때문이라는 걸 그때서야 알았다.

미리 알려줬다면 좋았을 것을...

내가 너무 게을러져서 나도 한껏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으니까.

무쓸모의 내 상태는 항상 나의 자존감을 깎아 먹는 요인이므로 좋아졌다고 보기 힘들었다.

선생님이 다행히도 알아차리고 다시 약을 바꿔주셨다.

상담도 그렇지만, 감정과 심리에 대한 책을 읽고 나니 훨씬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리고 스스로 반성도 되는 시간이었다.


그럼 그동안 아이들은 좋아졌나.

그렇지 않다.

큰 아이는 여전히 독불장군식으로 핸드폰을 할 시간을 더 달라며 시위를 했고,

작은 아이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둘 다 학원을 성실히 다니는 타입은 아니었는데

자유로운 성격들의 아이들이다 보니 하고 싶은 대로 먼저 하는 게 문제였다.

일단 그 시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첫 아이에겐 니 행동일 싫은 거지 네가 싫은 건 아니라고 이야기했고,

조절이 안 되는 건 조절해야 하는 거라고 이야기해줬다.

둘째는 결국 수학학원에서 불성실하다며 퇴원을 당했는데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 어제 아빠랑 대화를 나눴다.

아이가 힘들었던 부분을 말로서 이야기하면서 어떤 기분이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다시금 물어보면 "모른다"라고만 단답형으로 대답해줬다.

그래서 조용히 아이에게 니 감정에 대해서 설명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편해진다고 이야기를 해줬다.

지금은 그런 감정이 생길 수 있는 시기이니, 조금 더 맞는 학원에 가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면 될 거라고 생각한다.

불안감이 어디서 오는지 자신도 알아야 대처를 할 수 있으니까.



아이에게 맞는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고 지금 이 순간 고민하고 있다는 데에 큰 발전이 있다.

귀찮고, 어렵고, 대하기 힘든 상대인 나의 아이들에게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남편에게 조금 더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니 남편을 아끼고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가족 중에서 제일 친한 사람이 남편이니까.

남편을 이해하는 게 나를 이해하는 것이고

그동안 보내지 못한 시간이라는 걸 가족에게 조금 더 쏟아보기로 했다.



시작점에 다시 선 마라토너처럼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 같은 사실을 잊지 말아야지.

돌덩이 같은 내 마음에 작은 구멍을 내주면 아이들의 마음이 내 가슴에 쏟아지는 시간이 되겠지.

병원에 갔었을 때의 단 하나의 바람은 내가 편해지는 것이었으니까, 내 맘을 편하게 만들자.

불안과 고독에서 조금 더 나아가는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를 다그치는 밴드며, 카톡도 조금 줄이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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