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눈을 감고 잠을 잔다.
잠을 자는데 얼굴의 한 부분에서 뭔가 꿈틀 된다.
이게 뭘까 싶어 잡아 뜯어 내는 나를 본다.
한 마리의 애벌레 같은 것이 팝업북에서 나온 그림처럼 튀어나오더니, 다른 하나의 벌레가 다시금 같은 구멍에서 나온다. 놀라지도 않는 나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하필 두 마리다.
며칠 전에 꿈을 꿨다.
그 날부터 두통이 오고, 가슴이 답답해 오더라, 예지몽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선명한 꿈속에서의 내 행동이 생각이 난다. 약을 쓰려고 해도 쉽사리 낫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엔 식사를 못하고 감기가 오더니 몸살이 왔다. 병원에 가서야 이건 감기가 아니며, 위장 장애로 인해서 몸살처럼 오는 거라고 하더라. 그게 12월 말쯤이었다.
아마 몸이 이제 늙는 것을 기억하는 걸까.
먹는 것도 작작해라 라고 위장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일까.
그즈음 일품 진로에 토닉워터와 레몬을 섞은 술을 매일 마시다시피 한 거 같다. 이렇게 생각을 지우려고 소비했던 술이 나에게 다시 부메랑처럼 위장장애로 돌아왔다.
술이 좋은 이유는 망각이다. 금세 생각의 편린들을 저 아래 심연으로 당겨버리곤 한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이 마저도 속수무책이다. 다시 리로드 되는 광경을 욕실 거울에서 확인하게 되니까.
병원에서
12월 중순에 있었던 가족들과 함께 정신과 병원 진료를 갔었다.
시작은 초 가을이었는데 금방 겨울이 되고, 한겨울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 집은 평안이 찾아왔을까
아이는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동안에도 아이는 말도 없이 학교에 가지도 않았던 적도 있다. 친구들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한 번은 머리를 못 감아서 학교에 못 간다고 해서 가지 못했다. 내가 집에 있어서 그날은 서로 꽤 지난한 싸움을 하고 결국 그다음부터 학교에 가기 전날 머리를 감는 것으로 정리를 했다.
이상했다.
많이 이상했다
쉽게 가는 길을 아이는 꼭 둘러가고, 내려갔다 올라가는 육교를 지나서야 간다.
그 길이 멀다고 해도 듣지 않는다. 그런 말은 희망이라는 것이 잠시 있을 때에 가능한 일이다.
나의 몸과 마음은 녹초가 되고, 아 다시 시작해야지 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만큼 내려놓아졌다
사실 이 순간에도 별로 희망이란 것은 없다. 뭔가를 하고 싶을 때 생기는 것이 희망이다. 창문을 열어서 공기를 들이마시고, 산책을 하고, 빵을 굽고, 요리를 하고, 거울을 보고 내 얼굴을 보고 싶을 때 생기는 것이 희망이다
그걸 잃어버리면 다시금 찾기가 어려워진다. 그 원인이 제일 소중한 존재에게서 없어지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시작이 되어 버린다.
아이가 말없이 없어진 어느 날 내가 남편에게 말했다.
아이가 많이 이상하다고. 내가 그동안 말은 안 했지만 참 이상했노라고. 키우는 데 너무 힘들었다고. 그걸 난 내색도 없이 감당하느라 , 늦게 오는 남편 내조에 식사에 아이들 교육에 신경 쓰느라 얼굴은 점점 표정 없이 변해갔었다. 체력은 약한 대다 나에게 쓰는 돈은 드럽게 아까웠다. 아이들에겐 좋은 걸 주고 싶어도 나에게 베푸는 돈은 정말 남루했는데, 왜 나는 지금 고통스러운 것일까.
남들은 교육이다, 돈벌이며 다 해가도 아이들은 콩나물처럼 크기만 하는 것 같은데 왜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두 아이 모두 다 힘든 걸까. 내가 힘들다고 하면 누구 하나 내 편을 들어주는 이가 없어서 그건 내가 말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감당을 하려면 감당할 만큼 했어야 하는데, 이런 일들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하고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처음부터 어느 시점부터 잘못된 거라고 생각되었다. 그게 남편과 만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실 부정이 아닌 자기부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프로 아이들을 표현하다.
의사는 아이에 대한 검사를 제안했다.
온갖 검사를 여러 가지로 페이퍼와 상담으로 하루를 꼬박 지나고 나서 한참만에 갖게 된 결과지는 아이가 모두 ADHD라고 한다.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걸 아이 아빠는 알았을까.
의사는 아이들이 좋다고 한다.
괜찮은 아이들이라고 한다. 얼굴이 굉장히 굳고 사무적인 말투로 그렇게 이야기하니 정나미가 다 떨어진다. 재수 없다.
어디 머리가 나쁘지 않은 게 얼마냐는 듯이.
범사에 감사하고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시간이 있었다.
항상 누군가는 아푸고, 누군가는 대답이 없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그걸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괴로웠던지, 나는 지금도 기억력이 좋지 않고, 머리가 꽤 나쁘다. 신이 나에게 망각의 세포를 남들보다 월등히 많이 넣어준 것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이 아프다. 기억이 세세하지 않은데 힘들다.
머릿속의 생각이 도저히 안될 정도로 되어 버리면 마음의 감정선이 말라버리고, 몸과 마음이 아프게 된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부러워졌다. 때가 되면 자연히 죽을 수 있고, 자살에도 명분이 생긴다. 그럼 내가 가진 고통을 그 병에 온전히 전가하고 갈 수 있다.
우울한 사람에게 행복이란 것은.....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
인생의 대부분을 우울하게 보낸 사람은 행복이 주어졌을 때 익숙하지 않아 그 행복을 불행으로 바꾼다고 한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내놓아서 줘도 거기에 라면수프나 정크푸드를 섞어 먹는 것과 같은 것이다. 행복은 언제가 존재할 수 있지만 우울한 사람에겐 그 행복을 손에 쥐고 있는 것 자체가 불안이다. 또 그 행복은 없어질 텐데 뭐....
나에게 결혼과 아이들은 시작은 행복이었는지 모르지만 , 쓸모없는 존재 같은 느낌이 들 때마다 얼마나 불안하고, 열심히 집안일을 해왔던가. 그럼에도 난 여전히 행복하지 못했고, 그리고 지금 아이들도 행복하지 못한 것이 내 탓인 것만 같다. 의사는 그런 나를 비웃는 것 같은 결과지를 주고는 엄마 탓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우울증 약을 처방해줬다.
어느새 새해가 밝았고, 결혼기념일이었던 1월의 그 어느 날 아침에도 우울증 약을 삼키고 있었다.
나의 결혼생활에 이건 도저히 예정되어 있지 않은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