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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TCH Aug 09. 2021

창호문의 수난

이전의 집은 온전히 한옥구조였다. 그래서 집안의 대부분의 문들이 전통 문살에 창호지가 발라져 있는 그런 문이었다. 겨울에는 추웠지만 문뿐만이 아니라 벽에서도 바람이 들어왔기 때문에 딱히 창호지 문을 탓할 일은 아니었다. 언제나 웃풍이 있었기 때문에 웃풍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 삶이기도 했다.


그래도 문살이 튼튼하면 창호문도 튼튼하다. 그래서 창호지는 몇 년에 한 번 정도, 창호지의 색이 바랬을 때 보수하는 느낌으로 새로 바르곤 했는데, 조카 1,2호가 태어나면서부터 1년에 한두 번은 꼭 새로 바르게 됐다.


2호마저 스스로 몸을 놀릴 줄 아는 나이가 되자 세 살 터울의 두 사내아이들은 제 세상처럼 신나게 뛰어다녔다. 마당이며 집안이며 뛸 수 있는 모든 곳을 뛰었고, 뛰어내릴 수 있는 모든 곳에서 뛰어내렸다. 자신들의 집은 아파트라 뛰고 싶어도 뛸 수 없어서였을까. 아이들이 오면 집안 곳곳에 이불들이 쿠션처럼 깔려 있게 됐다. 그렇게 놀다가 창호문에 발을 찔러 넣었는지 어쨌는지 창호지가 찢어져 버렸나 보다. 아파트에 이런 문이 있을 리 없을 테니 아이들에게는 "문이 뚫린다"는 경험이 얼마나 재밌었을까?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여기저기 구멍을 뚫다가 주먹이나 발로 구멍을 뚫다가 급기야 그 작은 머리통을 날려 문살 사이로 자신들의 머리를 내놓고 "나 좀 봐! 나 좀 봐!" 까르륵 거리며 외쳐댔다. 다들 경악했지만, 누가 뚫은 구멍인지 창호지에 이름도 쓰고 사진도 찍어댔다. 어차피 버린 창호지, 아낌없이 놀이에 쓴 것이다. (지금 그 사진들을 보여주면 조카 1,2호는 조작이라고 발뺌한다.)


그렇게 조카 1,2호가 집안을 휩쓸고 돌아가면 아버지와 나는 창호지 바를 풀을 만들고 보수작업을 한다. 매 번 올 때마다 구멍이 뚫리고 찢길 걸 알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놓고 같이 즐길 준비를 하지만, 조카 1,2호가 오면 "오늘은 정말 정말 문 뚫으면 안 돼~"라고 신신당부를 한다. 그렇게 말해야 더 신나서 뚫을 테니까. 아이들이 그렇지 뭐. 좀 더 크면 하라고 해도 하지 않을 일이기도 하고, 다 한때다.


그렇게 몇 번의 창호지 전쟁이 지나자 예상대로 아이들은 더 이상 문을 건드리지 않았다. 창호지를 뚫는 것 보다 재밌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더 이상 문살 사이로 머리도 들어가지 않을 테고. 그 후 집은 여러 형태로 고쳐져 나가 온전한 한옥 형태는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유독 뚫어대던 그곳은 온전하게 남아 있다. 언젠가 누군가의 아이가 놀러 오면 뚫어대고 놀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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