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향주머니

by 심준일

경주진행은 다음과 같았다.

경주명은 “삼백리 달음질 경주”로 하고 강릉 도호부에서 출발하여 정선 아우라지 인근 여랑 역참에서 반환하고 다시 도호부로 돌아온다.

먹을 것과 마실 것, 짚신이나 미투리, 야간 이동시 필요한 횃불과 기름은 주로 상에 있는 구산 참, 왕산골참(삽당령 진입로), 임계 참(삽당령 마루), 여량 참에서 보급받는다.

완주 제한시간은 하루로 한다.


삼백 리는 보발의 하루 목표 거리였다. 물론 한 사람이 뛰는 거리는 아니고 발졸들 대략 열 명 정도가 교대로 뛰는 거리다. 그런데 이번엔 한 사람이 이 거리를 달리는 것이다.


출발은 어둠이 깊어져가는 자초시(子初時), 즉 저녁 11시에 시작되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온 마을 사람들이 구경을 나와 있었다. 도호부 외문 주변에는 부사와 육방, 그 아래 서리들까지 나와 있었다. 진사댁에서 보낸 머슴들은 광주리에 담은 보리 과즐을 구경꾼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출발 한참 전에 산척(사냥꾼)들을 먼저 산으로 떠나보냈다. 주자들이 달릴 길을 횃불을 들고 먼저 지나가게 하여 짐승들을 멀리 도망 보내기 위함이었고, 후에는 멀리서 불빛을 통해 방향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들은 날이 밝으면 참에서 쉬고 있다가 주자들이 돌아올 시간에 다시 투입하기로 되어 있었다. 말을 타는 기발의 지원도 예정되어 있었다. 그들은 대관령 역참 소속이었는데 출발 지점에서부터 삽당령 초입까지 선두에서 이끌어 주기로 했다.


자초시가 되자 도호부에서 삼경(三更)을 알리는 북소리를 울렸고 주자들은 일제히 출발을 하였다. 사람들은 환호를 질렀다.


강릉 도호부에서 구산 참까지는 거의 평지였다. 대관령과 제왕산에서 내려오는 큰 하천을 따라 집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첫 구간이라 출발한 지 오래도록 다섯 명의 주자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다들 기분이 들뜬 것 같았다. 길이 편한 데다가 횃불을 든 기발이 경보로 앞장서주니 어둠의 불안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둠 속에 가려진 거대한 태백 줄기가 앞을 가로막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마도 날이 밝게 되면 그 줄기의 한쪽을 넘기 시작할 것이었다.


주자들은 동시에 첫번째 보급지인 구산 참에 도착하였다. 안마당에 관솔불을 피워놓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발졸 영감과 마을 사람들은 미숫가루를 들고 있다가 주자들 한 사람씩 나누어 주었다.


형주에게는 산이가 미숫가루를 갖고 왔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형주가 미숫가루를 들이켜는 것을 바라보았다. 형주는 오래 머물 수 없어 곧바로 출발을 하려 했으나 산이가 소매를 붙잡았다. 그 순간 산이의 눈을 보았다. 평소와 달리 눈동자가 흔들려 보였다.

산이는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향주머니였다. 형주의 코 가까이 흔들어 보았다. 박하풀의 냄새가 그윽했다. 산이가 개울가에서 뜯어말린 것이었다. 산이는 향주머니를 형주의 허리춤에 묶어 주었다. 그리고 형주를 안았다.


“빨리 돌아와야 해”

“알았어”

“늦게 오면 내가 너 찾으러 갈 거야”

“알았어”

형주는 마음이 급해 건성으로 대답하였다.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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