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여진족의 화살

by 심준일

두 번째 구간은 도마천 옆길을 따라 왕산골 삽당령 초입까지 달리면 되었다. 이곳에도 듬성듬성 부락이 있어 짐승들이 쉬이 나타나지 못하였다. 여기서부터는 발이 빠른 가마꾼 만득, 그리고 성격이 급한 산척 돌개가 먼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삼척에서 동무로 지내는 관계라 같이 행동을 하기로 한 것 같았다.


어물보부상도 조금 앞서 나갔다. 접장과 형주, 그리고 별배 번개가 뒤에서 따르게 되었다.

접장은 형주 옆으로 가더니 어깨를 툭 쳤다. 마치 대견스러운 자식인양.

“나는 두 번째 참에 도착하면 중단하고, 거기서 자네가 돌아올 때까지 빈둥빈둥 쉬고 있겠네”

“알겠어요. 접장님. 그런데 이 경주는 임금님의 허락을 받았다고 하던데 접장님의 힘이 대단하신 가 봅니다.”

“허허. 아마 조정에 뇌물이라도 바쳤으리라 생각하겠지. 그런데 내 힘이 아니라 내 동생 때문에 전하께서 이 경주를 허락한 것이네”

“예? 동생은 어디 있는 거죠? 높은 분인가요”

“그래 높은 자리에 있지. 하늘나라에 있으니까.

형주는 접장의 답변에 다소 놀랐다.


“궁금한가 보지. 꽤 긴 이야기인데 그래도 천천히 달리면서 궁금증을 풀어주지. 그런데…”

“그런데요?”

“여기에 초대된 사람들은 신분이야 낮지만 다들 대단한 달음질 주자네. 자네는 내 사연만 듣지 말고 기회가 있으면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 보게.”

“알겠습니다.”

“그럼 내 이야기가 제일 먼저 시작되는 건가? 아니 내 동생 이야기지.”


수년 전 중앙집권에 반발한 함길도(함경도) 호족이 여진족 일부와 연합하여 반란을 주도한 사건이 있었다. 반란은 진압되고 당시 협력했던 여진족 추장은 처형을 당하였다. 추장의 동생은 복수를 하겠다고 이를 갈았다.

그 후로부터 몇 년 후 접장은 동생과 함께 숲길을 통해 마을을 찾아 나섰다가 잠시 길을 잃게 되었다. 그러다 숲 속에서 수상한 소리를 듣게 되어 몰래 엿보니 행색은 조선 사냥꾼인데 여진 말을 쓰고 있었다. 한 열명은 되는 많은 무리였다. 접장 형제는 여진들과 거래를 많이 하고 있어 그들의 말을 대충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들끼리 하는 말을 들으니 한양으로 가서 변을 일으키겠다는 것이었다.


둘은 깜짝 놀라 자리를 뜨려던 순간 나뭇가지가 꺾였다. '누가 있다. 잡아라.' 여진인의 고함이 들려왔다. 그들 중에 걸음이 날랜 자가 칼을 휘둘르며 달려들어 동생의 팔이 베였다. 다행히 동생의 발길질에 여진인이 나뒹굴었다. 형제는 다시 뛰었다. 그러나 이번엔 접장이 다리를 접질렸다. 속도가 줄어들면서 죽음이 가까워 짐을 느꼈다. 그 순간, 조선 산척이 눈앞에 있었다.


산척에 도움을 요청하여 추격하던 여진인들을 전부 사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추격한 인원은 단 세명, 나머지 일곱 명은 곧바로 한양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들보다 먼저 도착하여 관아에 알려야 했다.

다리를 접질린 접장은 산척들의 도움을 받아 치료를 받은 후 떠나기로 하고, 동생은 바로 한양으로 달려갔다.

'팔에 깊은 상처를 입어 한양까지 달릴 수 있을 지 모르겠네.' 접장은 멀리 사라지는 동생을 보며 걱정을 하였다.


그 사이 한양으로 향하는 여진인들. 이들을 이끄는 것은 옛 추장의 동생인 '바투루'였다.

그는 조선에 늘 협조적이던 이웃 부족이 조공을 위해 한양으로 간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을 이용해 조선의 왕궁 깊숙이 침투하기로 하였다.


자신들의 이동이 조선 보부상들에게 노출되었지만, 추격병을 보낸 후 바토루는 나머지 부하들을 이끌고 한양으로 달려갔다. 이틀이 지난 후,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운 밤이 되어서 그들은 한양 북평관에 당도할 수 있었다. 여진인들의 숙소인 북평관을 지켜주는 조선 군졸은 없었다. 한 명이 담을 넘어 문을 열자 바투루 일행은 조용히 안으로 숨어들었다. 넓은 대청마루에는 여진인들이 낮 동안 있었던 조선인과의 거래가 잘 되었는지 기분 좋게 떠들며 술잔을 돌리고 있었다.


칼을 든 바투루가 마루로 뛰어올랐다. 술잔을 들고 있던 여진인들의 비명이 목구멍을 넘어서기도 전에 서늘한 칼날이 목에 먼저 들어왔다. 잔이 깨지는 소리만이 어둠 속에 울렸다. 한 명이 살아남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바투루가 그의 멱살을 잡았다.

“너는 내일 우리와 함께 조선 왕궁으로 간다."

그들은 다음날 내조 시간에 맞추어 궁궐로 향했다. 궁문 앞에서 멈춘 그들은 군졸들에게 칼과 활을 건네주었다. 수문장은 공물을 확인하였다. 담비 가죽과 물소 뿔이었다. 임금께 진상할 물품이기에 흠이라도 날까 조심스레 눈으로 훑어만 보았다.

정전 뜰에서 진상품을 바친 바투루에게 임금은 연회를 베풀었다. 무예를 좋아하던 임금은 여진족이 내조하면 활 겨루기를 시키고는 하였다. 이번에는 바투루와 내금위장 간에 겨루기로 하였다.

바투루와 내금위장이 과녁을 향해 섰다. 음식을 먹던 여진인들의 손이 품속으로 스며들었다. 담비가죽 안에 몰래 넣어 반입한 단검이 손끝에 닿았다.

임금이 ‘쏘아라’하고 하명하였다. 활시위에 손을 얹은 바투루가 갑자기 몸을 틀었다. 과녁이 아닌 용상을 향했다. 시위가 울렸다. 하지만 바투루의 활이 아니었다. 내금위장의 화살이었다. 바투루는 가슴에 화살이 박힌 채 쓰러졌다. 담벼락 뒤에 매복해 있던 포수들의 화살이 여진인들에게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접장이 한양에 도착한 것은 변란이 정리되고 나서였다. 수문장은 곧바로 그를 궁궐로 데려갔다. 임금은 접장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자네 동생 덕분에 여진인들의 역모를 막을 수 있었네.”

“전하,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오나 제 아우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안타까운 일이구나. 그는 상처를 입은 몸으로 삼백 리를 뛰어와 나라를 구하고 목숨을 바쳤구나.”

접장의 아픔은 너무 컸다. 피를 나눈 동생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일 수도 있는 동생이었다.

임금은 접장과 동생의 공을 기려 포상을 해주려 하였다. 접장은 상금과 벼슬 모두 사양하고 단 하나만을 요청하였다. 동생을 기리는 일을 하게 해달라고.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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