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다섯명의 조선 런너

by 심준일

접장은 찰방과 동행하여 강릉도호부 부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삼백 리를 달리는 경주 이야기를 꺼내었다. 경주 계획을 들은 부사는 말도 안 된다는 듯 황당해했다.

“삼 백리나 뛰는 경주라고? 그 사이에 급한 공문을 보낼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하려고?”

그때 찰방이 나섰다.

“부사 나리, 그건 걱정하시 마십시오. 제 관할 내 큰 역참에서 대체 인력을 차출하여 구산 참에 배치시키겠습니다.”

“아니 찰방, 자네가 왜 나서나. 대체할 사람이 있냐 없냐 문제가 아니란 말일쎄. 발졸을 이런 사적인 일에 가담하게 하는 것을 한양에서 알면 어떻게 되는지 자네가 더 잘 알 텐데?

접장이 침착하게 말했다.

“사또 말씀이 지당하옵지요. 어찌 발졸을 사사로운 일에 동원하겠습니까. 큰일 날 일이지요. 그런데 이번 경우는 사또께서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도 없다니?”

“사적인 행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적인 행사가 아니라고? 아니 자네가 주관하는 경주가 사적인 행사가 아니라고? 허허.”

부사가 황당해하자 접장은 자신의 어깨에 매단 대나무통을 벗어 부사 앞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부사는 범상치 않은 대나무통을 보고 긴장을 하였다.

대나무통의 이음새는 한양 병조(兵曹)의 직인이 선명하게 찍힌 밀랍으로 단단히 봉해져 있었다. 밀랍을 떼어내고 뚜껑을 열자 기름을 먹인 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천을 걷어내고서야 서신이 쓰인 흰색 비단이 드러났다. 부사는 서신에서 어인(御印)을 발견하자 어깨를 움찔했다.


접장이 말했다.

“전하께서 제게 보내주신 교서(敎書)입니다. 읽어 드리지요.”

“전하께서?”

“예 그렇습니다. 읽어 드리지요. ‘함길도 접장 최기열이 달음질 잘하는 백성을 모아 삼백 리 경주를 연다 하니, 중앙과 지방의 모든 관원은 그의 요청이 있을 시 성심껏 조력할 것을 명하노라.’”

부사는 편지내용을 듣고 깜짝 놀랐다.

“이것이 진짜인가? 어찌하여 주상께서 자네를 위해 이런 교서를 내려 주셨던 말인가?”

찰방이 또 끼어들었다.

“부사 나리께서 여기에 계실 동안 한양에서 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한양에서 무관으로 근무한지라 그때 상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접장께서 떠난 후 제가 차근히 말씀드리지요.”

부사는 고개를 끄떡이고 접장에게 참가자는 누구냐고 물었다. 접장은 오랫동안 물색해 둔 참가자들을 알려주었다. 체통을 중요시하는 양반사회와 달리 하층민의 세계에서는 달음질에 능한 자가 많았다. 경주를 강릉에서 개최하기로 한 접장은 가까운 지역에서 능력이 특출한 자들을 몇몇 찾아내었다.

접장이 초대할 주자들은 다섯 명으로 다음과 같았다.


강릉에서 보발로 공문서를 전달하는 발졸, 형주

삼척에서 활약하는 호랑이 사냥꾼 산척(山尺), 돌개

원주에서 말고삐를 잡는 견마(牽馬)잡이이자 별배(別陪), 번개

영월에서 보교가마를 매는 가마꾼, 만득

영덕에서 안동으로 어물을 나르는 보부상, 목화방울


”전부 다 천한 것들 이군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상상하기를 신묘한 힘을 가진 자들은, 높은 지위를 가진 무장이거나 산에 사는 도인이라 생각하지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바로 이들이고, 이들이 영웅입니다.”

"허허, 영웅이랄 것까지....”

”평소 때 길거리에 다니는 저들이 눈에나 보이겠습니까? 그러나 태어난 세상이 달랐으면 분명 영웅이 될 수도 있었을 자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영웅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한번 만들고 싶었던 거고요.”

"그 마음 알 듯 모를 듯하겠군. 어쨌든 주상의 명령도 있고 하니 내가 열심히 도와주겠어."

”사또 감사합니다.”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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