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은 부사한테 달려갔다. 잠시 후에 부사가 만수를 불렀다.
“얼마 전 역참에 근무하던 발졸 한 명이 다리가 부러져 일을 못하게 되었네. 빨리 인원을 채워야 하는데 자네가 원하면 한번 시험해 보겠네.”
역참의 인력을 채우는 것이 급선무였던 부사는 다짜고짜 만수에게 제안을 한 것이다.
“역참 일 말입니까?”
“그래, 보발. 보발은 군졸과 비슷한 대우를 받잖나. 농사지을 땅도 주고.”
“땅을 준다고요?”
“그렇고 말고”
땅을 준다는 부사의 말에 만수는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 진사로부터 빌린 땅에서는 수확량의 절반을 바쳐야 했다. 그러나 역참에 지급하는 전답은 세금이 붙지 않으니, 더 많은 곡식을 보유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만수는 보발의 자격을 검증받기 위해 관아에 갔다. 시주, 즉 달리기 시험을 보아야 하는 것이었다. 동헌 앞까지 들어가니 부사가 대청마루에 앉아 있었다. 주위에는 이방과 함께 중년의 남자가 서 있었다. 그의 신분이 발졸임을 알 수 있었다.
중년의 발졸은 마른 체격이었으나 몸마디가 단단해 보였다. 발에는 미투리를 신었는데 삼껍질 끈으로 신발을 단단히 조여 묶고 있었다. 벙거지를 반듯하게 눌러쓰고 반비를 몸에 꼭 맞게 챙겨 입은 차림이 멋에 꽤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부사가 책상에 올려진 서류를 흩어 보더니 만수에게 말했다.
“앞에 있는 저자가 강원도 최고가는 발졸이라네. 십 리(4km)를 일 각(15분)에 뛴다는 소문도 있던데…”
“사또, 자랑 같지만 제가 작년에 백 리(40km)를 열두 각(3시간) 못 미치게 주파한 적도 있습니다요.”
“백 리를 열두 각에? 그게 인간으로서 가능한 일이냐?”
“예 사또, 평지에서 뛰면 그 정도는 됩니다. 달음질로 동네 여인네 인기를 싹쓸이한다 해서 제 별명이 ‘싹쓸이’라 합니다.”
“쌉쓰리?”
“아… 예, 싹쓸이…”
부사는 만수를 발졸의 옆에 세웠다.
“둘은 여기서 경주를 해보거라. 관아 외문에서 출발하고, 십 리 정도 떨어진 당간지주에 걸린 붉은 천 조각을 갖고 오너라.”
관아 외문에서 출발 신호가 떨어지지 마자 중년의 발졸이 앞서 나갔다. 처음부터 엄청 빠른 속도였다.
‘이 사람을 놓치면 안 돼’
만수는 백 걸음도 못 가 숨이 차올랐으나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딸아이를 살릴 유일한 기회였다. ‘놓치면 안돼.’ 그는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아내에게 힘을 실어 달라고 빌었다. ‘제발, 제발. 곡식과 맞바꿀 나무를 하려 하루에도 몇 번씩 지게를 지고 산을 오르내렸던 그였다.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는 폐의 능력은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먼저 당간지주에 도착한 발졸이 붉은 천을 낚아채 손목에 감았고, 숨을 몰아쉬며 만수가 그 뒤를 쫓았다. 발만 빠르게 구르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선 발졸의 속도도 눈에 띄게 느려지고 있었다.
도호부로 이어지는 저잣거리에 들어서자 어떻게 알았는지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만수를 보자 박수를 치며 열렬히 응원을 하였다. "힘내라! 힘내라!" 다들 소리를 높였다. 힘을 얻은 만수의 발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발졸의 뒤꿈치가 닿을 정도의 차이로 도호부에 도착하였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쓰러졌다. 외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부사와 이방이 달려와 만수를 일으켜 세웠다.
“고생했네”
부사가 만수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만수가 손에 쥔 붉은 끈을 건네받아 그의 허리에 단단히 묶어주었다. 붉은 허리천은 보발의 상징이었다. 만수는 그날 군적에 발졸로 기재되었다.
그의 기량은 누구보다도 뛰어나서 어느순간 사람들은 만수를 발졸 영감이라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