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발졸은 길을 만든다

by 심준일

형주는 조선의 발졸이 되었다. 발졸에 부여된 책임은 막중하였다.


국왕은 전국에 벌어지는 일을 수시로 파악하고 그의 명령이 지체 없이 도달하기를 원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전국 각지에 평탄한 길을 내고 말로 달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대부분이 산악지대였고, 곳곳에 강과 계곡이 가로막혀 있었다. 사람이 직접 달리는 것(보발)이 말을 이용하는 것(기발) 보다 빨랐고 경제적이었다.

한양에서 황해도를 거쳐 평안도로 이어지는 통신 노선(서발)은 평탄하여 기발로 운영되었으나, 한양에서 경상도로 이어지는 노선(남발)과 함경도 지역으로 연결되는 노선(북발)은 험준한 지형이 많아 보발로 운영되었다.


보발일 하는 자를 발졸이라 하였고 하급군인의 대우를 하였다. 노선에는 삼십 리마다 참(站)을 설치하여 발졸을 두 명,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발장(撥長) 한 명을 두었다. 규모가 큰 곳은 역(驛)이라 하여 더 많은 인력이 상주하였고, 말도 사육하였다.

구산 참과 연결되는 곳은 강릉 도호부 인근, 대관령 분지, 동해에 접한 정동진, 진부 부근에 있는 참들이었는데 이중 도호부와 대관령 부근 참은 역의 규모였다.


형주는 시골길을 달리는 것이 좋았다. 산간마을 둠벙논을 지나고 나면, 보리밭 너머에는 새봇들논이 펼쳐졌다. 언덕으로 올라서면 풍경은 메밀밭, 수수밭으로 바뀌고 있었다. 형주가 달리는 모습에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던 농부들이 허리를 펴며 손을 흔들었고, 새참 광주리를 이고 오던 처녀들도 걸음을 멈춘 채 뱁새처럼 웃어 대었다. 그가 달려오는 모습을 보고 소달구지를 비켜 세우던 농부는 끝내 논두렁에 빠지기도 하였다.


형주에게도 ‘발패’가 주어졌는데 이 것이 있는 한 국왕을 제외하고 어떤 권력도 길을 막아설 수가 없었다. 정승의 가마라도 할지라도 그에게 길을 비켜 주어야 했다. 성문을 지키는 군졸조차 검문을 하기는커녕 재빨리 문을 열어주었다.


하다못해 도적들도 발졸은 건드리지 않았다.

어느 날 발졸 영감과 형주가 대관령 산길을 올라갈 때, 칼을 든 무리가 길을 막아섰다. 산적이었다. 본래 그곳은 산적이 많은 곳이 아니었다. 관군이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대신 호랑이가 들끓어 산적이 발붙이기 힘든 곳이었다. 그럼에도 가끔 절박한 유민들이 모여 길손이나 장사꾼들의 재물을 털고자 하였다.

우두머리인 보이는 자가 행낭을 내놓으라 했다. 그러자 발졸 영감은 허리춤에서 발패를 꺼내 보였다. 우두머리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두 사람에게 길을 터주고 빨리 지나가라고 했다. 그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버리자, 뒤에서 구경하던 산적 졸개가 의아한 표정으로 우두머리에게 물었다.

“왜 그냥 보내준 거예요?”

우두머리는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 자들은 발졸이란다.”

“발졸요? 그래서요?”

“발졸은 행낭에 공문 쪼가리만 가지고 다니는데 패물이 들어 있겠냐? 그리고 저 행낭 건드렸다가는 강릉 관군이 총동원되어 우리를 몰살시킬 것이야.”


감히 형주를 막아 세울 수 있는 것이라곤 마을 어귀 볕 아래 누워있던 누런 강아지뿐이었다. 발졸은 긴급함을 알리기 위해 방울을 달고 달렸는데, 그 소리가 들리면 누렁이는 사립문을 뛰쳐나와 형주에게 달려갔다.

막상 거리가 가까워지면 뒷걸음질 치다 다시 뒤를 쫓기 시작했다. 형주는 그놈이 따라오는 것을 좋아했다. 얼마까지 따라올 수 있는지 궁금해했다. 누렁이가 짖어대는 소리에 마을 곳곳에서 개들이 일제히 울어댔고, 뒤이어 마구간의 소들까지 울기 시작했다.


행낭을 다음 참으로 넘기는 순간 발졸의 임무는 완수된다. 발장으로부터 시원한 미숫가루를 한 사발을 받아 마시고는 장부에 인계 사항-행낭의 수와 도착 시간-을 기재하였다.

인수인계 시간은 계주와 같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먼 곳에서 방울 소리가 울리면 참에서 대기하던 발졸은 즉시 인수받을 채비에 나섰다. 바짓단을 행장(각반)으로 동여매고, 짚신이나 미투리를 끈으로 동여맸다. 어두워질 것 같으면 횃불기름이나 기름을 묻힌 홰를 준비한다.

도착한 발졸은 즉시 행낭을 벗어 펼쳤다. 그러면 그 안에는 또 하나의 행낭-‘안행낭’이라 부른다-이 있는데, 방수가 되도록 옻칠이 칠해졌고 매듭에 달라붙은 진흙에는 관인이 찍혀 있었다. 급한 공문일 경우 겉에 새의 깃털이 꽂혀 있기도 했다.

안행낭을 제 행낭에 옮겨 담은 인수자는 그것을 허리와 어깨에 이중으로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다음 참으로 지체 없이 달려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인계받아 다음 참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달려갔을 때, 발졸을 맞이하는 가장 황당한 상황은 무엇일까?

참에 아무도 없는 경우일 것이다. 전란 중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공격이 무서워 전부 도망갔을 수도 있고, 발졸을 노리고 매복해 있던 적에게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냥 또 다음 참까지 달려야 했다.

다음으로는? 인계받아야 할 발졸이 술에 취해 자빠져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비틀거리며 달릴 수야 있겠지만 속도는 늦을 것이다. 그럴 경우 앞의 동료에게 이렇게 사정을 하였다.

“내가 늦게 도착하면 곤장을 맞을 텐데, 호랑이 때문에 늦었다고 둘러대겠네. 그러니 감찰이 와도 절대 내가 술 마셨다는 말을 하면 안 돼!”


영감은 형주가 제시간에 행낭을 전달하고 돌아오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하였다.

“오늘도 고생 많았네. 요즘 자네 달음질이 빨라 곤장 맞을 걱정은 없구먼.”

“예? 늦으면 곤장을 맞나요?”

발졸의 도착시간이 늦었을 경우 태형으로 벌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일 각(15분)이 늦었을 경우 곤장 열 대였다. 다만 폭설이나 호랑이를 만나는 등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처벌이 면제되고는 하였다. 그리고 다른 죄인들과는 달리 심하게 때리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곤장으로 허벅지 근육이 상하기라도 하면 당장 업무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행낭을 잃어버리면 큰 사달이 나는 거네” 발졸 영감은 특별히 주의를 주었다.

행낭의 분실은 엄청난 사고였다. 발졸이 속한 관아에서는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행낭을 찾아 나서야 했다. 찾지 못할 경우 발졸은 효수형에 처해졌고, 관할 수령도 관리책임으로 최소 유배형이었다.

예전에 삼척에서 정선으로 향하던 발졸이 밤에 호랑이를 만나 피신하던 중, 문서가 담긴 행낭을 낭떠러지에 떨어뜨린 사건이 있었다고 했다. 문서는 사흘 뒤 수색 끝에 발견되었지만 삼척 부사는 한양으로 끌려가 갖은 문초를 당해야만 했다.


“겨울에 눈이 많이 쌓이면 어떡해요?”

“설패라고 눈신을 신고 가긴 하는데, 눈이 무릎까지 쌓이면 그것도 무리야. 길 찾기도 힘들고”

내리고 나서 곧바로 언 눈이나, 쌓인 지 오래되어 다져진 눈은 그래도 걷기가 좋지만, 발이 푹푹 빠지는 건설이나, 겉에만 얼고 속은 부드러운 눈은 걷기가 힘들었다. 평상시 쉽게 오르던 능선 하나도 눈을 헤치고 가면 체력이 다 소모되었다.

그런데 걷는 것보다 더 힘든 것은 작은 나무나 바위가 눈에 파묻히다 보니 방향을 잃는 것이었다. 수십 번을 다니던 길도 안심할 수 없었다. 잘 못된 길을 내려가기 시작하면 다시 거슬러 올라올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겨울철 발졸들이 산악지대에서 길을 잃어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이 허다했다.


백봉령에서 눈 때문에 보발이 지체되었다고 국왕에게 보고한 적이 있었나. 면책을 바란 것이었다. 그러나 ‘천재지변이라 하나, 미리 대비하지 못한 죄가 크다’며 관련자를 문책하라고 비답(批答)이 내려왔다. 그 이후로 눈이 많이 쌓이면 관아에서는 겨울 사냥길에 익숙한 산척(사냥꾼)들을 불러 모아 발졸과 동행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폭설에는 한계가 있었다.


방졸 영감은 형주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

“눈 때문에 길이 끊길 수도 있고, 산사태로 길이 끊길 수도 있네. 홍수가 나면 하천이 막힐 수도 있고, 변란이 생기면 숨어서 다녀야 할 때도 있네. 그러나 어떤 경우든 보발은 다음 참까지 가야만 하네. 길이 없으면 만들어서 가야만 하지”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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