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역전 마라톤

by 심준일

꿈을 꾸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려가 다음 참에 도착하였다. 행낭을 펼쳐 '안쪽 행낭'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졸장이 늦는다고 화를 내었다. 길 저편에서 누군가가 오고 있었다. 칼을 든 망나니였다. ‘아 나는 머리가 잘리겠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잠에서 깬 것은 다행이었다.


예전 세계에서 비슷한 악몽을 꾼 적이 있다. 역전 마라톤 대회, 형주가 구간 1위로 들어왔다. 다음 주자에게 바톤 터치하기 위해 어깨띠를 둘둘 말았던 손을 건네었다. 그런데 그 손에는 아뭇 것도 없었다. 다음 주자가 빨리 어깨띠를 달라고 화를 내었다. 감독이 고함을 치며 달려왔다. 그때는 꿈을 바로 깨지 못한 긴 악몽이었다.


중학교에서 1500m를 주종목으로 했던 형주는 아버지의 권유로 육상부가 있는 강릉 명성 고등학교로 입학하게 되었다. 합숙비, 훈련비 면제 외에도 장학금이 지급된다는 조건 때문이었다. 선배들과 기숙사 생활을 해야 했고, 오전 수업 시간에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이 통제된 생활이 시작되었다. 스피드 보다 지구력이 좋은 형주는 주종목을 5000m, 10000m 장거리로 하였다.


형주의 위기는 3월 일찍이 시작되었다.

학교에서 매년 3월에 열리는 역전마라톤 대회에 참가하여 왔다. 상위권에 속하긴 하였지만 우승을 차지한 적은 없었다. 장거리 연습이 부족했던 형주는 거리가 짧은 3구간(약 5km)에 배치되는 것으로 감독에게 설명을 들었다.


대회 3일 전 저녁, 감독이 선수들을 소집하고 나서 구간 재배치가 있음을 알렸다. 형주를 2구간에 배치하고 당초 2구간에 배치하기로 한 선배를 1구간으로, 그리고 1구간에 배치하기로 한 선배는 3구간으로 돌렸다. 감독은 질문도 받지 않고 선수들을 해산시켰다.


가장 당황한 것은 형주였다. 고등학교 입학 전까지 달려 본 것이 최대 5km인데 2구간은 7km가 넘었다. 게다가 2구간 이라니? 2구간은 팀 에이스가 배치되는 구간이었다. 역전 마라톤은 보통 2구간, 1구간, 6구간 순으로 상위권 선수들을 배치한다. 그럴 경우 형주는 에이스급 선수와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었다.


감독의 전략변화는 형주가 모르는 꿍꿍이가 있었다.

대회가 가까워지자 실력 좋은 선수들의 아버지가 감독과 저녁식사를 하였다. 술기운이 올라오자 한 아버지가 감독에게 이런 제안을 하였다.

“우리 학교가 이번에 입상을 바라볼 수준이 아니잖아? 잘 달리는 애들이라고는 내 아들하고 여기 이 친구 아들 밖에 없는데… 이번 대회는 방송에서도 중계해 주고… 우리 애들이나 쪽팔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요…”


감독은 재력으로 팀 운영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두 아버지들의 요구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전략을 짰다.

2구간에 보내기로 했던 에이스를 1구간으로 바꾼다. 그럴 경우 경쟁이 덜 한 1구간에서 우승, 최소한 2위까지는 가능할 것이다. 2구간은 대신 형주를 투입한다. 2구간은 에이스급이 포진하였기 때문에 형주는 뒤처지면서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대신 3구간으로 옮긴 선배가 앞으로 치고 나오는 모습을 보여 줄 수가 있게 된다. 즉, 2구간에 배치된 형주를 희생시키고 팀 에이스 두 명의 자존심을 띄워주자는 전략인 것이었다.


경주에서 대회가 시작되었다. 1구간에서 선배는 1등과 30m 정도로 뒤처져 2등으로 들어왔다. 그래도 중계방송에서는 수시로 선배의 얼굴을 비추어 주어 감독의 체면을 살릴 수 있었다. 형주는 학교의 이름이 적힌 어깨띠를 넘겨받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죽자 살자 달리기로 하였다.


형주는 선두주자의 머리만을 바라보고 달렸다. 그의 주종목은 1500m였기 때문에 처음에는 힘든 것을 몰랐다. 더군다나 2구간은 시작 지점은 약간 내리막이었다.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3km가 넘어서 고통이 밀려왔다. 선두와의 거리가 점점 더 벌어지는 것 같았다.


뒤에서 달려오던 선수가 형주 옆에 잠시 붙더니 앞지르기 시작하였다. 형주는 페이스를 늦출 수 없었지만, 사점은 계속되고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하였다. 또 한 명이 옆에 붙었다. 그 순간에 숨이 더 깊어지며 고통이 느껴졌다. 만약 이 선수마저 보내 버리면 그대로 도로에 주저앉을 것 같았다. 형주는 숨을 길게 내쉬면서 옆의 선수와 보조를 맞추려 안감힘을 쓰고 있었다.


옆의 선수가 형주의 얼굴을 보더니 씨익 웃어 보였다. 얼굴의 시커먼 수염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어깨 힘 빼고, 내 뒤로 바싹 붙어” 그는 조용히 말했다.


뒤에 붙으니 사점도 사라지고 속도가 회복되었다. 그와 함께 달리니 앞 선수와의 거리도 조금씩 좁혀졌다. 4위로 들어왔지만 선두와는 30여 미터도 차이 나지 않았다. 어깨띠를 3구간 주자의 손에 넘겨준 형주는 메트로 달려가 그대로 쓰러졌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던 감독이 달려와 수건을 덮어 주면서 형주의 엉덩이를 찰싹 쳤다.

“자식 대단하구먼”


형주는 몸을 일으켜 옆에 누워있던 수염자국의 동반자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가 형주의 얼굴을 보며 웃더니만 손을 내밀었다.

“너 강릉에서 왔지?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거야.”

그때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형주는 몰랐다.


형주의 선방으로 대회의 흐름은 감독이 예상한 것보다 잘 진행되었다. 강릉 명성 고는 4위가 되었다. 입상은 못하였지만 체고나 마라톤 명문고가 독주하는 상황에서 상당한 성과였다.


형주에게 정신없이 몰아닥친 역전 마라톤의 태풍이 지나가고 나서 얼마 후 감독이 전학생을 소개하였다. 형주는 자기도 모르게 ‘아’하고 놀랐다. 수염자국이었다.


고등학교 선수시절이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대회에서 경쟁하는 것 못지않게 팀 내부의 경쟁도 보이지 않게 치열하였다. 역전 마라톤을 위해 훈련하는 경우 팀훈련의 성격이었지만 실상은 그러지 못하였다. 대학교 진학이나 실업팀 입단을 목표로 할 경우 결국 개인기록이 기준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팀 에이스가 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였다. 그 경쟁은 트랙에서 나타났다. 매 트랙마다 초단위로 시간을 측정했다. 65초, 64초 … 이렇게 수십 바퀴를 돌면서 자신의 앞을 달리는 동료를 바라보아야 했다. 1000m 트랙에서 몇 초로 선배를 앞질렀을 때는 뿌듯함 보다 선배의 눈초리가 무서웠다.


그 순간에 힘이 되었던 것은 역전 마라톤에서 형주를 자신의 뒤에 붙여주었던 그가 3학년 선배로 전학을 온 것이었다.


형주는 그 선배와 금방 가까워져 털보형이라 부르며 따랐다. 털보형은 전학오기 전 서울지역 육상 명문고의 에이스였지만 이곳에 전학 와서는 팀원들을 도와주는 역할에 만족하였다.

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선수의 길을 포기하였다. 서울 육상 명문고를 떠나 그의 부모가 있는 강릉으로 전학 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의 아버지는 대형 가두리 어장을 운영하는, 강릉에서도 알아주는 부자였다. 부잣집 아들이니 뛰면서 고생하긴 싫겠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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