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자연이 만든 길

by 심준일

형주는 집안 사정상 실업팀을 목표로 해야 했다. 2학년이 되자 의지하던 털보 형도 졸업했으니 오롯이 혼자서 버텨내야 했다. 부모의 뒷받침은 기대하지 않았고, 감독도 형주의 발전에 그리 신경 쓰는 것 같지 않았다.


2학년이 되자 다시 한번 역전 마라톤에 참가하게 되었다.


감독은 형주를 불렀다.

"기록으로는 네가 우리 팀의 선두권이다. 그러나 에이스 자리는 3학년에게 양보해 주어야겠다."

그렇게 선배에게 에이스 구간인 2구간을 양보한 형주는 마지막 6구간의 앵커를 맡았다.

만약 앞 구간에서 잘 뛰어주어 주면 6구간은 가장 빛나는 구간이 될 수 있었다. 스포트라이트는 6구간에 집중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선두권이 아닌 주자들에게 6구간은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어깨띠를 넘겨받을 당시 형주 팀의 순위는 6위였다. 애매한 순위였다. 그러나 형주는 결심했다. 훈련 때도 가보지 못한 페이스로 달려 나갔다. 6구간의 거리는 약 7km… 앞의 주자들은 선두를 따라 페이스를 조절하고 있었다. 아마 결승선에서 3km 정도 남겨놓고 페이스를 올릴 것이다. 그러나 형주는 초반부터 페이스를 올렸다. 중반부에 한 명을 제치고서도 속도를 유지했다.


오버페이스로 시작했음에도 속도가 줄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털보 형과의 언덕훈련 덕분이었다. 털보 형은 토요일마다 형주를 불러내어 단 둘이서 언덕을 뛰는 인터벌 훈련을 하였다.

"앞으로 1500m 트랙이 너의 목표가 아니다. 10km 로드가 너의 목표가 된다. 10km에서는 언덕훈련이 모든 훈련의 왕이다."

언덕훈련에서 종아리보다도 허파가 먼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털보형은 속도를 줄이지 못하게 하였다.

"절대 안 쓰러져. 산소가 부족해 호흡이 가쁜 게 아냐. 뇌가 두려워 하는거지"


앞의 주자 한 명을 더 제치면서 4위로 결승선을 통과하였다. 형주는 결승선을 넘는 순간 허탈함을 느꼈다. 대회에서 4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순위였다. 두 명을 제쳤다는 것도 개인적인 승리일 뿐이었다.

형주가 매트에 주저앉으려 하는 순간 감독이 소리치며 달려와 형주를 끌어안았다.

"잘했다, 형주야. 우리 학교가 입상을 하다니..."

"예? 4위잖아요."

"인마, 너 앞에 들어온 주자는 ‘동시 출발’ 팀이란 말이야. 기록으로 아슬아슬하게 우리가 앞섰어."

동시 출발은 한 구간에서 선두와 거리차가 많이 나는 주자의 팀의 다음 주자를 바톤 터치 없이 달리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강릉 명성 고가 얻어 낸 10년 만의 입상이었다.


감독이 형주의 지독한 근성을 인정했는지, 예전과 달리 훈련에서 배려를 많이 해 주었다. 형주는 원하던 실업팀에 입단하게 되었다. 국내 정상급 팀은 아니었으나 실업 선수가 되었다는 성취감이 꽤 컸다. 졸업할 때 형주의 10km 기록이 31분으로 전국권 유망주는 아니었지만, 실업팀 감독은 그의 뚝심으로 보아 마라톤에서 빛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실업팀에 입단한 후 첫 해 형주는 10km 기록을 30분까지 끌어내렸다. 2년 차에는 하프에 집중하면서 입상을 할 수준까지 기록을 내었다.


3년 차부터 마라톤 훈련에 집중하면서 누구보다 지독하게 훈련한 덕에 2시간 20분 진입은 수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그 이후로 성장이 멈추었다. 2시간 18분에서 20분 사이를 맴돌았다. 팀에서는 의아해하며 조금 더 두고 보자는 분위기로 흘렀다. 서울 메이저 대회를 앞두고 감독은 형주를 불렀다.

"강원도 지역연맹에서 아는 분이 전국대회에 우리 팀 꼭 참가해 달라는 요청이 왔다. 네가 나가야겠다."

형주는 기분이 복잡하였다. 그의 기록이 정체되어 있어도 메이저에서 뛸 시기라고 생각했었다. 3년 차에 지방대회라는 것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문제였다.


그러나 형주는 대회를 참가하기로 하였다. 내심 우승을 하면 그의 정체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35km까지 선두를 달리던 그는 완주를 포기하여야 했다. 다리 뒤쪽에서 뭔가 끊어진 듯한 느낌이 들면서 다리에 힘이 빠져버린 것이다,

4년 차가 되자 그의 조급함에 부상이 더 잦아졌다. 자포자기의 마음이 들기도 해 훈련마저 소홀히 하였다. 군 입대를 앞둔 그에게 상무 선발권에서 멀어진다는 현실은 공포가 되었다. 상무행이 어렵다 판단되면 팀에서는 가차 없이 그를 내보내고 신입을 채울 것이기 때문이었다.


형주가 실업팀에서 고군분투하던 무렵, 특전사를 제대 한 털보 형이 향한 곳은 미국 애리조나의 트레일런 캠프였다.

그가 도착했을 때는 여름이었는데도 정상 부근엔 잔설이 남아 있어 눈부신 백색과, 산 아래의 짙은 청록색 침엽수림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고도가 높아 공기가 희박하였지만 침엽수림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소리가 폐에 가득 찼다. 바람은 송진의 향을 품었고, 파도소리를 들려주었다.

털보 형은 캠프의 지도자가 자신보다 수염이 더 무성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작은 무게라도 꺼리는 예민한 런너도 많았기에.


어느 날 캠프 지도자가 털보 형에게 물어보았다.

"한국에서 온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달리기는 해 보았니?"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육상 선수였습니다."

"난 대학졸업하면서 러닝화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어. 대신 술을 마시게 되었지."

"왜죠?"

"내 첫사랑 러닝이 너무 섬세하고 까칠한 성격이라 내가 감당 못하겠더라고"

"..."

"5000m 주자였는데, 부상과 번아웃에 시달렸어. 마라톤으로 전향했지만 효과가 없었지"

"트레일 런닝이 당신을 구했나요?"

"맞아, 나를 구해주었지. 딱 내 스타일이야. 이제야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게 되었어"


턱수염이 덥수룩한 그 지도자는 한 때 지독한 알코올 중독에 시달렸다. 직장과 차를 잃고 블랙아웃 상태에서 길 위에 쓰러졌던 그가 자신을 일으켜 세운 것은 산을 달리는 것이었다. 산길의 불확실성과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치며 그는 마침내 ‘웨스턴 스테이츠 100’의 우승자까지 되었다. 그리고 그는 트레일런을 통한 자기 치유와 정신적 회복을 모토로 하는 캠프를 세웠다.


지도자는 털보 형에게 이런 말을 종종 해주었다.

“트랙은 인간이 만든 길이지만, 트레일은 자연이 만든 길이다. 네가 과거 익숙한 건 속도와 기록일지 몰라도, 여기서는 균형과 겸손이 먼저다.”

그 말은 단호했지만, 동시에 따듯했다. 다만, 훈련내용은 그리 부드럽지 못했다.

캠프는 고도 2,000m에 있었다. 경사도 10%가 넘는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고, 하루에 8 마일을 달려야 했다. 지도자는 캠프 런너들과 늘 같이 뛰었다. 훈련을 마치고 난 뒤 가끔 털보 형을 불러 숲 길을 말없이 걸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털보형은 트레일런 모임을 만들고 작은 대회를 운영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형주가 자신에게 오기를 바랐다.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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