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는 구산 참 부엌에서 아침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는 중에도 문 열린 사랑방에 누워 아버지와 잡담 중인 형주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저것은 어디서 뚝 떨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잘 생기긴 잘 생겼네’
산이는 형주가 아침을 다 먹으면 같이 놀겠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인기척이 들리더니 진사집 딸의 모습이 보였다. 참은 사람들 출입이 자유로운 곳이라, 진사 딸도 스스럼없이 안마당으로 들어왔다. 얼굴을 가리는 쓰개치마를 벗으며 툇마루에 앉았다. 부엌에서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산이를 바라보며 허튼 시비를 걸었다.
“넌 우리 집 일도 하고, 역참 일도 하고 참 부지런하구나.”
“지는 먹고살려고 그러는 것이고 아기씨는 뭔 일로 아침부터 부지런을 떠시는 거예요?”
“얘. 오늘이 오일장 서는 날이잖니. 메밀전병이나 사 먹으려 한다.”
“전병 먹고 싶으면 뒷마을 주막거리 가서 사 잡수면 될 걸…”
“노리개 팔러 온 보부상 얘기를 들어보니 이번 오일장에 꽃신 파는 좌판도 생긴단다. 한양의 유명 화공이 비단에 수를 놓아 만든 거라네.”
“지금도 꽃신 신고 있으면서 또 새로 사는 거예요?”
“이 신발은 아껴야 해. 오래 신고 있어야 하거든”
“생뚱맞게 꽃신을 아낀다니… 그보다도 얼른 가마 타고 장에나 가지 여긴 왜 계신 거예요?”
산이는 진사 딸에게 눈을 가늘게 만들어 노려보았다.
“헤헤 산이야 무섭게 보지 마. 나 혼자 어찌 가란 말이니? 밥 차리는 것 끝나면 나랑 걸어서 가자.”
“그럼 지도 꽃신 사줄 거예요?”
“어떻게 꽃신을 바라니? 전병은 사줄게.”
“피. 그놈의 메밀전병”
산이가 모를까. 양갓집 여자 외에는 감히 꽃신을 못 신었다. 먹고사는 여염집에서는 특별한 날 무명에 색실 몇 가닥으로 수를 놓은 꽃신을 신기는 하였다. 그러나 발졸의 딸과 같은 평민은 무명 꽃신조차 꿈꿀 수 없는 것이었다. 하긴 너저분한 옷을 입고 꽃신을 신은들 누가 예쁘게 봐줄까. 그런데도 산이는 방 안에서나마 신을 망정 꽃신이 신고 싶었다. 꽃신을 신으면 불쌍한 오른발이 덜 슬퍼질 것 같아서였다.
아침상을 사랑방에 들여놓은 산이는 진사딸과 장으로 갈 준비를 하려 했다. 갑자기 멀리서 방울 소리가 들렸다.
“아이고 우리 아버지 또 뛰러 나가야겠네.”
방울 소리에 발졸 영감과 형주는 숟가락을 상에 내려놓았다.
"육시랄. 아침도 다 못 먹었는데.... 어제 한양에서 관찰을 받았으니, 오늘은 그 회신이 가는 모양일세”
한양으로 가는 서신이면 대관령을 넘어 횡계 참으로 가야 했고, 이 구간은 두 명이 같이 다녀야 했다.
“아가야. 밥은 다녀와서 마저 먹어야겠다. 미숫가루나 얼른 한 그릇 타서 주거라.”
역참 부엌 항아리에는 늘 관에서 지급한 미숫가루가 담겨 있었다. 평상시 밥 대신에 먹기도 하고 행낭에 담아 다니기도 하였다.
방울소리가 조금씩 커지고 있었고, 발졸 영감과 형주는 미투리를 신고 행전을 두르고 있었다.
산이가 미숫가루를 타기 위해 부엌에 들어가는데 진사 딸도 황급히 뛰어들었다.
뭔가를 생각하는 것 같더니 부엌 바닥에 굴러 다니는 숯가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꽃신 한 짝을 벗어 한 손에 들고 안쪽에 무언가를 적었다. ‘사념(思念)’
“산이야. 잘 들어. 이거 아버지 몰래 형주 총각에게 맡겨. 그리고 참에 도착하면 관아 옆 횡계 영감집이 있는데 거기 일하는 사람에게 맡겨줘. 그리고 ‘사랑방 손님’에게 전해주라고 해. 알았지? 사랑방 손님. 꼭이야. 꼭.” 진사 딸은 꽃신을 산이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산이는 난데없이 진사딸이 호들갑을 떨자 어안이 벙벙하였다. 진사딸은 꽃신을 들고 있는 산이의 손을 꼭 잡았다.
“장에 가면 너 꽃신도 내가 꼭 사줄게.”
그사이 바깥에서는 앞 참 발졸이 도착하여 행낭을 발졸 영감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발졸 영감은 이것을 형주의 허리에 둘러 주었다.
구산 참에는 졸장이 없어 인수인계부에 발졸 영감이 직접 기재하여야 했다. 앞의 발졸과 함께 툇마루로 달려갔다. 이때를 이용해 산이가 형주에게 접근했다.
산이는 형주의 저고리 앞가슴을 연 다음 꽃신을 집어넣었다. 놀라는 형주의 입을 산이가 재빨리 막아 버렸다. 그리고는 진사 딸이 부탁한 내용을 전달하였다. 혹시나 해서 단호히 말하였다.
“나 형주만 믿는 거 알지? 이것만 해주면 아기씨가 나 꽃신 사준다 했단 말이야.”
형주가 생각도 하기 전에 장부기재를 마친 발졸 영감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전력질주로 달리다가 마을 앞 오리나무를 지나게 되자 속도를 늦추었다. 발졸 영감이 형주에게 물었다.
“내 딸년이 출발할 때 무슨 말을 하던 거 같던데?”
형주는 더듬거렸다.
“그냥… 잘 다녀오라고요… 호랑이 조심하고”
“그래? 나한텐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더니만… 내가 호랑이 밥되기 전에 그놈 빨리 시집보내야지.”
형주는 가슴에 품은 꽃신이 신경이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