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발졸 영감을 보더니 찰방은 조용히 말하였다.
“이게 알려지면 영감님도 유배형이오. 근데 나는 여기 와서 영감이 조선에서 제일 빠른 발졸이란 소문을 들어왔습니다. 그런 분을 꽃신 하나 때문에 유배 보내야 하겠습니까?”
“그럼 못 본 척해주신 다는 겁니까?”
“그냥은 못 본 척할 수 없습니다. 영감께서 진짜 빠른 발졸이란 것을 확인해야 명문이 서죠”
“어떻게 확인을 한단 말이요?”
“나량 겨루기를 합시다.
“겨루기 라니… 어떻게…”
“어차피 강릉 구산 참으로 돌아가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럼 나랑 뛰어서 누가 더 빨리 도착하는지 겨루어 봅시다.”
“내가 이기면 없던 일로 해주고, 내가 지면 우리 일을 관아에 고한다는 거요?”
“영감이 이기면 저 젊은 발졸을 훈계하는 것으로 끝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기면 관아에 고하는 것은 원래 당연한 일이니, 다른 것으로도 대가를 받아야 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 대가란 것이 무엇인지?”
“그건 나중에 말하겠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오. 어떻소? 한번 해보겠습니까?”
“선택의 여지가 있겠습니까. 내 딸년 두고 어디로 유배를 가겠오. 어차피 내가 이기는 건데 봐주려는 것 아니오?”
찰방은 껄껄 웃었다.
“영감이 이길 거라 생각하면 내가 왜 겨루자고 하겠습니까? 봐주고 싶으면 그냥 고생 안 하고 봐주지. 보시오. 난 무관이 무사입니다. 민첩함은 나를 당해낼 자가 이 조선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찰방은 구산 방향으로 손가락을 가르쳤다.
“평지나 오르막이면 영감이 이기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달리는 것이 영감의 업인데... 그런데 구산으로 돌아가는 길은 내리막이잖습니까. 급경사도 많지요.”
그건 맞는 말이었다. 발졸 영감은 고개 아래에 위치한 구산 참에서 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타 지역에 행낭을 전달하는 경우는 대부분 평지나 오르막이었다. 돌아올 때는 내리막이었으나 당연히 뛸 필요가 없었다.
산에서는 오르막을 오르는 것과 내리막을 달리는 것은 확연이 달랐다. 오르막은 탄탄한 근력과 큰 폐활량이 결정을 한다. 내리막에서는 폐활량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 민첩성과 순발력이 가장 중요하다. 순간순간 나무와 장애물을 피해야 하며 지면의 상태에 맞추어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오르막에서는 땅을 차는 종아리 근력이 많이 쓰이지만 내리막에서는 앞으로 쏠리는 몸을 버티어주는 허벅지 근력이 더 중요하다. 리듬을 타고 다리를 적당히 굴려 속도를 제어하지 못하면 계속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고, 금방 무릎에 압박이 오며 달리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찰방은 어릴 때부터 무예를 열심히 익혔다. 암릉을 달리고 나무를 뛰어넘었다.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고, 무기를 들고 대련을 하였다. 이렇게 다져진 그의 민첩함은 누구든 따를 자가 없었다.
“알겠오. 어쨌든 최선을 다해야지.”
발졸 영감은 형주에게 들고 있던 창을 달라고 했다.
“뒤에서 내게 창을 던지려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좋은 방법이기는 하겠지만... 껄껄”
내리막에서 창을 지팡이처럼 사용하면 넘어질 위험은 적다. 무릎에도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련 경우는 천천히 걸어 내려갈 때 이야기다. 전속력으로 달릴 때는 몸 앞에 창을 짚는 순간 동작의 흐름이 깨진다. 또 잘 못 디딜 경우에는 몸이 앞으로 고꾸라져 더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 찰방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발졸 영감이 잘못된 선택을 한다고 생각했다.
또 발졸 영감은 내리막에서 제동력이 약한 미투리를 벗고 짚신으로 갈아 신었다. 주변 잎사귀를 주어 모아 짚신바닥에 깔았다. 맨 밑에 신갈나무 잎사귀, 그 위에 졸참나무 잎사귀, 그리고 다시 신갈나무 잎사귀를 깔았다. 짚신의 쿠션을 위하여 잎사귀를 까는 것은 흔한 일이나 발졸 노인은 이번에 유독 많은 양을 깔고 있었다. 그리고는 짚신에 달린 끈으로만 부족했는지 칡줄기를 찾아내어 이빨로 물어뜯어 끈을 만들고는 이것으로 짚신을 발목에 여러 번 동여매었다. 행전도 단단히 감았다.
그에 반하여 찰방은 신경 쓸 일이 없었다. 그의 신발은 질긴 가죽이었다. 신발이 발목까지 올라와 발목을 단단히 고정하였다.
준비를 마친 발졸영감은 모든 것이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준비 다 되었소.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