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치고 나간 것은 찰방이었다. 한양을 가기 위해 거치는 대관령 산길, 전반적으로 완만하지만 처음 내려가는 길은 꽤 가파르다. 중력에 의해 점점 빨라지는 속도를 제어하기 위하여 발로 땅을 밀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이 동작이 반복되면 속도만 늦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릎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
그래서 찰방은 발로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다. 대신 바위며 둔덕을 발로 밀거나 나무줄기를 붙잡으며 탄력성을 이용해 속도를 제어하고 방향을 바꾸었다. 그는 적당한 공간에 정확히 앞꿈치로 착지하고 발목의 탄성을 이용해 속도를 높였다. 빠른 속도로 가파른 길을 내려감에도 몸의 균형은 흩뜨려지지 않았다. 그가 지나는 숲길은 고요했다. 나뭇가지를 스치는 옷자락 소리만이 들리는 듯하였다.
“이런 길이면 영감은 무릎이 아파 설설 기어 내려와야 할걸…”
발졸 영감은 거리가 벌어진 채 멀리서 따라오고 있었다. 찰방처럼 날쌘 동작으로 내려오지 못하고 멈칫 멈칫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발졸 영감의 자세가 불안해 보여도 몸의 균형은 잃지 않았다. 비법은 바로 창을 이용한 것이었다. 창을 보통의 경우처럼 몸 앞으로 짚는 것이 아니라 몸 옆으로 비껴 잡고 뒤쪽으로 창촉이 땅에 박히도록 하였다. 몸의 중심을 뒤로하고 창촉을 강하게 누르면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몸을 창에 의존하다 보니 속도를 빨리 낼 수는 없었지만 무릎의 충격이 줄어들고 달리는 흐림이 무너지지 않았다. 산골의 심마니가 사용하는 방법이었다.
산길 내리막 달리기에서 그들에게는 특별히 뛰어난 신체적 능력이 요구되었다.
첫째는 시각반응 속도였다. 그들은 눈은 바로 발아래서부터 몇 미터 앞의 지형까지 수시로 스크린 하였다. 노면의 위험이 감지되면 최적의 자세를 취해 최상의 착지점에 발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는 뇌의 계산 활동이 아닌 반사신경의 작동능력에 의지해야 했다. 두 번째는 발의 균형감각이었다. 발이 닿는 지면의 상태에 따라 자동적으로 몸의 자세나 동작을 미세하게 조정하였다. 미끄러지는 순간에도 그들은 어렵지 않게 몸을 버티었다.
십 리를 내려가니 골짜기를 타고 내리는 가파른 비탈길은 사라지고 완만한 내리막길이 시작되는 듯하였지만 골짜기 위쪽에서 무너진 돌들이 돌서렁을 이루며 길을 막고 있었다. 찰방은 돌 머리끝을 민첩하게 디디며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돌서렁이 끝나자, 낙엽이 쌓여 있었다. 찰방이 껑충 낙엽 위로 뛰었다. 아뿔싸, 발목만 빠질 정도라 생각했는데 몸이 낙엽 속에 쑤욱 빠지는 것이었다. 무릎까지 빠지니 속도를 내지 못하였다. 그 사이에 발졸 영감도 비탈길을 내려왔다. 그는 낙엽 쌓인 길을 예상하였듯이 창으로 앞을 쑤셔가며 얕은 곳을 찾아 걸었다. 강원도 산골 비탈 아래는 수년간 바람에 쓸려 내려온 나뭇잎이 폭설처럼 쌓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그였다.
낙엽 쌓인 길에서 찰방과 발졸 영감의 거리 차이가 좁혀졌다. 낙엽길이 끝나자 발졸 영감은 창을 번쩍 들어 길 위에 꽃았다. 이젠 창이 필요 없는 듯 뒤따라 올 형주에게 넘기려는 것이었다.
‘영감이 창을 굳이 가지고 온 이유가 있었구먼’ 찰방은 혀를 찼다.
도착 지점에서 오 리정도가 남은 길 한쪽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었다. 퇴적된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날카로운 돌조각, 폭우 때 상류에서 떠 내려온 거친 자갈이 섞여 길에 나 뒹글고 있었다. 돌로 뒤덮인 길을 달리려니까 찰방의 가죽신 바닥에 통증이 전해졌다. 날카로운 돌을 피하며 달려야 하니 속도가 나지를 않았다.
그때 뒤에서 발졸 영감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것이었다. 마치 돌 위에 방석을 깔아 놓은 듯 거침이 없었다. 찰방은 그제야 깨달았다.
‘이 길 때문에 짚신에 나뭇잎을 잔뜩 넣은 것이었구나.’
매서운 돌 길을 벗어나 흙길로 들어서고 나서 얼마 후 구산 참이 나타났다. 발졸 영감은 문 앞에서 찰방이 뛰어 오는 것을 기다렸다.
“자 이젠 내가 이긴 것이요. 찰방 나리가 약속을 내던지시지는 않겠죠?”
“당연하죠.”
숨을 고르면서 찰방은 짧게 대답했다. 졌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달리는 것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전략이긴요. 우리야 허구한 날 달리다 보니 어쩌다 터득하게 된 요령이라오.”
“그런데 말입니다. 영감님”
“예”
“사실 제가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제가 조선 최고의 무관인데 영감님한테 질 줄이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뭐 그렇다 치고... 무슨 말을 하시려고요.”
“제가 이기면 뭐 하나 요청한다고 했었잖습니까. 비록 졌지만 그걸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무슨 요청인데요. 아니 그보다 졌으면 진 거지... 내가 졌으면 당장에 관아에 고했을 거면서…”
“솔직히 제가 이겼어도 애초 관아에 고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요청만 드리려고 했지요”
이번에는 형주가 끼어들었다.
“그걸 어떻게 믿으란 말이에요?”
찰방이 형주를 바라보며 살짝 웃어 보였다.
“자네 꽃신을 횡계 영감집 사랑방 손님에게 전달하려고 했지?”
“그렇습니다.”
“이미 전달된 거네.”
형주와 발졸 영감은 놀라서 서로 쳐다보았다.
“내가 자네가 전달하려는 꽃신의 수신자네. 근데 이것을 어찌 관아에 신고하겠나?”
황당한 것은 발졸 영감이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인게야. 그러면서 진작 사실을 이야기 하지, 왜 달음질 내기를 하자 한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