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현이네 할아버지

노장에게서 한수 배우는 밀당

by 빵굽는 건축가


“소장님 오전 10시에 아버님이 오시기로 했어요”

건축주의 아버님은 안성에 살고 계십니다. 교직에 계시다 퇴임 후에는 준비해 두셨던 밭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을 하고 계십니다. 건축주 내외는 중학생을 둔 젊은 부부입니다. 2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건축주들의 나이는 저보다 한참 많은 분들로부터 시작해서 어느 때 저와 비슷해지더니 4,5년 전부터는 저보다 젊은 건축주를 만나는 횟수가 늘어갑니다. 제가 나이를 먹어간다는 증거일 수도 있고, 공급자 중심의 공동주택 문화가 사용자 중심, 커뮤니티 중심의 주택문화로 이동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초등생과 중학생을 둔 학부모가 되는 시기는 집에 대한 변화를 꿈꾸는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던 아파트보다는 조금 더 작은 단위의 친밀한 규모를 찾게 됩니다.

가족이라는 의미를 돌아보고, 이웃이 있고, 정원을 즐길 수 있는 ‘대안’을 찾아 나서게 되고 이때 집에 대한 고민도 저절로 따라옵니다. 제 경우는 인연 있는 형님들과 함께 마을을 만들었으니 집에 대해서 만큼은 별다른 고민 없이 아파트에서 내려와 마당이 있고, 주변에 이웃들이 있는 동네에 살게 되었습니다.

승현이네와 황 선생님 댁 착공식을 마치고 첫 삽을 뜨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집의 배치를 잡는 일입니다. 도면에 그려진 대로 배치를 잡고 터파기를 하고, 기초공사를 시작하지만 그래도 집주인을 모시고 집이 놓일 자리에 대한 안내를 하게 됩니다. 우리 집이 어떻게 앉게 될지, 종이 위에서 보던 집의 위치와 1:1의 대지위에서 두발을 딛고 서서 보는 차이점을 즐기도록 합니다. 건축주들도 현실의 스케일을 충분히 그려볼 수 있도록 안내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오늘은 승현이네 할아버님도 자리배치를 함께 보아주셨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말이죠, 나이 든 내가 한 말씀하자면 집이 너무 한가운데 자리를 잡았소. 뒤로 조금 더 빼면 좋겠는데 말이지요, 그래야 남쪽 마당도 넓어지고 아들 내외를 위해 내가 심으려고 하는 소나무 자리도 나올 것 같은데, 얼마나 뒤로 빼 줄 수 있겠소?”

퇴임 후 소나무를 심고, 조경일도 해오신 아버님이 건축가들과 밀당을 주고받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오셨습니다.

“아버님 그동안 수십여채의 주택을 설계하고 짓고 모니터링해보니 앞마당뿐만 아니라 옆 마당, 뒷마당의 쓰임도 꽤 있습니다. 한옥의 구성처럼 말이죠. 넓은 남쪽 마당을 선호들 하시지만 한여름 뙤약볕을 피해 쉴 수 있는 장소도 필요하고 주차와 정원을 고려할 때도 그렇고 동서남북으로 마당이 있어야 집과 땅이 충분히 어울리게 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아버님 “

“음 그럼 건축가 양반, 얼마나 뒤로 빼줄 수 있소?”

“네 아버님 1미터 정도 뒤로 물리면 어떨까요?”

“음 그 정도 하면 아쉽기는 하지만 좋군요. 그렇게 합시다. 내가 소나무를 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여유가 필요하고 들어 보니 뒷마당에 주차 장소도 필요하고, 도로에 바짝 붙이면 여유가 없으니 그렇게 합시다.”

형광 실과 말뚝, 빨간 줄을 띄워 집의 모양을 만들고 나면 보이지 않던 장소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건축가들은 이 시간이 되면 이미 다 지어진 집처럼 흐뭇한 웃음이 나오게 됩니다. 때로는 뭔가 큰 실수를 한 것은 아닌지 주변과의 관계를 살피며 다시 한번 고민을 하는 때도 있기는 합니다.

오늘 만난 건축주와 아버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효과적인 ‘밀당’을 마치고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어떤 대화가 오갔을지 궁금해집니다. 젊은 건축가들이 노장의 의견을 무시한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아닌지 염려도 됩니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으니 삶을 담는 그릇은 어떠해야 할지는 건축가인 우리들 몫으로 남게 됩니다.

그래도 오늘 아버님에게 배운 것들이 많습니다.

소나무는 8월에 휴면기에 접어들기 때문에 나무를 옮겨심기에 안성맞춤이고, 뿌리가 땅 깊이 들어가지 않도록 흙을 봉긋하게 만들어 소나무를 심고, 흙 위에 거적을 덮어주면 뿌리가 잘 내린다는 노장의 지혜도 새겨듣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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