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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덕후 미우 Oct 29. 2018

악몽

만약 아직도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냥 한 번 크게 있는 힘껏 속 시원하게 욕을 한바탕해 버리자.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뒤돌아서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서 그 일을 잊기 위해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그렇게 하면 분명히 악몽으로 피폐해진 기분이 그나마 즐거운 방향으로 바뀔 수 있다.

나는 아직도 가끔 어린 시절에 겪었던 학교 폭력이 꿈에 나타난다. 악랄하게 괴롭히는 녀석들을 향해 "시발 새끼. 죽여버릴 거야."라며 고함을 치다 가위에 눌리는 상태로 눈을 뜨고, 아직도 남아있는 트라우마에 괴로워하는 나 자신에 짜증을 내며 몸을 꼰다.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이 일을 이겨내기 위해서 많은 시도를 해보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오늘 아침 새벽에도 그렇게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었고, 덕분에 아침의 기분이 다운되어 즐겁게 글을 쓸 의욕이 나지 않았다. 모든 게 귀찮게 여겨질 정도로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하지만 그런 트라우마를 이겨내지 못해 오늘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는 건 더 최악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를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해야 종종 돌아오는 이런 시간을 버텨낼 수 있다.

<우울증 탈출>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들이 우울증을 이겨냈다고 생각해도 종종 다시 같은 증상을 겪는 현상을 '돌연 리턴'이라고 말한다.

<우울증 탈출> 저자는 돌연 리턴을 이겨내는 방법으로 시점을 바꿔보는 것, 인생의 자습 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자습 시간에 걸맞은 해야 할 일을 찾아주는 것, 때때로 도망치거나 즐거운 일만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책을 읽기 전에 나는 저자가 말한 방법을 무의식적으로 터득해 실천하고 있었다. 때때로 악몽으로 나타난 과거의 트라우마가 너무나 싫어서 나를 힐난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부정한다고 해서 무언가 달라지는 건 아니다. 부정한다고 해서 축적된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고, 분명히 내 안에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사실을 인정한 이후에 시점을 바꿔서 지금이라면 어떻게 할지, 혹은 그 일을 잊기 위해 때때로 도망치거나 즐거운 일을 하면 금세 원래 생활 패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내 책장에는 그런 때를 위해서 무조건 웃을 수 있는 만화책이 꽂혀 있고, 다른 세계로 몰입할 수 있는 소설이 가득 꽂혀 있다. 그렇게 나는 때때로 도망치거나 마냥 즐거운 일을 하면서 돌연히 다시 찾아온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중이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보통 이런 게 아닐까?

<우울증 탈출>에 소개된 한 사람은 "'불안'은 사라지지 않고 가끔 고개를 들이미는 성가신 존재지만 함께 걸어갈 수 있는 녀석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던 거죠."라고 말한다. 트라우마도, 악몽도 그런 불안의 일종이다. 마치 내가 오늘 조금 더 행복하고 즐겁게 지내려던 순간 과거의 나가 "너가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라며 말을 거는 내 안의 불안이다. 그런 불안은 떨쳐버리는 게 최고지만, 가끔 찾아오는 불안은 지금의 순간을 곱씹는 기회로 활용하며 지금을 다시 돌아보자. 분명히 나는 잘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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